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운영되던 심은미술관이 폐쇄된 까닭
20년 동안 운영되던 심은미술관이 폐쇄된 까닭
  • 박흥열
  • 승인 2021.02.02 16:3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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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은천자문서예관 사업, 강화군의 무리한 기증요구로 좌초
- 서예관 사업 대신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여
- 강화의 문자문화자산을 활용한 정책 아쉬워

하점면 이강리에 소재한 심은미술관이 폐쇄되었다.

심은미술관은 강후초등학교가 폐교된 뒤 2000년 강후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자 서예가인 심은 전정우 작가가 임대하여 최근까지 운영하였다. 그동안 전정우 작가의 작품 200여점을 소장, 전시하는 강화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서 문화예술을 아끼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말 전정우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철거하고, 심은미술관은 폐쇄되었다. 해마다 임대 기간을 갱신해왔으나 올해는 불허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작품활동 중인 심은 전정우 작가
작품활동 중인 심은 전정우 작가

작가와 강화군청 협의 결렬로 천자문문화관 무산?

전정우 작가는 1987년 국전 대상 수상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서예가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2017년에는 인천시가 직접 나서서심은 전정우 유예자여(遊藝自如)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농필체라는 자신만의 서체는 물론, 혼서,혼융 작품, 문자 추상회화등의 작품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특히 갑골문자부터 조맹부, 왕희지체 등 중국의 서체는 물론 신라, 고구려, 고려, 조선의 서체에 이르기까지 무려 120가지의 서체를 연구하여 쓴 천자문은 가히 독보적이다.

120서체는 서체를 연구한 9권의 초고(草稿) 천자문과 세필천자문(70Cm×70Cm), 전지천자문(70Cm×140Cm), 국전지천자문(70Cm×204Cm), 서첩(書帖)천자문(35Cm×50m), 대자(大字)천자문(35Cm×92m)으로 각각 써내려가 총 720종의 천자문이 존재한다.

원나라 조맹부 6, 당나라 구양순 3, 한석봉(석봉 한호)선생이 2체의 천자문을 남긴 거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양으로 이는 인천시, 강화군의 귀중한 문화자산일 뿐만 아니라 활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천자문 글씨들
천자문 글씨들

인천광역시는 2011심은천자문감정평가위원회를 거쳐, 2014년 아시안게임 이후 본격적으로 심은천자문의 보관, 전시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특히 2018년 말 발표된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 중'폐교활용 문화재생사업이름으로'심은천자문문화관건립계획이 시작되었다.

이 사업은 40억원의 국시비를 투입하여 심은미술관을 천자문문화관으로 단장하고, 전정우 작가의 천자문을 전시, 보관하는 방안을 담은 것이었다. 사업 추진을 위해 인천시는 시교육청 소유인 학교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였으며, 강화군은 심은미술관 측과 협의하여 올해 말까지 완료한다는 방침이었다.

5명으로 구성된 전정우 작가 측의 협상대표단과 강화군은 1차 협상(2019.8.18.)에서 천자문문화관의 명칭을 심은천자문서예관(이하 서예관)’으로 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후 협상에서 작가의 작품 기증, 임대 조건을 둘러싸고 작가와 강화군청이 이견을 보인다.

2019 115, 전정우 작가 측은 서예관이 완성되어 개관전에 출품할 천자문과 모든 작품을 군에 일괄 기증하고, 강도고금시선에 담긴 강화관련 시들을 모티브로 한 작품 143점을 11월 말까지 기증하기로 하고 강화군과 협의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협상 과정에서 강화군의 요구사항이 달라진다. 협상이 진행될 때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언급하지 않고 천자문만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천자문 120서체 1(120) 기증, 3종 천자문(360) 영구임대를 요구했다가, 다시 1종의 기증, 5(600) 영구 임대 방식으로 바뀌고 급기야 4종 천자문(480)을 아예 무상기증할 것을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전정우 작가는만약 서예관이 폐관된다면 임대 작품은 작가에게 반환할 수밖에 없다는 변호사 자문에 따라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기증방식을 무리하게 요구했으며, 폐관시 심은천자문기념사업회나 국립박물관에 재기증하자는 작가측의 주장 역시 거부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20107, 강화군은 서예관은 작가 생존시까지만 운영할 수 있지만, 그 후에는 보장 약속이 어렵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이외에도 200여평 규모의 심은미술관을 400여평으로 확장함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50여평 건물에 천자문 전용 전시실을 조성하고, 작가의 작업공간도 배제되어 작가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생존작가들의 문학관 등을 짓는 다른 지자체의 사례를 봐도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다. 작가의 이름을 딴 시설을 만들면서 정작 작가의 작업공간이나 전시공간을 축소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강화군은 특정 작가의 전시공간을 공공예산으로 조성하는 것은 특혜 소지가 있어, 이를 불식시키고, 안정적인 전시 운영을 위해 4480점을 모두 기증받겠다는 입장이다.

