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문화예술인들 - 화가 홍윤표
강화의 문화예술인들 - 화가 홍윤표
  • 황대익 기자
  • 승인 2021.08.17 18: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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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개념을 전달하는 약속된 기호체계다. 이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고 교환한다그림이란 대상으로부터 상을 추출해 자신이라는 여과체계를 거쳐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이지 않는다. 일반 사람과 특정관점의 사람에게 각각 다르게 보인다.

화가에게도 마찬가지다. 훈련된 화가는 형태와 명암과 색의 특징을 분별해 보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자신의 감수성과 융합시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주관성이란 여과체를 거쳐 표현되는 화가의 그림은, 그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냄이다.

때로는 올곧이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순수추상의 형태로 심상만 남기도 한다. 사람들은 화가의 작품을 통해 그가 바라보는 관점을 공감하며 자신의 시야를 넓힌다.

따라서 현대인의 미의식은 과거와 크게 다르다. 오랜 세월 미술가들이 시각적 지평선을 넓혀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고흐나 모네 등의 그림에 익숙해져 일반인들이 봐도 감탄하지만, 당시는 충격과 비아냥의 대상이기도 했다.

홍윤표의 작품에도 삶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있다. 투박하고 직설적이며 진솔하고 꾸밈이 없다.

그의 말을 들어봤다.

"1945년 평택에서 태어났다. 언제부터 그림을 따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림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예고로 유명했던 서라벌 고등학교로 진했으나 이미 그때는 예고에서 일반고로 바뀐 후였다.

대신 대학을 지금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의 전신인 서라벌 예술대학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인천에서 작가 생활을 했고 나중엔 한국미협 인천지회장도 역임했다, 인천에서 작가 활동을 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아버지가 평택에서 하던 사업이 망해 흔히 말하는 '야반도주'를 했고 가족은 전혀 연고가 없던 인천으로 오게 됐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선인재단에서 3년간 미술 교사로 근무했다. 하지만 교사로서의 생활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미술창작과는 상관없이 교본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수업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끝내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가기로 했다.

젊은 나이에, 유명한 작가가 아니고선 도저히 생활할 수 없던 시대였기에 주변인들의 만류가 몹시 심했다. 그 꼴에 안정적인 직업인 교사를 포기하는 건 모험도 아니고 미친 짓이라고.

전업작가를 목표로 한 자유인으로서 당시 술과 그림밖에 모르는 맹목적인 생활이었다. 나이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미친 듯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공모전과 전시 활동을 꾸준히 하며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중앙무대에서도 활동하게 됐다."

강화에는 어떤 연유로 정착했는지

어느날 91.0cm x 65.2cm 종이에 혼합재료(부인과 일상 모습)
어느날 91.0cm x 65.2cm 종이에 혼합재료(부인과 일상 모습)

"처음에는 장모님의 묘가 있는 강화에 다니며 이곳 풍광에 반했다. 그러다 1998년 불은면 넙성리의 폐교된 신성초등학교에 레지던스 사업에 참여할 작가들을 모집하기에, 여기 응하며 작업실도 강화가 됐다. (이는 이 지면에 처음 소개했던 정수모 작가와도 교집합이 되는 부분이다).

관리 주체가 교육청으로 이관되며 그 사업이 끝나자 계속 강화에 살고자 2006년 송해면에 살 집과 개인화실을 마련했다."

본인 말로 자기 그림은 장식성이 없단다. 재주도 없고 투박하다 한다. 그의 말투와 같다. 예쁘게 멋있게 잘 그리려 하지 않는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진솔하기에 평생의 이력이 녹아든 작품이라 오히려 더 깊고 쉽게 와 닿는다. 정중동이란 말처럼 이래서 그의 작품은 더 매력적이다.

자알 놀다 갑니다. 72.7cm x 60.6cm 캔버스에 유채(평생을 술과 함께 한 자신을 풍자)
자알 놀다 갑니다. 72.7cm x 60.6cm 캔버스에 유채(평생을 술과 함께 한 자신을 풍자)

그의 작업은 흔히 분류하는 어떤 유파로 찍어 정리하기 어렵다. 인상파적이고 표현주의적이며 키치아트류의 유머스러움도 있는 동시에 렘브란트 같은 화가로서의 내면적 삶의 성찰까지 다 얽혀있다.

자신의 자화상이 많은 이유도 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예쁜 것을 따로 찾아 그리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을 관조하며 지금 눈에 보이는 있는 상태를 무언 無言으로 습관처럼 그릴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재는 좁은 범위의 일상이며 자화상이다. 중요한 초점은 무엇을 그리느냐가 아니라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그리느냐다. 작가 말대로 자기 생긴 대로 그릴 뿐이다.

그동안 작업 이외에 전시회를 통해 많은 작가를 만나고 교류하는 게 거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근래엔 기력도 약해진 데다 코로나로 인해 시골에만 있게 되니 사람들을 못 만나 몹시 적적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향해 자조적인 말을 한다.

젊을 때부터 그렇게 열심히 그려왔는데 내가 죽으면 이 남은 것들은 뭐가 될까.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회한의 마음을 내비친다.

뭐라 말할 수 없는 35.0cm x 45.0cm 캔버스에 혼합재료(자신 상태의 기분을 표현)
뭐라 말할 수 없는 35.0cm x 45.0cm 캔버스에 혼합재료(자신 상태의 기분을 표현)

재기발랄한 현대미술의 젊은 작가들을 보면 이 나이에 굳이 본능처럼 뭘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오른단다.

필자는 이 말을 들으며 따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 바라보고 평생 살아오신 꾸밈없는 솔직한 태도를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이 같이 느낄 수 있잖습니까라고.

각자의 몫은 따로 있는 것이다.

홍윤표 약력

1945년 경기 평택 출생.
개인전 28
인천시 문화상 수상
대한민국미술인의 날 공로상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인천미술협회 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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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1-08-17 21:13:14
그새 많이 늙으셨네요.
하긴 제가 이리 늙었는데 안 그러실라고..ㅎ
저는 요즘 그리 생각해요. 오늘 행복하고 잼있으면 된다고.
다른 무어가 있겠어요?

? ^^늘 건강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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