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길 가에 있는 좌강돈대 B
큰길 가에 있는 좌강돈대 B
  • 이광식 작가(내가면 거주)
  • 승인 2021.09.04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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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식의 돈대순례 서른다섯 번째
- 강화 선원면 지산리 소재

좌강돈대는 조선 숙종 5(1679)에 대대적으로 축조해 완성시킨 48돈대 중 하나로, 염하에 접한 비교적 낮은 구릉 위에 쌓은 돈대다. 용진진 관할 하에 있던 돈대로 용진진과는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다.

염하 옆의 좌강돈대는 원형이다. 수로 측면의 매우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수로를 따라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듯하다. (사진=문화재청)
염하 옆의 좌강돈대는 원형이다. 수로 측면의 매우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수로를 따라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듯하다. (사진=문화재청)

진이란 군인이 머물러 있던 무장 성곽도시를 이른다.

1656(효종 7)에 지은 용진진은 조선시대 각 진에 배치되었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던 곳으로,

각궁·교자궁·목궁 등의 재래식 무기와 조총, 불랑기 등 각종 중화기로 무장한 101명의 병력이 주둔했으며,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했다.

진에 속한 선박이 3, 토졸의 위답이 20섬지기에 군향미 174, 조가 25, 장이 8섬이었다. 용진진이 위치한 곳은 용진나루, 용당포 등으로 불렸다.

좌강돈대는 용진진과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다.
좌강돈대는 용진진과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다.

좌강(左岡)돈대의 축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당시 병조판서였던 김석주(金錫胄)였다.

왕실 외척이었던 김석주는 숙종 초 대단한 권력을 누린 권신으로, 167810월 강화도의 지세를 살피고 돌아와 숙종에게 지도와 서계(書啓)를 올려 49곳에 돈대를 설치할 것을 건의했다.

돈문을 통해 보는 돈대 내부의 모습.
돈문을 통해 보는 돈대 내부의 모습.

돈대의 축조는 이듬해에 이루어졌는데, 당초 김석주가 건의한 49돈대 중 불은평(佛恩坪)을 제외한 48개의 돈대가 축조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돈대의 축조에는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승군 8,900명과 어영군 4,300, 석수 등 장인과 보조원 2천 명이 축성에 투입되었으며, 축조에 걸린 기간은 6개월이었다고 한다.

돈대 내부의 모습. 복원시 아쉽게도 37개 있었다는 여장은 복원되지 않았다.
돈대 내부의 모습. 복원시 아쉽게도 37개 있었다는 여장은 복원되지 않았다.

돈대의 성첩(城堞)을 쌓는 데에는 강화도 옆 매음도(현재 석모도)의 해명산 박석(薄石)이 사용되었다.

해명산 박석은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에 깔기도 한 석재이다. 해명산에서 박석을 캐서 강화로 옮겨 실제 축조 장소까지 운송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48개의 돈대가 처음 만들어진 후에 6개가 추가 설치되어 강화의 돈대는 모두 54개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부 온전하게 남아 있지는 않다.

성벽에 만들어진 석누조. 배수를 원활히 하여 토압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보수나 복원이 이루어진 곳도 있지만, 돌무더기만 남은 곳도 있고, 아예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도 꽤 있다.

강화의 돈대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존해야 할지, 유네스코 문화재 등록 추진 문제 등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돈대의 포좌가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돈대의 포좌가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보통 돈대의 성벽 둘레는 80~120m(70~100)의 규모로, 일반 성곽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다.

돈대의 평면 형태는 주변 지형에 따라 크게 원형과 방형 그리고 부정형으로 구분되는데, 좌강돈대의 형태는 원형이다.

돈대의 포좌 내부. 천장석 틈에 공사용 부대자루가 그대로 끼어져 있다.
돈대의 포좌 내부. 천장석 틈에 공사용 부대자루가 그대로 끼어져 있다.

지름은 32m이고, 동쪽을 향해 4문의 포좌가 설치되어 있으며 출입문은 서벽 중앙에 위치한다. 돈대 내부에 건물을 두어 창고와 주둔 병사들의 숙소로 삼았다.

또한 이 돈대는 수로 측면의 매우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수로를 따라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듯하다.

포안으로 바라본 염하와 용진진 참경루.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이는 홍예문이 참경루.
포안으로 바라본 염하와 용진진 참경루.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이는 홍예문이 참경루.

1999년까지 방치된 결과 내부에 경작지가 조성되는 등 훼손이 진행되어 홍예석과 기단석만 남아 있던 것을 2000년 강화군의 용진진 참경루(斬鯨樓) 복원사업 때 인근 외성과 함께 복원되었다. (참경루란 '고래 잡는 누각'이란 뜻으로, 여기서 고래는 청나라 군대를 의미한다고 한다).

좌강돈대의 여장이 있던 자리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
좌강돈대의 여장이 있던 자리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

그러나 단 위의 낮은 담장인 여장(女牆:성가퀴)은 복원되지 않은 불완전 복원에 그쳤다. 기록에 따르면 성가퀴는 37, 둘레는 96보였다고 한다. B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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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복원 등급]

A등급: 여장을 포함,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돈대.
B등급: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 등은 복원되지 않은 돈대.
C등급: 돈대 축대 중 기초 부분 정도만 남아 있는 돈대로, 복원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돈대.
D등급: 돈대의 기초부분만 약간과 돌 무더기만 있을 뿐, 주변 정리도 전혀 돼 있지 않은 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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