강화군은 심은미술관으로 운영되던 강후초등학교를 일반 전시장, 카페, 캠핑장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작가와 강화군의 협상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전정우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강화군의 문자문화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국내외적으로 서예의 성지로 만든다는 심은천자문서예관 정책 방향이 평범한 기능들을 담은 복합문화공간 조성 사업으로 변경되어 버린 것이다.

협상이 결렬된 후 인천시와 강화군이 심은미술관의 임대재계약을 하지 않고, 비워달라는 요청을 하여 전정우 작가는 지난 해 말 20여년 동안 운영되던 심은미술관을 폐쇄하고, 작품들을 모처로 옮겼다. 그리고 국립박물관 및 중국, 일본의 박물관, 기업과 작품 관련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재조명되어야 할 문자 문화의 가치

강화는 빛나는 문자 문화의 고장이다.

최초의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상정고금예문 기록이 있고, 팔만대장경을 조판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외규장각과 정족산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근대시기 송암 박두성 선생은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을 만들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인천이 자랑하는 대한민국 10대 서예가에 속하는 동정 박세림(1925-1975)은 내가면 황청리 출신이고, 그의 묘지 또한 황청저수지 인근에 있다. 서구 출신이지만 강화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검여 유희강(1911-1976)도 있다.

동정 박세림, 검여 유희강의 유족들은 그들의 작품을 인천시에 기증하려 했으나, 인천시가 거부했다. 결국 수많은 작품과 생전의 유품들은 대전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 기증되어 인천을 떠났다. 당시 지역문화예술계는 대가의 작품을 홀대하는 인천시를 엄청나게 질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시는 여전히 대가로 손꼽히는 지역출신 작가의 작품성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고, 강화군은 작품의 문화자산적 가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작가와 협의하여 한자 폰트를 개발하거나, 문자 축제, 국내외 탐방객의 방문과 체험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하고, 인천시가 2022년 개관을 목표로 송도에 짓고 있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과도 협업할 수 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송도에 유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문자 문화의 고장, 강화가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천시와 강화군은 정작 지역 출신의 대가 작품을 홀대하고, 바깥으로만 시선을 돌리고 있으니 이는 주체성을 잃어버린 문화사대주의의 전형이다.

20여년 동안 고향 강화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펼친 전정우 작가는참담하다. 1년 수개월동안 강화군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수모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라고 한다.

현재 문화예술계 인사를 비롯하여 지역주민들도 나서서 만류하고 있으나 쉽지 않아 보인다.

타지역 사례에서 해법 찾아야

최근 몇 년 사이에 지방정부 차원에서 생존 작가의 문학관을 건립하는 일이 종종 있다. 대개 유명작가나 작품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이를 통해 지역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물론 지역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폐교를 활용한 객주문학관
폐교를 활용한 객주문학관

대표적인 사례가 경북 청송군의 <객주문학관>이다.

<객주문학관>은 김주영 작가의 대하소설 <객주>를 바탕으로 20146월 개관하였다. 폐교된 진보제일고등학교 건물을 증개축한 4,640규모의 3층 건물로 작가의 문학세계를 담은 전시관과 소설도서관, 스페이스 객주, 창작스튜디오, 세미나실과 작가 김주영의 집필실인 여송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송군 관계자는객주문학관은 지역의 문화예술 역량 향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많은 사람들이 청송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문학관을 포함하여 문학마을 조성 사업으로 확장하여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나라 생존작가 문학관의 시초는 강원도 화천군 이외수 문학관이다.

강원도 화천군은 화천군 감성테마문학공원 조성사업 일환으로 1,127규모의 이외수 문학전시관을 건립하고, 20128월에 개관하였다. 이외수 작가는 대외적인 발언으로 화천군의 관광활성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경북 영양군은 소설가 이문열 문학관을 현재 건립 중이다. 이문열 문학관은 문화관광부가 문화예술인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던 것으로 경상북도와 영양군이 이어받아 진행하고 있다.

25억원의 예산을 들여 집필실, 영상실이 포함된 1,872규모의 부지에 연면적 417로 조성한다. 문학관과 별도로 작가의 개인공간인 광산문우도 함께 자리한다.

영양군 관계자는이문열 문학관 건립에 이견은 없었다. 작가와 충분히 협의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작가의 대중적 명성 때문인지 특별한 반대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라고 한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 생존 작가 문학관, 전시관은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편성하는 것이 마땅하다. 운영, 관리를 비롯한 세부적인 내용은 더 협의가 되어야 하겠으나 작품 기증 숫자, 공간 배치의 문제로 협의가 결렬된다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향후 강화군이 문자 문화의 고장으로 자리잡는데 전정우 작가의 문화자산적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협상 결렬을 기정 사실화하기 보다 다시 한번 이견을 조정하려는 작가와 강화군의 성숙한 태도가 요구된다.

심은 전정우 작가의 천자문이 자칫 강화를 떠나도록 방치하는 것은 강화군의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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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민 2021-02-11 10:00:52
강화군은 작품의 문화자산적 가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말이 와닿네요.

김상용 2021-02-03 08:27:56
역사 & 문화도시 강화는 옛 이야기를 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행정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강화군의 변화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