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집의 추억
남매집의 추억
  • 황대익 기자
  • 승인 2021.07.22 15:2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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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술집' 하면 왠지 소박하고 저렴한 인상이 들죠. 원래 어원은 서서 먹는 술집이라는 뜻입니다.

직장인이나 노동자들이 지나가다 오래 머물지 않고 서서 가볍게 먹고 가는 술집의 개념인데요. 마치 80년대까지 있었던 소주를 잔술로 팔던 포장마차의 개념과도 비슷합니다. 지금은 말의 쓰임이 많이 변용됐습니다. 실비 식당의 개념이랄까요.

저는 오래전부터 술을 마시면 막걸리를 중심으로 마십니다. 그러다 보니 선술집을 자주 찾게 되었고 또 읍에서 태어나 살고 있어 아무래도 집 근처로만 다녔죠.

단편적인 기억이나마 제가 주로 다녔던 동네 선술집들을 더듬어 보면, 군산집, 또오리집, 시장집, 실비집, 풍년집, 국화집이 떠오르네요. 국화집은 지금도 하고요.

아마 그때가 1989년도일 겁니다. 여기저기 선술집 중심으로 다니던 중 또 하나의 선술집인 남매집을 알게 됐습니다. 고향의 또래 친구들을 따라갔죠. 남매집도 선술집이었습니다.

당시 남매집
당시 남매집 방모습

어릴 적 새시장 쪽을 밤에 지나가다 보면 한복을 입고 밖에서 연탄불에 석쇠로 돼지고기를 굽던 풍경이 있습니다.

붉은 연탄불과 연기, 분홍색 한복과 안에서 젓가락 두드리던 소리가 일상이던. 6.25 전쟁 이후 개성 출신의 기생들이 술집 촌을 만들어 강화 경제 호황기에 많이 알려졌던 곳이기도 하죠. 미성년자 출입금지 지역이기도 했고.

그 동네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승호슈퍼가 있었고 또 옆 자리엔 옛날 화문석 시장의 메카였었어요. 지금은 비슷한 위치에 송해식당이 자리하고 있더군요. 읍내 사람들이라면 새시장 공중화장실 옆이라면 다 알아요.

거기서 처음 먹은 안주는 두부 고기였습니다. 남매집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마 두부 고기를 먼저 떠올릴 겁니다. , 안주로 속까지 채울 수 있는 아주 저렴한 가격이었죠.

때론 두부만 주문해 기본으로 주는 김치를 프라이팬에 넣어 같이 부쳐 먹기도 합니다. 단골들에게 선술집이란 보통 이렇게 자린고비처럼 먹기도 하던 곳이죠.

남매집은 첫 방문 이후 제게 인생술집이 됩니다. 이제부터 장황하게 이유를 말 해보겠습니다.

저는 술을 마실 때 시끄러운 곳은 질색입니다. 23차니 자리를 옮기는 것도 싫고 그 자리에서 조곤조곤 오래 집중해 대화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죠.

술에 취하면 귀가 어두워지고 그래서 서로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어요. 다닥다닥 자리가 붙은 선술집 특성상 술 취한 옆 사람들 큰 소리에 먹혀 온전히 대화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곳은 평범한 선술집인데도 홀 외에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방이 2개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자주 찾다 보니 저렴하게 막걸리 마시며 이렇게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랐죠.

대부분 손님이 홀에서 반짝 왁자하게 마시고 가는 곳이라 언제 가더라도 방이 하나 이상은 늘 비어 있다는 점도 반가웠고요.

주 영업시간은 보통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입니다. 8시만 되어도 눈치 보일 정도니. 낮일 끝내고 저녁 시간 때 잠깐 한잔 걸치고 들어가는 곳이라 그렇습니다

당시 자주 먹던 멍게 안주 모습

더 자주 갈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 외에도 많았습니다.

안주가 매번 같지 않아요. '그날그날' 낮에 시장을 보시면서 '그때그때' 준비하시는 거죠. 그 덕에 매번 제철 먹을거리도 꾸준히 나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거의 기본인 젓국 갈비나 두부 고기는 물론이고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입맛대로 주문하는 부침개, 조개탕, 주꾸미, 꼴뚜기, 밴댕이, 병어, 새우, 동어, 조기, 갈치, 강굴, 닭도리탕, 천엽 등등 시장에 나오는 거의 모든 재료를 섭렵합니다.

두 평도 안 되는 그 좁은 주방에서 금방금방 어찌 저리 쉽게 내놓을 수 있을지 신기했습니다.

오늘은 뭐뭐 되느냐 여쭤보며 결정 장애에 자꾸 빠지니, 같이 고민하기 지친 아주머니가 아예 냉장고를 열어보고 결정하랍니다. 이후로는 갈 때마다 곧장 주방으로 가 냉장고 먼저 열어보는 패턴이 됐습니다.

