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문화예술인들 - 서예가 참길 안근준
강화의 문화예술인들 - 서예가 참길 안근준
  • 황대익
  • 승인 2021.04.05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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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정의가 있을 수 있다. 개중 '뭔가 만족스러운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붓에 먹물을 찍어 문자를 바탕으로 표현하는 서예는 글씨의 예술이다. 글씨를 뭔가 만족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안근준은 서예가다.

안근준 서예가

그는 1932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동네 이장을 30여 년간 하던 선친이 보관하던 각종 문서의 글씨를 보며 심미안을 키우고 자랐다 한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서예를 접한 시기는 다소 늦다.

나고 자란 충주에서 교사를 하던 중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며 교사들이 부족해지자 이를 충원하기 위해 1966년 서울로 가게 됐고 당시 문교부에서 교사들 교양함양의 하나로 서예를 배우게 했는데 그때 처음 접했다고 한다.

같이 학습을 받던 다른 교사들에 비해 워낙 기초가 없어 당시 서예가인 한 스승을 따라온 한 국민학교 6학년인 학생에게 요청해 첫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완전히 서예에 매료된다.

어느 정도냐면 당시 다른 교사들은 퇴근 후 수입을 위해 과외로 학생들 가르치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는 수준 높은 스승을 찾아다니며 학교 수업까지 빼먹을 정도로 서예에만 몰두했다.

특히 근현대 서예가 4대 거목이라는 일중 김충현과 여초 김응현 형제로부터 오래 사사하였으며, 서예에 입문한 지 2년 만에 국전에서 입선을 하였고 나중엔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도 역임했다.

그가 강화에 정착하게 된 동기는 양도면에 소재한 가톨릭대학교에서 서예 과목을 맡기로 한 것이 계기라 한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별도의 과목개설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그대로 강화에 눌러앉아 살기로 한다. 19955월의 일이다.

오랜 세월 서예에만 매진하면서 거쳐 간 제자만도 수천을 헤아릴 것이라 한다. 강화문화원과 강화미술관의 현판도 그의 글씨다.

우리 나이로 아흔인 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한 소중한 기억이 있다고 한다.

6·25 전쟁 시 국민병으로 징집돼 울주군에서 훈련 차 행군을 하던 중 장티푸스에 걸린다. 그대로 귀가조치 되었으나 교통도 안 좋던 시절 몸을 가누기 어려워 어느 시골집 벽에 기댄 채 빈사 상태에 빠졌다.

그것을 어느 아주머니가 발견하고 집에서 묵게 하였는데 가족들은 모두 다른 작은방으로 옮겨 지냈고 홀로 넓은 방을 쓰게 하며 회복을 도와 기사회생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한다.

평생을 한결같이 그 은혜를 잊지 않았으나 자식들을 키우며 생활의 여력이 없어 찾아뵙지 못하다 34년 만에야 옛 기억을 더듬어 어렵사리 찾아갔다고 한다.

눈물이 날 정도로 은인을 만나는 감동적 상황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그가 떠난 후 당시 집에 있던 아주머니의 자식 둘이 그로부터 장티푸스에 전염돼 사망했고 이를 두고 평생 원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은혜를 원수로 갚은 꼴이 돼 깊은 자책감 속에서 그는 평생토록 자식의 역할을 대신할 것을 약속했다. 또 그 아픈 사연을 방송국에 기고했더니 TV 가요무대 방송을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고 한다. 선행을 베푼 어머니는 장한 어미니 상이라는 표창장을 받기도 하였고.

가요무대에 보낸 감사의 글 일부

이후 매년 한두 차례 꼬박꼬박 방문하였고 어머니를 편히 모시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드리려 노력했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도 집안의 대소사에 항상 참여하였고 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손주들 결혼식에 참여하는 등 후손들과 그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다.

울주군에서 은인이신 어머니와 함게

이제는 두 세대가 지났으니 이전만큼 잦은 왕래는 없으나 그에겐 은혜과 슬픈 회한 애틋함이 어우러진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인생 이력이라 한다.

은인의 가족들과 함께

그는 7남매를 키워냈고 그중 하나는 강화에서 서예가이자 캘리그래퍼로 활동하고 있는 안병미 작가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부친의 뒤를 이어 많은 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에게는 다면성이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하며 스스로 길들어진다. 도덕적이기도 야비하기도 근엄하기도 때론 동물적이기도 하다. 세월의 부침은 때로 사람을 일그러뜨리고 연마시키며 변화시킨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하다 보면 나이를 의식하지 않게 될 정도로 여러 번 놀라게 된다. 유쾌하고 명랑하고 겸손하며 예의를 잃지 않고 솔직하며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시도한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아왔는지 유추하게 된다.

과거에도 전국적으로 팔린 서예 교본 등 책들을 냈었지만, 최근엔 코로나 19로 인해 강의를 나가지 않는 대신 현대적인 분위기에 맞는 서체를 개발하여 이를 책자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90% 가깝게 진척이 됐다.

서예(書藝)를 다른 말로 서도(書道)라고도 한다. 법도다. 가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에게 서예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아주 명쾌한 응답이 나왔다.

"내 인생이지

양도면 길정저수지 물가 바로 옆에 있는 '쉴만한 물가'라는 목가적인 이름과 풍광을 지닌 펜션이 그의 자택이다.

길상저수지 옆 안근준 선생 자택

해거름에 찾아가 대화를 마치고 나오니 스산한 바람에 추운 깜깜한 밤이 돼 몸은 움츠러들었으나 내심 '참길'이란 호가 너무 잘 어울리는 인생의 스승을 만났다는 기분만은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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