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웅장해지는' 분오리돈대 B
'가슴이 웅장해지는' 분오리돈대 B
  • 이광식 작가(내가면 거주)
  • 승인 2021.01.18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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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식의 강화돈대 순례, 세번째 이야기
-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185-1에 위치

강화도 돈대는 모두 54

강화돈대는 종래 53개 돈대로 알려져 있었고, 돈대 안내판에도 모두 그렇게 적혀 있지만, 정확한 돈대의 수는 모두 54개인 것으로 밝혀졌다.

숙종 5(1679) 최초의 돈대 48개가 완축된 후 보강을 위해 지속적인 돈대 축성이 뒤따랐는데, 송해면 당산리의 빙현돈대(1718, 숙종 44), 양사면 철산리의 철북돈대(1719, 숙종 45), 북성리의 초루돈대(1720, 경종 즉위년)와 작성돈대(1726, 영조 2) 등 대부분 한강 어귀인 강화 북부 연안을 따라 축조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병인-신미양요 이후 강화 남쪽 불은면 덕성리에 용두돈대가 들어섬으로써 모두 54개가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1999년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물론 3백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혁파되거나 멸실된 돈대들도 적지 않아 현재 비교적 온전한 돈대의 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웬만큼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돈대들도 몇 십 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돈대들이 갑자기 축조되었던 것일까? 그 뒷면에는 슬픈 역사의 생채기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인조의 삼전도 굴욕으로 상징되는 병자호란이다.

청나라 침략군에게 온 국토가 짓밟히고 백성들이 어육(魚肉) 신세를 면치 못하는 참혹함을 겪은 후, 다시는 그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강력한 국방이 필수임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청나라에 잡혀가 볼모살이를 했던 효종은 인조를 뒤이어 즉위하자 청의 눈을 피해 강화도를 금성탕지(金城湯池)의 요새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생전에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고, 손자대인 숙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강화돈대의 탄생 배경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분오리돈대. 지형에 맞춰 축조해 아름다운 초승달 꼴이다.(사진=문화재청)

반달 모양의 아름다운 돈대

숙종 5(1679) 축조된 최초의 돈대 48개 중 하나인 분오리(分五里)돈대의 가장 큰 특징은 최고의 전망과 아름다운 초승달 모양의 돈대라는 점이다.

분오리는 강화섬의 남쪽 땅끝 마을이다. 남쪽 해안의 중앙, 동막 해수욕장 동쪽 끝에 자리한 분오리돈대는 바다를 향해 돌출한 능선의 끝부분, 곶을 이룬 지형에 앉혀져 있다.

돈대 내부.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강화 본섬 남쪽 동검도(東黔島)의 동검북돈대를 제외하면 강화돈대 중 최남단의 요충에 위치한 돈대이다.

이곳은 좌우로 깊게 만곡(彎曲)된 갯벌을 이룬 포구를 끼고 있어 시야가 매우 넓다. 또한 육지에서 진입할 때는 평지에 가깝지만 해안은 절벽과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해안 방어의 요충지다.

성벽 아래로 보이는 분오리항. 

또한 평균조차가 8m에 달하는 바닷물이 빠지면 한없이 너른 갯벌이 펼쳐져 천혜의 방어벽을 형성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분오리돈대는 강화영문에서 돈장(墩將)을 따로 파견해 직접 관할했다. 서쪽의 송곶돈대까지 거리는 3.1km이다.

원형이거나 사각형으로 쌓은 여느 돈대와는 달리 분오리돈대는 특이하게도 바다 쪽으로 약간 살찐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북면만 제외한 삼면의 자연 절벽을 활용해 성벽을 쌓았기 때문이다. 동쪽으로는 자연암반을 그대로 활용하여 그 위에 석벽을 쌓아 절벽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자연 절벽 위에 성벽을 올렸다.

성벽은 거칠게 다듬은 네모난 면석을 안팎으로 쌓았는데, 높이는 평균 4-5m, 둘레는 113m이며, 안쪽 둘레는 약 70m, 너비는 12.8m이다. 구조는 다른 돈대와 마찬가지로 내외를 석축한 협축의 석벽을 이룬다.

돈대의 문은 좌우에 화강석을 투박하게 다듬어 만든 커다란 무사석(武砂石)을 쌓고, 그 위에 보 형식으로 장대석을 건너지른 형태이다.

특별하게 생긴 지형에 맞추다 보니 문의 위치가 돈대의 동벽 끝부분으로 치우쳐 있다. 게다가 문은 낮고 폭은 매우 좁아 보인다.

분오리돈대 문. 문 위  보 형식으로 건너질러 놓은 긴 돌들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돌무더기. 원래는 낮은 담인 성가퀴가 있었을 것이다
안쪽에서 본 돈문. 무너진 여장(치첩) 잔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무너진 채 방치된 여장. 복원이 온전히 되지 않았다. 성벽 위에 오른 사람이 위태롭게 보인다. 분오리돈대는 큰길 가에 있어 가장 많이 찾는 돈대의 하나다.

돈문 안쪽에는 문짝을 설치했던 흔적으로 빗장에 해당하는 장군목(將軍木)을 끼웠던 구멍이 선명히 남아 있다. 현재 돈대의 평균 높이는 2.62m, 입구 부분의 최고 높이는 약 4m이다.

초지진의 외곽 포대 기능을 갖고 있었던 분오리돈대는 4개의 포좌가 모두 바다를 향해 앉혀져 있다. 성벽 위에 톱니바퀴 모양으로 쌓은 성가퀴인 치첩(雉堞;여장)37개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1994년에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아쉽게도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은 복원되지 않았다.

 

분오리돈대의 성벽. 성곽 위 여장이 복원되지 않아 상단부에 오른 관람객들이 위태해 보인다.

조선 숙종 때의 축성 기술을 잘 간직하고 있는 분오리돈대는 여느 돈대들과는 달리 독특한 개성미를 자랑한다. 1999329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고, 강화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강화의 돈대들 중 가장 아름다운 돈대의 하나로 꼽히는 이 분오리돈대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해보면, 탁 트인 강화 남쪽 바다가 270도 광각으로 조망된다. 그래서 일출과 일몰을 한곳에서 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공중에서 본 분오리돈대. 멀리 동막해수욕장이 보인다.(사진=문화재청)

멀리 영종도와 영종대교 보이며, 또 뒤로는 강화 제일의 산 마니산이 우뚝 서 있다. 강화도 제일의 명승이라 할 만하다.

코로나로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요즘, 분오리돈대에 올라 써늘한 바닷바람을 쐬며 270도 광각으로 바다와 갯벌을 조망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해질녘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넓은 바다와 그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를 보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다. 복원 상태는 B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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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뒤에 붙은 영어 알파벳 대문자는 필자가 돈대의 복원상태를 분류한 등급.
A등급: 여장을 포함,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돈대. 
B등급: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 등은 복원되지 않은 돈대. 
C등급: 돈대 축대 중 기초 부분 정도만 남아 있는 돈대로, 복원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돈대. 
D등급: 돈대의 기초부분만 약간과 돌 무더기만 있을 뿐, 주변 정리도 전혀 돼 있지 않은 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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