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바깥의 유일한 동검북돈대 D
강화도 바깥의 유일한 동검북돈대 D
  • 이광식 작가(내가면 거주)
  • 승인 2021.09.11 20:3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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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길상면 동검리 산70에 위치

동검북(東檢北) 돈대는 강화도 남쪽의 부속섬 동검도의 정상에 축조된 돈대이다.

동검도의 산꼭대기에 있는 동검북돈대 폐허. 안내판 하나만 서 있다.
동검도의 산꼭대기에 있는 동검북돈대 폐허. 안내판 하나만 서 있다.

모두 54개가 세워진 돈대 중 강화도 외의 지역에 세워진 돈대로는 유일하다. 왜 강화도가 아닌 지역에다 돈대를 쌓았을까? 그 답은 섬의 이름을 보면 나온다.

동검도(東檢島)-. 강화도의 동쪽 바다를 지나는 선박들을 검문하던 섬이다. 동검도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영종도와 인천 검단, 김포, 서해바다, 분오리돈대까지 다 보여서 한강을 올라가는 배를 감시하기 딱 좋은 위치임을 알 수 있다.

돈대 서면에 있는 문지. 저 흙더미를 파보면 돈문을 구성했던 덮개돌, 무사석 등이 묻혀 있을 것이다. ​
돈대 서면에 있는 문지. 저 흙더미를 파보면 돈문을 구성했던 덮개돌, 무사석 등이 묻혀 있을 것이다. ​

이에 비해 강화 서쪽 바다를 감시하던 섬도 있었다. 서검도(西檢島)가 그것이다.

서검도는 예전에 교동, 양사, 송해면과 연백군, 개풍군 사이 바다를 지나 한강을 통해 한양으로 진입하는 중국의 배를 검문하던 곳이다.

문지 아래쪽에는 이정표 기둥이 서 있다.

이에 비해 동검도는 일본과 서양 배들이 강화, 김포해협을 지나 한강을 통해 한양으로 들어가는 선박을 조사했다. · 서검도는 한양으로 가는 배들의 해상 검문소였던 셈이다.

동검도는 조그만 섬으로, 면적 1.61km2, 해안선 길이 6.95km이며, 주민은 약 70가구 200명이 살고 있다.

섬의 중앙부에 해발 106m의 동검도산이 솟아 있고, 서쪽과 동북쪽 해안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이며, 섬 주변으로는 널따란 연안 개펄이 펼쳐져 있다.

석재들이 흩어져 있는 토축에 면석 하나가 눈에띈다.

1985년 강화도와 제방도로로 이어져 육지가 되었으며, 이 다리로 인해 섬마을에 버스도 들어오고 잡은 고기를 육지로 내다 팔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리 아랫부분이 아치형이 아닌 매립 형태로 만들어져 바닷물의 흐름이 끊기는 바람에 여러 가지 생태 파괴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2015년 동검도와 선두리를 잇는 둑길을 터고 아치형 다리를 세움으로써 막혔던 물길을 되살려 갯벌 생태계 복원이 이루어졌다.

선두리와 동검도 사이의 갯벌은 보호조인 저어새 등 철새들이 서식하는 곳이며, 포구를 따라 갈대밭이 발달해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토축 위에 탐방객이 쌓아 놓은 돌탑. ​
토축 위에 탐방객이 쌓아 놓은 돌탑. ​

<조선지지자료>에 의하면 동검도 안에는 동검도산(東檢島山)이 있으며 탁이나루라는 나루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 삼남(충남, 전남, 경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오는 세곡을 실은 배들이 한강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염하 입구에 위치해 있다.

이 같은 요충에 돈대가 들어선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강화의 돈대들은 조선 후기 도성 방위의 전초적 역할을 담당한 방어시설로, 외적의 해안 상륙을 저지하고 외세의 침입을 효율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설치된 국방유적이다.

봉홧불을 피운 듯이 보이는 유구. 여기서 남으로는 영종도, 북으로는 염하 입구가 빤히 보인다.
봉홧불을 피운 듯이 보이는 유구. 여기서 남으로는 영종도, 북으로는 염하 입구가 빤히 보인다.

조선 숙종 5(1679)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설치한 48개 돈대 중 하나인 동검북 돈대는 해발 106m인 정상에 세워졌으며, 후애돈대, 택지돈대 등과 함께 선두보 소속이었다.

이 돈대의 최대 특징 중 하나는 54개에 이르는 돈대 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는 점이다.

보통의 돈대 규모는 둘레의 길이로 가늠하는데, 평균 80~90보 정도라는 기록이 나와 있다. 이는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약100m쯤 된다.

무너진 성곽. 350년 전에는 저 위에 성가퀴들도 톱니처럼 가지런히 있었을 것이다.
무너진 성곽. 350년 전에는 저 위에 성가퀴들도 톱니처럼 가지런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평면 방형인 동검북돈대는 그 둘레가 261m나 된다. 기록에는 209보로 나와 있으니, 보통 돈대의 3배 가까이 된다는 뜻이다. 치첩(성가퀴)85개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를 현장에서 보면 거의 축구장 크기만 하게 보인다. 따로 떨어진 섬의 돈대를 이처럼 크게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당시는 배로 왕래했던 만큼 보급이 원활하지 못해, 장기간 병력을 주둔시키기 위해 각종 부대 시설들을 수용할 필요성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아무래도 돈문 옆에 세운 무사석(武士石)처럼 보인다. ​
아무래도 돈문 옆에 세운 무사석(武士石)처럼 보인다. ​

어쨌든 현재의 돈대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석벽은 모두 붕괴되어 어디가 포좌인지, 포좌가 몇 개인지도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서면에서 돈문의 터는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밖에 일부 토축과 면석의 확인은 가능하다. 남쪽 모서리 쪽엔 폐기된 군 참호도 방치된 채 있다.

서남쪽 하단에서는 건물지 2곳이 발견되었으며, 한때 봉수대로 사용되었던 듯한 유구도 보인다. 여기서는 서남 방향으로 약 5km 거리에 위치한 영종도를 볼 수 있다.

돈대 중 최대 규모인 동검북돈대는 한 면이 60~70m는 족히 될 듯이 보인다.
돈대 중 최대 규모인 동검북돈대는 한 면이 60~70m는 족히 될 듯이 보인다.

지금까지 복원의 손길이 미친 적이 전혀 없는 동검북 돈대는 다행히도 인가에 외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석재의 유출은 그다지 없었던 듯하다.

수많은 면석들이 지면에 노출되어 있고 많은 양이 토축 아래 묻혀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복원에 나선다면 상당히 원형에 가까운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동검도에 동검북 돈대라는 아름다운 유적이 명소로 자리 잡는 그 날을 기다려본다. D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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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복원 등급]

A등급: 여장을 포함,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돈대.
B등급: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 등은 복원되지 않은 돈대.
C등급: 돈대 축대 중 기초 부분 정도만 남아 있는 돈대로, 복원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돈대.
D등급: 돈대의 기초부분만 약간과 돌 무더기만 있을 뿐, 주변 정리도 전혀 돼 있지 않은 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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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1-09-12 10:06:03
강화도 외에 있는 유일한 돈대군요.
돈대는 강화도에만 있지 않다. ^^

이광구 2021-09-12 06:56:35
동검도에도 돈대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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