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아름다움.. 후애돈대 A
단정한 아름다움.. 후애돈대 A
  • 이광식 작가(내가면 거주)
  • 승인 2021.01.03 00:3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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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의 강화돈대 순례, 첫번째 이야기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54에 위치

2021년 강화뉴스 특별기획으로 1년간 주 1회 '강화 돈대 순례기'를 연재한다.

이번 연재는 이광식 선생(내가면 거주)이 맡아 진행한다. 이광식 선생은 현재 강화의 역사, 문화, 자연, 사람 등 강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글을 본지에 기고하고 있다.    

강화 돈대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역사자산이다. 또한 활용가치도 높은데, 돈대들이 들어선 자리터는 예외 없이 조망이 좋아 강화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소들이다. 

앞으로 문학-연극-음악-미술 등 문화행사들의 무대가 될 수 있다. 이미 수도권 별지기들의 천체관측소 역할을 하고 있고 훌륭한 야외 공연장이기도 하다. 강화 돈대의 문화적 활용가치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강화의 보물과 같은 돈대지만 정작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 현재 강화에는 54개의 돈대가 있다. 이광식 선생의 안내에 따라 매주 하나씩 일 년 동안 돈대를 순례하는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연재에 앞서...

돈대의  '돈(墩)'은 흙무더기라는 뜻이고  '대(臺)'는 평평한 땅이라는 뜻이지만, 개념어 사전에는 '돈(墩)은 봉화를 올리는 곳이고, 대(臺)는 적의 동정을 살피는 곳'이라고 풀이한다.

감시가 수월한 접경이나 해안지역의 높은 평지에 밖으로 성곽을 높게 쌓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둔 방어시설이다. 군사적 목적을 위한 일종의 해안 방어시설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돈대든 대개 4개의 포안(砲眼)을 갖추고 있다. 성곽 위로는 야트막한 여장(女牆:여자가 넘을 만한 낮은 담장이란 뜻)을 쌓았는데, 여장에는 활이나 총을 내놓고 쏠 만한 틈새기(총안)들이 만들어져 있다.

조선 후기 외침에 대비해 강화에는 54개나 되는 돈대들이 100km 해안선을 따라 세워졌다. 약 2km마다 돈대가 하나 꼴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이들 54개의 돈대들은 대부분 숙종 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승군 8,900명과 어영군 4,300명, 석수 등 장인과 보조원  2천 명이 축성에 투입되어 80일 만에 축조되었다. 

계산해보면 돈대 1개소당 연인원 2만 5천 명이 투입된 셈이다. 강화도 유사 이래 최대의 역사(役事)였다.

제목 뒤에 붙은 영어 알파벳 대문자는 필자가 돈대의 복원상태를 분류한 등급이다.

A등급: 여장을 포함,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돈대. 
B등급: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 등은 복원되지 않은 돈대. 
C등급: 돈대 축대 중 기초 부분 정도만 남아 있는 돈대로, 복원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돈대. 
D등급: 돈대의 기초부분만 약간과 돌 무더기만 있을 뿐, 주변 정리도 전혀 돼 있지 않은 돈대. 
(사진자료 중 출처를 따로 밝히지 않은 것은 필자가 촬영한 것임을 밝혀둔다. 글과 함께 자유로 사용할 수 있다) 

강화돈대를 담은 강도전도. 오른쪽에 붉은 글씨로 병조판서 남구만이 강화를 방문, 돈대 형세를 담은 지도를 제작하여 임금께 제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1684년 제작. 영남대박물관 소장.
강화돈대를 담은 강도전도. 오른쪽에 붉은 글씨로 병조판서 남구만이 강화를 방문, 돈대 형세를 담은 지도를 제작하여 임금께 제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1684년 제작. 영남대박물관 소장.

단정한 아름다움.. 후애돈대 A

숙종 5년(1679)에 쌓았던 48개 돈대 중 하나인 후애돈대(後崖墩臺)는 양암(陽岩)돈대, 송곶(松串)돈대, 동검북(東檢北)돈대, 미곶(彌串)돈대, 장곶(長串)돈대(인천유형문화재 제29호), 북일곶(北一串)돈대, 점암(點岩)돈대 등과 함께 길상면에 위치하고 있다.

선두리 어시장 가기 전 도로 옆에 있어서 접근성이 아주 좋으며, 나들길 8코스로 걸어도 볼 수 있다. 주차 공간도 비교적 충분하다.

복원이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져 아름다운 원형을 되찾은 후애돈대.(출처=문화재청)

강화의 54개 돈대 중 48개 돈대는 조선 숙종 5년 강화유수 윤이제 재임시, 어명을 받은 병조판서 김석주의 지휘 하에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삼도의 승군(僧軍) 8,9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80일 만에 완축했다.

빙현돈은 숙종44년 (1718년)에 유수 권성이 축조했으며, 철북돈은 다음해인 숙종 45년 (1719)에 유수 심현택이 축조했고, 초루돈은 그 다음에 숙종 46년(1720)에 유수 어유구가, 작성돈은 영조 (1725)에 유수 박사익이 축조했다.

