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강화군의 고려 역사 자산에 대한 무관심
심각한 강화군의 고려 역사 자산에 대한 무관심
  • 박흥열
  • 승인 2020.12.2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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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은 지붕없는 박물관으로 일컬을 정도로 한반도 역사가 응집된 곳이다. 특히 고려 역사 유적은 남한지역에서 가장 많다. 실제로 고려청자 등 고려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유물들이 강화에서 출토되었고 최근에도 고려시대 유적을 조사, 발굴한 사례가 적지 않다.

또 강화군은 20188, 고려건국 1,100주년을 맞아 강화읍내에서 성대하게 고려문화축전을 개최했다. 자랑스럽게 여기니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화군이 정작 고려 역사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대표적으로 고려천도공원의 팔만대장경 상징탑에 엉뚱한 내용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때 몽골이 쳐들어와서 수도를 강화로 옮겼고, 불력(佛力)으로 국난을 극복하려는 뜻으로 만든 팔만대장경인데, 내용은 거란군이 침입해서 팔만대장경을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상징탑을 만들고 설치한 업체가 문제겠지만 최소한의 검토도 하지 않은 강화군도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이 뿐 아니다. 고려 수도 강화를 둘러싼 11.8Km의 고려도성이 아직도 그 형태가 뚜렷이 남아있고, 강화국립문화재연구소도 두차례 조사를 실시하였다. 문화재위원들조차 강화 고려도성을 왜 문화재로 신청하지 않는지 의아해 하지만 정작 강화군은 무관심 일변도이다.

또 있다. 조선시대 강화유수부를 고려궁지라고 표기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1960년대 중반 사적으로 고려궁지라 지정했다고 하여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황궁은 왼쪽 강화여고와 성광교회를 거쳐 용흥궁 공원 위 성공회 성당을 거쳐 북산에 이르는 규모로 짐작한다. 그 옆 견자산에는 최고 권력자 최우의 집이었던 진양부가 있었다.

지금이라도 고려궁지가 아니라 강화유수부로 명칭을 수정하고, 고려 궁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하거나 전시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팔만대장경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찍은 상정고금예문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그 밖에 고려 왕릉이나 당시 귀족들의 무덤인 석실분을 보전하려는 노력도 미미하고, 외포리 망향돈대 부근 삼별초 항쟁 기념비도 옹색하기 짝이 없다. 단군 이래 한반도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백운 이규보 선생의 묘역도 마찬가지이다. 이규보 선생의 문집 하나 제대로 펴내지 않고, 이규보 선생 묘역 외에 기념관 하나 없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혹여 강화군청이 그게 무슨 큰 문제냐, 또는 재산권 때문에 주민들이 반대해서라고 항변하고 싶을지 모른다. 주민들과 함께 문화재를 가꾸고 지키도록 협의하는 일, 그리고 역사 자산 보전이 결국 강화의 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움은 온전히 강화사람에게 남을 것이다. 이제라도 강화군의 분발을 촉구한다.

 

덧붙여 12년 뒤 2032년이면 고려가 강화로 수도를 옮긴 지 800년이 된다. 당시 임금인 고종이 고려천도공원이 자리잡은 승천포로 들어왔다. 승천포는 연미정이 있는 월곶포구, 산이포구와 더불어 분단이전까지 강화에서 가장 번성했던 곳이다.

 

만약 남북관계가 풀려 한강하구 중립수역에 민간 선박이 자유롭게 다니고, 양사면에서 개풍으로 다리가 놓이면 고려천도공원은 일순간 핫플레이스로 떠오를 것이다. 그걸 대비해서라도 팔만대장경 상징탑의 내용을 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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