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는 바다, 뒤로는 평야... 망월돈대 B
앞에는 바다, 뒤로는 평야... 망월돈대 B
  • 이광식 작가(내가면 거주)
  • 승인 2021.02.01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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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식의 강화돈대 순례, 다섯번째 이야기
-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2107 소재

강화의 어느 돈대든 시원스런 조망을 자랑하지 않는 곳이 없지만, 망월돈대만큼 사방으로 무엇 하나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확 트인 돈대는 달리 없을 것이다.

공중에서 본 망월돈대. 돈대 좌우로 이어진 성벽은 장성으로 불리며, 지금은 물을 가두거나 홍수를 조절하는 제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장성의 북쪽으로는 창후리 선착장, 남쪽으로는 3km 걸으면 계룡돈대에 닿는다.(사진=문화재청)

그도 그럴 것이 이 돈대는 강화에서도 가장 넓은 간척지인 망월평(望月坪)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망월평을 끼고 있는 망월리는 마을이 벌판 가운데 있어서 달 보기에 좋은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강화나들길 16코스 남쪽에서 바라본 망월돈대 모습.

망월평이 생긴 것은 여몽항쟁 이후 고려 공민왕 때다. 갯골을 토석으로 막아 제방을 쌓고 조수의 출입을 막는 축제한수(築堤限水)의 공법이 개발되면서 깊은 갯골까지 막을 수 있게 됐고, 제방이 생김으로써 둔전이 크게 늘어났다고 고려사에 기록돼 있다.

이러한 간척지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국방강화를 위한 한 방편으로 강화도 내 식량증산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강화도 내의 거의 모든 평야는 이 같은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돈문이 있는 돈대 동벽

대규모의 토목공사 끝에 너비 1.5m, 길이 7km로 축조된 망월언(望月堰)에는 누각을 설치한 출입문이 6, 물길이 드나드는 문이 7곳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 조선시대에 와서 광해군 10(1618) 안찰사 심돈이 수리를 했고, 영조 21(1745) 강화유수 김시환이 다시 고쳐 쌓았으며 만리장성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강화군 망월리-구하리 일원의 망월평을 감싸고 있는 제방을 이곳 주민들은 지금도 '만리장성둑' 혹은 '성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돈대 좌우로 갯벌과 망월평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 만리장성으로 불리는 둑이다. 망월벌을 지나온 내가천이 돈대 동쪽을 끼고 바다로 흘러든다.

이 만리장성은 북쪽으로 창후리 선착장, 남쪽으로는 황청리 용두레마을까지 이어져 있는데, 지금은 홍수를 막거나 물을 저장해 두는 제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1679(숙종 5)에 쌓은 48돈대 중 하나인 망월돈대는 진무영에서 돈장을 보내 직접 관할하는 영문 소속 돈대였다.

위에 장대석을 가로지른 평거식의 아름다운 돈문.

대개 돈대들이 해안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망월돈대는 갯가 낮은 지대에 설치됐다. 그래도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이 없어 경계초소로 부족함이 없다. 남쪽으로 계룡돈대, 북쪽으로 무태돈대가 있다.

만리장성의 딱 중간지점에 있는 망월돈대는 강화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고려지(내가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내가천 물이 서진하여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자리잡고 있다.

안에서 본 돈문 내부. 문짝을 달았던 지도릿돌(樞石)이 아래위에 그대로 남아 있고, 양쪽 벽면에는 일반
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네모진 구멍이 뚫려 있다.  

이 하구가 밀물 때는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수로의 입구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이곳에는 말올포(末㐚浦)라는 포구가 있었는데, 돈대는 수로의 방어 임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망월돈대는 낙성-장자평돈대와 함께 하천 하구 평지에 축조한 대표적인 돈대다. 이러한 돈대는 무른 갯바닥을 석재로 다지는 기초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느 돈대에 비해 난공사다.

특히 석모도 등 외지에서 채석한 석재를 옮겨올 때 갯벌을 통과해야 하므로 물때에 맞춰 작업해야 하는 관계로 공사기간도 많이 잡아먹었다.

붉은 갯식물이 칠면초. 망월돈대의 해안 쪽 성벽은 갯벌에 기초를 두고 쌓아올려져 있다. 강화돈대 중에서 가장 낮은 지대에 설치된 돈대의 하나다. 

그래도 초기 48개 돈대 축성의 대역사를 함경, 황해, 강원도 승군 8,900명과 어영군 4,300, 석수 등 전문 인력 2천 명을 투입하여 6개월 만에 군사작전 하듯이 매조진 것을 보면 조선의 국가 역량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약 1천만 명이었던 점에 비추어볼 때 실로 엄청난 거국적인 역사였다.

망월돈대의 형태는 40120의 돌을 가로 38m, 세로 18m, 높이 2.5m의 직사각형으로 축조한 것으로, 성곽 위로는 흙벽돌로 낮게 쌓은 담장인 여장(성가퀴) 42개가 둘러져 있었으나, 복원되지 않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둘레는 124m.

돈대 포좌의 포안으로 내다본 바깥 풍경. 맞은편 섬이 교동도다.  

망월돈대는 돈대와 함께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는 장성의 중간 한 지점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돈대에서 보면 건너편에 석모도 상주산이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교동도, 북으로는 별립산도 빤히 보인다.

아늑한 내부 공간. 시낭송회나 문학의 밤 행사, 연극, 음악회, 스타파티 같은 천체관측 등, 무엇을 하든 더없이 맞춤한 공간이다.  바닷가라 모기도 별로 없다

딱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돈대라는 느낌을 주는 망월돈대. 시원스런 조망을 자랑하면서도 아담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이 망월돈대는 여러 문화행사들, 예컨대 시낭송회나 문학의 밤 행사, 연극, 음악회, 스타파티 같은 천체관측 등 무엇을 하든 더없이 맞춤한 공간으로 우리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싶다.

유적 재활용 면에서도 얼마나 훌륭한가. 강화에서의 '돈대 르네상스'가 꿈만은 아니길 빈다. 망월돈대는 강화나들길 16코스에 있다. B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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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복원 등급]

A등급: 여장을 포함,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돈대.
B등급: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 등은 복원되지 않은 돈대.
C등급: 돈대 축대 중 기초 부분 정도만 남아 있는 돈대로, 복원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돈대.
D등급: 돈대의 기초부분만 약간과 돌 무더기만 있을 뿐, 주변 정리도 전혀 돼 있지 않은 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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