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람도서관이 기적이다
자람도서관이 기적이다
  • 김혜형 작가
  • 승인 2021.08.18 15:3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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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형 작가(2012년 화도초 작가와의 만남 행사 모습)

지금은 강화를 떠났지만 나는 그곳에서 12년을 살았다.

2006, 회사에 사표를 내고 아무런 연고 없는 낯선 강화섬으로 아이와 함께 무작정 들어갔다.

논과 밭과 낡은 구옥들이 있는 오래된 마을에 전셋집을 얻었다. 관광지다운 면모가 전혀 없는 마을, 허리가 꼬부라진 노인들이 밭고랑에 엎드려 일하는 평범한 시골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강화에 산 지 6년쯤 되었을 때, 양도면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차를 타고 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커다란 입간판을 보았다. 탑재삼거리에서 양도면사무소 방향으로 우측 도로변이었다.

<자람도서관>. 이런 시골 마을에 도서관이라니. 신선하고 기이했다. 자람, 이름도 예뻤다. 담장 없이 툭 트인 넓은 마당에 낮은 지붕의 벽돌집이 있었다.

도서관은 상업 시설이 아닌데, 누가 이런 넓은 주택을 도서관으로 꾸몄을까. 개인이 내놓은 공간이라면 굉장한 헌신일 텐데... 혹시 기업이나 단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일까? 이런저런 호기심이 스쳐갔다.

자람도서관에 대한 궁금증은 일었지만 바로 방문했던 건 아니다. 평소 책을 빌리거나 학습 공간이 필요할 때면 강화읍에 있는 군립도서관을 이용해온 관성 탓이었다.

자람도서관과의 인연은 뜻밖의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강화에 사는 동안 몇 권의 책을 썼는데, 그중 암탉, 엄마가 되다라는 책과 관련해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도서관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책 출간 후 첫 강연이었다.

그날은 자람도서관 앞마당에서 첫 번째 열린마당 장터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양도면에 사는 내 친구들이 도서관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음료와 간식, 반찬 등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아이들은 돗자리를 펴고 집에서 쓰지 않는 장난감과 책들을 가지고 나와 팔거나 서로 교환했다.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부지런한 엄마들의 손놀림과 맛난 음식들, 마을 장터의 활기와 들썩거림 속에서 오랜만에 사람살이의 충만함을 느꼈다.

나는 도서관 실내의 작은 방에서 스무 명 남짓한 청중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 암탉과 달걀과 병아리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호기심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즐겁고 따뜻한 자리였다.

자람도서관 야외영화제 모습(출처: 인천i-view)

자람도서관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나는 이 공간에 깃든 사람들의 애정과 헌신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자람도서관이 이 마을에 사는 한 현직 교사의 소망과 열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걸 알았을 때 몹시 놀랐다.

정부기관도, 대기업도 아닌, 그렇다고 부유층도 아닌, 평범한 월급쟁이 교사 한 사람이, 아이들의 성장과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이런 공간을 만들다니!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마음 그릇이 간장종지만한 나 같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 작은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뜻을 품은 한 교사로부터 시작된 작은 날갯짓이 일파만파 파도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신명으로 들썩이게 했다.

학부모들이 도서관 지킴이로, 자원봉사자로, 기획자로, 일꾼으로 참여했다. 자신의 인생 한 조각을 아낌없이 떼어 나누는 과정에서 배움이 일어났다.

아이만 자라는 게 아니라 어른도 함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도서관 뒤뜰에는 개와 닭과 토끼가 놀고, 앞마당에는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양도초등학교 3호차 스쿨버스의 종점은 자람도서관이다.

어린이집 버스와 학원 차들도 날마다 자람으로 온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와글와글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오면 어른들은 주먹밥과 토스트, 따뜻한 감자와 과일 등의 간식을 준비해 아이들을 맞이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거둬 먹이고 돌보는 어른들을 보며 도서관이 바로 엄마의 품이구나, 싶었다.

출발은 한 사람으로부터였지만 지금은 모두가 도서관의 주인이니, 사람이 사람으로 이어지고 확장되는 기적을 여기에서 본다.

어쩌면 성서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이런 선한 파급력의 은유가 아니었을까!

오래전 mbc <느낌표> 프로그램에서 기적의 도서관운동을 했는데, 나는 자람도서관이야말로 진짜 기적의 도서관이지, 생각하며 뭉클해지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이 할 수 없는 일을 마을도서관은 한다. 자람도서관은 어린이 쉼터이자 놀이터, 공동육아 공간, 주민과 학부모들의 사랑방이자 배움터다.

영화제, 작가와의 대화, 인문학 강연 등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문화 거점이기도 하다.

분명 작은 도서관인데 내 눈에는 군립, 시립, 국립 도서관보다 더 커 보인다. 처음 자람도서관을 열었던 선생님, 그리고 지금 자람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의 품이 그만큼 큰 까닭이다.

나는 3년 전 강화를 떠나 곡성으로 왔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작은도서관 <책담>이 있다. 귀농자들이 함께하는 협동조합에서 만든 도서관이다.

열 평 남짓한 작은 도서관이지만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고 강연회를 열고 회의를 하고 영화도 보고 함께 문화기행도 간다.

오며가며 들러 차 한 잔 하거나 이런저런 마을 일을 의논하고 농사 이야기를 나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일사서를 하며 도서관을 운영한다.

자람과 책담이 가진 공통점은 마을도서관이라는 점이다. 다른 점도 있다. 곡성의 책담은 주로 어른들이 이용하는 공간인데 자람은 강화의 아이들이 자라나는 공간이다.

새파란 도서관, 쑥쑥 자라는 도서관인 것이다. 젖먹이 아이부터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자람의 책꽂이 아래에서 뒹굴며 컸다.

양도초에 다니던 아이가 동광중학교에 가고 산마을고등학교에 입학하기도 한다. 자람도서관이 20129월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9년째, 내년이면 도서관 나이 10살이 된다.

자람도서관 초창기에 자람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벌써 어른이 되었다. 자람이 아이들에게 베푼 공덕이 참으로 크다.

자람도서관이 지난 9년간 세 들어 살았던 공간을 떠나 새 터전을 일군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노동 무임금으로 헌신하면서도 웃음과 사랑을 무한 전염시켜주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람도서관이 경제적 어려움에 꺾이지 않고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꿈을 실현시켜 가기를 빈다. 그 과정에 나도 벽돌 한 장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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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순 2021-08-20 09:50:14
자람도서관 소중한 곳이네요
곡성의 책담도서관도 책도 많아지고
무럭무럭 울타리가 두터워지기를

네모 2021-08-19 11:35:45
우리마을 멋진 도서관 ㅡ
언제나 파이팅ㅡ ^^

진강산 2021-08-18 22:02:15
자랑스러위요 우리 동네
도서관도 있고 책방도 있고 카페도 있어요
축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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