차림도 은근 정갈하게 신경 쓰십니다. 예를 들어 강굴을 주문하면 접시에 깔끔하게 담아놓고 반드시 약간의 참깨와 참기름 한두 방울 떨어뜨려 줍니다.

동어나 밴댕이구이를 요청하면 간격까지 맞춰 예쁘게 가지런히 배열해 놓습니다. 먹는 처지엔 별생각 없을 것들까지 은근히 모양을 다듬어 내놓아요.

아무렇게나 한 주먹 툭 얹어 놓으면 될 김치도 반드시 네모반듯하게 잘 재단해 접시에 놓죠. 삶은 쏙조차 먹기 좋게 등껍질을 적당히 손으로 까서 내주고 멍게는 껍질을 벗긴 오이를 원형으로 얇게 썰어 나란히 놓습니다.

당시 즐겨 먹던 쏙 모습
당시 즐겨 먹던 쏙 모습

보통 잘 대접하고 싶은 이라면 고급 일식집이나 비싼 식당으로 가지만, 저는 상대가 각별할수록 가장 편안한 이곳으로 왔습니다. 누구나 대만족하기에 소문내지 말라 요청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저만 아는 특권이 빼앗길까 봐요.

즉흥적으로 입맛에 따라 안주 변화를 주며 먹을 수 있고 대화에도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최승남 전 군의원은 장정 여럿이 가서 아무리 실컷 먹고 놀아도 당최 십만 원이 넘지 않더라라고 합니다.

홀에서 저렴하게 가볍게 먹고 가기도 좋고 느긋하게 이런저런 안주를 골라 대화하며 먹다 가기도 좋고, 다양한 선택 가능성의 묘미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끝날 때면 부군께서 와 항상 꼭 같이 댁에 들어가시는 모습도 하나의 풍경이었죠.

그랬던 곳이 안타깝게도 도로가 나며 몇 년 전 건물이 헐리게 됐고 아주머니는 그걸로 장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참 우연히도 영업 마지막 날 들르게 됐습니다. 미리 알고는 있었어도 막상 오랜 단골로 다녔고 제 인생의 아주 많은 시간을 머물렀던 곳이니 그 아쉬움은 몹시 컸습니다.

예전 군산집, 시장집 하던 분들이 다른 곳에 옮겨 영업했던 모습들을 봤었기에 또 하실 생각은 없으시냐 여쭸더니 한마디로 정리하시네요.

이만큼 했으면 됐죠

문득 이전 이력이 궁금해 여쭤봤습니다.

장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냐 했더니 원래는 70년대 중반부터 새시장 쪽에서 순댓국집으로 시작하셨다더군요. 고모님께 음식 기술을 배워 열었대요.

처음부터 식당 이름도 남매집이었대요. 당시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매를 키우고 있어서 두 자식이 앞으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식당 이름을 그리 지었다고 합니다.

장사가 꽤 잘됐었는데 도로 공사로 집이 헐리게 돼 옮겼답니다.

그곳이 지금의 우리옥 옆 수도식당 있는 건물이랍니다. 거기선 해장국집으로 했는데 역시나 또 아주 잘 됐었데요. 당시 중앙시장을 짓던 중이어서 공사하던 일꾼들은 다 거쳐 갔을 거고 단골도 많았었다고.

하지만 그 잘되던 식당이 있던 건물이 개축공사를 하기에 부득이하게 옮기게 되었고 80년대 중 후반 제가 기억하는 자리로 와 이번엔 선술집을 여신 거죠.

사연이 그렇게 된 겁니다. 변화는 시대의 모습이기도 한 셈이고. 늘 있을 것 같던 옛것은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법이죠. 슬픈 일입니다.

하시는 말씀이 장사가 안돼 옮기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또 이렇게 헐리게 되면서 장사를 마치게 되네요.” 하십니다.

최근까지도 누군가 또 안 하시나 물어본다면서 지금 내 나이가 여든이에요. 50년 넘게 장사했으면 됐어요.”

식당은 주인과 손님이 음식을 통해 인연을 맺습니다.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고 추억을 되새기도록 만들었다면 영업을 떠나 삶으로서도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점은 인간 사회 삶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학습 받도록 하는 모티브이기도 합니다.

손님과 주인의 관계는 끝났어도 남매집은 제가 살아 있는 한 인생 30년간 특별한 기억으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이 글 보시면 몹시 계면쩍어하실 성격인 줄 알지만. 새삼 아쉬움과 미련을 담아 말씀 드리고 싶군요.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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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집 2021-09-07 01:04:59
재미있어요. 흥미진진

이광구 2021-07-23 12:36:14
허 참...
남매집 비슷한 선술집은 어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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