삼일 만세 운동의 추억
삼일 만세 운동의 추억
  • 구본선
  • 승인 2013.01.2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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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3·1만세 운동(1)

강화는 자랑할 것이 무척 많은 곳이다. 그 중에서 유구한 역사는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이다. 그럼 강화의 역사 중에 가장 내세울만한 것이 무엇일까? 호국의 역사와 국방유적도 있고, 선사로부터 근세까지 이어진 많은 문물도 있으며, 강화학파라 불리는 독창적 학문의 전통도 있지만, 3.1만세운동이 아닐까 한다. 

1919년 3월 8일 강화읍 장터에서 무려 1만 여명이 넘게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날의 역사는 강화를 새롭게 만드는 역사였다. 유봉진, 이동휘, 조봉암 등의 인물이 강화역사에 등장, 각인된 사건이기도 하다.

이 자랑스런 역사를 오늘의 강화인들이 잊고 산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강화뉴스는 2013년 연중기획으로 강화만세운동을 지면에 싣고, 이를 기념하는 일을 시작하고자 한다. 글은 교동교회 구본선 목사가 12번에 나누어 쓰기로 하였다. 독자여러분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2백 2만 3천 98명의 군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날. 흰옷 입은 군중이 쏟아지는 눈발처럼 내려와서 산과 들을 뒤 덮었고, 자신들의 함성으로 다다미 위에 누워서 자고 있던 원수들을 공포 속으로 밀어 넣던 날. 그래서 삼일절은 우리의 심장을 급하게 뛰게 하는 날이다. 우리 민족을 하나로 만든 ‘삼일 만세 운동의 추억’ 은 해 마다 돌아와서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고 잠자는 심장을 깨어나게 한다.

추억은 무엇인가?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이다. 또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다. 추억은 우리의 순수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을 추억한다는 것은 때묻지 않고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아닐까?

삼일만세 운동은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고 우리민족이 일본의 압제로 고통받던 시절, 우리가 뜻을 모아 일으킨 평화적인 독립운동이었다. 그 때는 좌도 없고 우도 없었고, 함께 고생하는 우리 민족만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 ‘자주독립’ 이었다.

우리가 삼일절을 추억하는 것은 만세 시위 이후에 벌어졌던 좌우의 대립, 끝없는 친일 변절자들의 출현, 싫다는 말 한마디 시원하게 못해보고 일본 귀신에게 절을 했던 신사참배, 궁성요배, 창씨 개명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삼일 만세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읠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1차 세계대전 승전국가인 일본에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이 땅을 강탈한 일본에게는 평화적인 만세 시위보다는 더 적극적인 폭력 시위(무장봉기)가 필요했다. 오히려 일본은 평화적인 시위대를 향해서 총을 쏘았고 7천 5백 9명이 죽지 않았는가?” “민족 대표 33인이란 사람들이 태화관이란 식당에서 독립 선언서만 낭독하고 일본 경찰에 자수하다니 말이 되는가?”

모두가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전에도 이후에도 삼일만세 운동처럼 우리 민족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94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추억하는 이유이다.

각 시대마다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의 자주 독립이란 목표가 우리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남북이 분단된 오늘, 육이오 총소리가 멈춘지 60년 째인 지금 우리는 민족 통일이란 당연한 목표를 어깨에 둘러 메고 걸어가야 한다.

우리 민족을 다시 한번 하나로 뭉치게 하는 신나는 일은 없을까? 우리나라 애국가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라고 적혀 있는데, 신은 언제쯤 두 덩어리의 미움을 하나로 반죽해서 평화 통일을 만들 생각이신지 물어 보고 싶다.


한 달에 한 번씩 강화도 삼일 만세 운동을 중심으로 글을 싣기로 했다. 상황에 따라서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아래와 같이 순서를 잡아 보았다.

1. 삼일 만세 운동의 추억
2.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자주독립을 위한 대한제국 노력
3. 1907년 정미 7조약과 강화도 의병활동
4. 1910년 대한제국의 멸망과 강화 마니산 부흥운동
5. 일본의 통치 1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 졌는가?
6. 1차 세계대전과 윌슨의 자결주의 원칙
7. 한국인의 울분, 터질 것이 터졌다. 삼일 만세 운동
8. 강화도 인근(부평, 김포)에 일어난 삼일 만세 운동
9. 연희전문학교 학생 황도문,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을 알려 주다.
10.길상결사대 대장 유봉진, 흰 백마를 타고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
11.삼일 만세 운동과 강화도
12.삼일 만세 운동 이후, 그리고 역사적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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