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이시원은 사기리에 살았으며 지금은 건평리에 묻혀있는 조선 최후의 암행어사 영재 이건창의 할아버지로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대가 강화도를 침탈하자, 동생인 이지원과 마주보고 자결함으로써 벼슬한 이의 도리를 다했던 분이다. 사기 이시원에 대해 영재 이건창의 친구였던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이런 글귀가 전한다.
立朝後(입조후) 每罷官歸(매파관귀) 則又復編席(즉우복편석),
市人皆識之(시인개식지) 輒曰(첩왈) 此李承旨席(차이승지석)
“사기 이시원은 벼슬을 하면서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돗자리를 짰다.
시장사람들이 그의 솜씨를 알아보고, 이것은 이승지가 짠 돗자리다.“
개성 유수를 지내고 정승 반열에 이르렀던 사기 이시원이 재물을 모으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많은 재물을 모았을 터이다. 손자인 영재 이건창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곤궁한 삶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돗자리 정승이란 말을 듣는 것을 개의치않았기에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에게는 본보기가 된다.
얼마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가 있었다. 앞으로 강화뉴스는 군수를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지방의원들의 재산 변동 내역을 살펴보는 기사를 수차례 연재할 예정이다. 첫 번째 연재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현재 군수의 재산 변동 중 재임 중에 지산리 땅을 필지 분할하여 거래한 것, 그리고 골동품의 가격 변동 등이다. 그 외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만 하더라도 고위공직자로서는 염치없는 일이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고무줄마냥 줄었다늘었다하는 골동품 가격도 문제지만, 재임 중에 자신의 땅을 개발하여 분양하는 일이 군민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의문이다.
옛날 조선시대 관료들은 벼슬살이의 도리로 삼은 것으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말이 있다.
재임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가지, 즉 사불(四不)은 부업을 하지 않고, 땅을 사지 않고, 집을 늘리지 않고,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 것이요, 거절해야할 세가지, 즉 삼거(三拒)는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해야 하고, 경조사 부조를 받지 않아야 하며, 어떤 답례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불삼거에 대해 혹여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재산을 늘려야 하고, 윗사람의 부탁을 잘 들어야 다음에 또 좋은 자리로 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지 모른다. 사불삼거를 철없고 물정모르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지 모르지만, 요즘 선출직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행태를 접할 때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오죽하면 고위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 이야기가 나올까.
지금이라도 고위공직자의 처신이 어떠해야 할지, 또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일까? 강화군의 발전을 위해서, 또 강화군의 청렴한 공직자의 사기 진작과 일할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라도 대오각성을 바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니 청렴문화는 결국 위에서 부터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식으로 명예를 훼손시키고 싶소?
강화뉴스 안쓰럽소
왜곡보도 그만 하시오
어린애 투정도 한두번하면 매를 부른다는걸 아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