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뎅의 추억
오뎅의 추억
  • 황대익 기자
  • 승인 2021.03.30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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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뎅은 지금 어묵이란 우리말로 정리됐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생각하는 오뎅과 일본의 오뎅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어묵과 여러 가지를 넣은 전골 방식의 요리형태를 칭하는 거죠.

다만 옛 정서로 연결하려다 보니 지금 맞춤법에 어긋남에도 오뎅으로 하겠습니다.

또래의 아이들처럼 저도 어릴 적 만화가게를 많이 다녔습니다. 게 중 강화읍 새 시장 골목에 있는 한 만화가게가 단골이었죠.

벽에 만화책들이 검은 고무줄로 가둬놓은 칸에 꽂혀있고 그걸 등지고 일자로 된 긴 나무의자에 둘러앉아 만화를 보는 풍경인데요, 가게 가운데 연탄난로가 있고 그 위에 커다란 양은 들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국물이 가득 찬 통 안엔 오뎅이 꼬치에 꽂혀있었고 꼬치당 5원인가 10원인가를 내면 작은 그릇에 담아줘 그걸 먹었습니다. 이게 제가 난생처음 오뎅을 보고 먹었던 기억입니다. 1970년대 중반의 시절입니다.

첫맛의 소감은 한마디로 끔찍했습니다. 국물은 왜 그리 썼는지 역한 냄새와 생경한 식감이 어울려 흉측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이제는 일상화된 멸치육수를 그때 처음 맛본 겁니다.

원래 멸치육수는 일제강점기 가다랑어(가츠오부시)포 국물을 찾던 일본인의 입맛을 채우기 위한 대용품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인으로부터 멸치를 쪄 말려 국물을 내는 방식을 배운 것이죠. 멸치가 주로 잡히는 남해안 쪽에서 먼저 전파됐고요. 전국적으로 퍼지기엔 시일이 걸렸습니다. 7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중부지방에 올라옵니다.

이전까지 제가 먹던 맑은 육수의 기초재료는 대략 소, 돼지, , 특히 우리 강화도엔 바지락이 참 흔했습니다. 거기엔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미원(글루탐산나트륨)도 함께요^^.

장날 시장에 좌판을 펴놓고 팔던 국수위로 바지락 조갯살이 수북하게 올려져 있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 경험밖에 없던 어린애 입맛에 그 오뎅은 충격과 공포였던 거죠. 중학교에 다니면서야 적응이 됐고 즐기게 됐습니다.

생선을 갈아내 뭉쳐 조리해 먹는 방식은 동서고금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뎅'은 중국 튀김 문화에 영향을 받은 일본에서 개발된 것입니다.

초기에 우리가 먹던 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잡어들을 통째로 갈아내 밀가루로 반죽해 기름에 튀긴 것이죠. 정어리가 흔해 정어리에서 짜낸 기름으로 튀겼습니다.

들어간 재료 중 등푸른생선류나 껍질이 어두운색이 섞이면 이게 무언가 싶은 검은 점들도 보였고 잘게 부서진 뼈도 씹혔습니다.

그랬던 것이 이제 점점 고급화 돼(사실은 어묵 선진국인 일본을 따라가는) 고급생선살 함량도 높이고 밀가루 대신 전분을 넣는 등 푹 끓여도 풀어지지 않는 찰진 오뎅들도 많아졌습니다. 가다랑어 육수를 쓰기도 하고요. , 확실히 더 맛있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늘 먹고 싶은 오뎅은 따로 있습니다. 처음의 끔찍했던 그 맛입니다. 멸치 머리와 내장조차 분리하지 않은 채 통째로 넣어 국물로 우려내어 왜간장(산분해 간장) 냄새와 어우러진 그 쓴맛. 덜 불어 종잇조각처럼 딱딱하게 씹히거나 아예 불어터진 그 맛.

마트에서 파는 저가형 어묵이나 저렴한 분식집의 오뎅이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다릅니다. 무엇보다 재료가 다르죠. 잡어가 아니라 주로 동남아에서 수입한 실꼬리돔입니다. 정어리 기름이 아니라 팜유나 콩기름으로 튀기죠.

지금 세대에겐 요즘 나오는 오뎅이 더 맛있겠지만, 저에겐 트라우마를 거쳐 완전히 내재화된 옛날의 그 오뎅 맛이 그립습니다.

삶이란 지속 가능한 안정감을 느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마 지구상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나라처럼 경제적으로 발달한 나라가 있을까 싶습니다.

건물도 새로 세워지고 길도 바뀌고 모든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알던 동네 모습도 사라지고 계속되는 개발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도 모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 사이에서 오래 살아온 개인 처지에서는 과거를 잃어버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정감에 시달리는 잠재의식을 갖게 됩니다.

무조건 옛것이 좋다는 자세는 아닙니다. 그러나 당대에 자신이 겪었던 삶을 환기하고 반추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지금으로 이어온 자신을 확인하며 삶의 안정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얻을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음식이나마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있겠죠. 이건 혀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맛입니다. 행복을 주는 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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