그후 숙원사업이던  선두포 제방이 완성되면서 포구 양쪽에 있던 양암과 갈곶 두 돈대가 무용지물이 돼버리자 폐쇄했고, 51개 돈대만 수호 관리했다. 

후애돈대는 강화 남쪽 해안 끝자락에 들어서 있으며, 주변 해상과 돈대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화강암을 이용해 정사각형 모양으로 쌓아올렸으며,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를 4개 설치했다. 둘레가 129m이고, 석벽의 높이는 280㎝~500㎝이다. 택지돈대, 동검북돈대와 함께 선두보에 소속됐다.

돈대 주변 마을에 이 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이 때문에 돈대를 신성하게 여기고 보호하여 본디 모습이 잘 남아 있는 편이었다. 여장(女牆)도 거의 온전히 복원되어 단정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돈대는 원성(元城 ; 바닥에서부터 여장 아래 미석(眉石)까지의 성벽) 전체와 여장 일부가 남아 있었는데, 1998년에 보수, 정비했다. 그러나 여장이 있는 상단부를 시멘트로 포장해놓아 아쉬운 느낌이 든다.

후애돈대는 복원이 거의 원형대로 이루어져 단 위의 여장까지 온전하게 복원되었다. A등급. 

 

후애돈대 여장의 총안으로 바라본 강화 남쪽 바다. 총안이란 담에 몸을 숨긴 채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이란 뜻.(사진=이광식)
후애돈대 문. 기둥돌에는 문짝을 고정시키기 위해 판 구멍이 남아 있다.
돈대 문 옆에 놓여 있는 돌확.(출처=강화도문화재여행)
후애돈대 내부. 상단부를 시멘트로 발라놓았다.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원형은 달랐을 것이다.
돈대의 성벽. 돌들이 빈틈없이 맞물려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돈대 포안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
마을 사람들이 세운 돈대 표지판. 돈대를 훼손하면 화를 입는다는 민간신앙이 돈대 보존
에 도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공중에서 본 후애돈대. 뒷산은 높이 374m의 길상산이다. 후애돈대와 이 산 남쪽 자락에 있는 택지돈대(宅只墩臺)까지는 약 2km 떨어져 있다.(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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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구름 2021-01-05 15:04:26
이광식 선생님의 강화돈대 순례기 연재를 축하하면서 역사에 충실한 귀한 글을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돈대보이 2021-01-04 14:35:17
돈대순례 첫번째로 제일 멋진 돈대를 골랐군요. 앞으로 돈대 순례를 하다 보면 후애돈만한 돈대 만나기 어려울 겁니다. 이어질 순례기를 기대하겠습니다만 오기나 잘못된 내용에 대해서는 당연히 지적을 하겠습니다. 이 글에도 몇가지가 눈에 띕니다. 

☆1679년에 축조한 돈대는 48개입니다.

☆점암돈대(點巖墩臺)는 섬암돈(蟾巖墩)의 오기입니다.

☆길상면 소재 돈대는..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 택지돈, 동검도돈, 후애돈입니다. 

☆송곶돈, 미곶돈, 북일곶돈, 장곶돈은 화도면에 있습니다.

돈대보이 2021-01-04 14:30:41
☆양암돈, 갈곶돈은 오래돼서 폐쇄한 돈대가 아닙니다. 선두포에 숙원사업이던 제방이 완성되면서 포구 양 쪽에 있던 두 돈대가 무용지물이 돼버리자 강화유수는 폐기를 상신했고 숙종은 바로 Delet 키를 눌러 삭제시켜 버린 겁니다. 명단에 다시 올릴 이유가 없는 돈대들이죠.

☆돈대 공사기간을 글 앞부분에는 80일이라 했는데 뒷부분에서는 40일이라고 써있네요. 강화군의 관련 자료나 공식 표기에서도 얼마 전까지 40일이라고 했다가 최근에는 80일을 내세우며 우왕좌왕하고 있죠. 1679년 48개 돈대의 공사기간은 6개월입니다. 비변사등록을 보면 기공식 기록과 완공 발표 기록이 나옵니다. 

돈대보이 2021-01-04 14:29:09
돌 몇개 쌓아놓은 돈대.. 별 것 없어 보이지만 돌 하나 하나가 조선시대 왕조의 안위와 관련된 관방전략에서부터 성역과 군역에 동원된 강화도 민초들의 애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투영하는 역사적 프리즘입니다. 허나 막상 그 앞에 가보면 역시 별 것은 없어 보입니다. 진정성이 결여된 복원, 史實에 부합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수사가 있을 뿐... 몇몇 돈대를 거치고 난 후의 순례기에는 사진으로만 원고의 대부분을 채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순례기에 기대하는것은 말라 비틀어진 역사물체에 숨과 온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으로 별 것 없어 보이는 강화도 돈대가  제 빛을 낼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