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선침탈 첫단추.. 초지돈대 A
일본의 조선침탈 첫단추.. 초지돈대 A
  • 이광식 작가(내가면 거주)
  • 승인 2021.07.26 10: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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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식의 돈대순례 스물아홉 번째
-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 소재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들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쓰라림을 당한 조선왕조는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이자 긴급 피난처인 강화의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서해안 수비체제를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하여 경기 서남부 해안의 진()들을 강화도와 그 인근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강화해협의 입구를 지킨 초지돈대. 열강의 조선 침탈을 제1선에서 맞부딪친 격전지였다. (사진=문화재청) 

조선시대 강화의 해안방어 부대인 12진보 중 한 곳인 초지진(草芝鎭)은 원래 안산(安山)의 초지량(草芝梁)에 있던 조선 수군의 만호영(萬戶營),

현종 7(1666) 강화의 염하수로 초입으로 옮긴 뒤 ''으로 승격시켜 강화해협 수비 요새로 새롭게 구축한 것이다.

당시 초지진에는 군관 11, 사병 98, 돈군 (墩軍) 18, 목자(牧子) 210명 등이 배속되어 강화해협을 수비했다.

또한 초지돈, 장자평돈(長子坪墩), 섬암돈(蟾巖墩) 등 세 곳의 돈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는 돈대와 본진간의 협공체제를 통해 수비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초지진에는 군선(軍船) 3척이 배속되어 있었고, 소속된 3곳의 돈대에는 각각 3개의 포좌를 마련하고 화포를 설치하여 강화해협을 수비했다.

강화해협을 지켰던 1차 방어기지인 초지진은 고종 3(1866) 병인양요 때 천주교 탄압을 구실삼아 침입한 프랑스 함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고종 8(1871) 신미양요 때는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아시아 함대의 포격과 육전대 450명의 상륙공격으로 점령되면서 군기고(軍器庫), 화약고, 진사(鎭舍) 등이 모두 파괴되었다.

미군은 조선군의 초지진 방어를 돌파한 데 이어 다음날 덕진진을 함락하고 광성보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른 끝에 광성보마저 함락했다.

신미양요 때 지휘관이었던 한 미군대령의 기록이 당시 기개 높던 조선군을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조선군은 근대적 무기도 한 자루 보유하고 있지 못한 채 노후한 전근대적인 무기로 근대적 화기로 무장한 미군을 대항하여 용감히 싸웠다.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다 모두 전사했지만,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민족을 그리고 국가를 위해 그토록 처절하고 강력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 1875(고종 12) 920일에는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와도 포탄을 주고받는 등, 포연이 걷힐 날이 없었다.

이 운요호 사건이 빌미가 되어 1876년 군사력을 동원한 일본에 강압에 의해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을 강화 연무당에서 체결하게 된다.

이 조약으로 인해 조선은 오랜 쇄국의 문을 열고 부산, 인천, 원산을 일본에게 개항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 침탈 첫 신호탄이었다.

그로부터 35년 후 마침내 일본은 조선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다.

조선에 불어닥친 열강의 침략을 제1선에서 온몸으로 막아섰던 초지진은 연이은 격전 끝에 모두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게 되었는데,

백년 세월이 흐른 1973년에 이르러서야 강화 전적지 보수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격전의 현장이었던 초지돈대만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초지진의 진사와 주요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는 음식점 등 각종 시설이 들어서 축조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유일하게 복원되어 있는 초지돈대는 높이가 4m 정도이고, 장축이 100m, 둘레가 114m인 둥근 모서리의 삼각형 돈대로, 내부에는 3개의 포좌를 비롯해 총안 100여 개를 갖춘 성가퀴(여장)을 두르고 있다.

돈대 안에는 조선 말의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는데, 포각은 정면 3, 측면 1칸의 맞배집 홍살로 되어 있으며, 대포의 길이는 2.32m, 입지름 40cm이다.

지금도 성채와 돈대 옆의 400년 된 소나무와 성벽에는 전투 때 포탄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맞서 격렬하게 싸웠던 전투상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그로부터 150년의 세월이 흐른 후 현재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에 있을까?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 야욕은 여전해 아직도 독도에 대한 도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전범국 일본은 전후 그들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거부함으로써 정의와 양심, 인류애와 같은 고귀한 정신적 가치들을 잃어버렸으며, 그 결과 오늘의 일본 상황이 보여주듯 정신적인 황폐함을 자초하고 말았다.

최근 군함도 유네스코 문화재 문제만 해도, 처음에는 조선의 강제 징용공 내용을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해놓고도 결국 역사 왜곡과 날조로 약속을 저버린 일본의 행동은 참으로 후안무치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에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일본이 일말의 반성도 없는 뻔뻔한 모습을 보면, 400년 전 이순신 장군이 남긴 한 마디는 아직도 유효한 명언임을 확인하게 된다.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A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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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복원 등급]

A등급: 여장을 포함,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돈대.
B등급: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 등은 복원되지 않은 돈대.
C등급: 돈대 축대 중 기초 부분 정도만 남아 있는 돈대로, 복원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돈대.
D등급: 돈대의 기초부분만 약간과 돌 무더기만 있을 뿐, 주변 정리도 전혀 돼 있지 않은 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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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사랑 2021-07-26 22:10:05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잊어서는 안됩니다. 최근 올림픽에서 일본의 황폐한 정신을 생생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의 추락을 보며 시원하기는 하나 희희낙락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진정으로 반성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걸 모르는 집단적 무지가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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