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이 거란족 침입때문에 만든 것이라고?
팔만대장경이 거란족 침입때문에 만든 것이라고?
  • 박흥열
  • 승인 2020.12.23 11:55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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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팔만대장경은 거란이 아니라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것
- 전문가 감수나 자문없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
천도문 안쪽 가운데 보이는 것이 7미터 규모의 팔만대장경 상징탑
천도문 안쪽 가운데 보이는 것이 7미터 규모의 팔만대장경 상징탑

 

고려천도공원(송해면 당산리) 내에 있는 팔만대장경 상징탑에 엉뚱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강화군은 201911월, 21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고려천도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은 천도문과 작은 광장, 광개토대왕비를 본뜬 7미터 규모의 팔만대장경 상징탑, 인공폭포가 포함된 휴게공간, 고려고종사적비로 구성되어있다.

개장 당시 광개토대왕비 모형을 팔만대장경 상징탑으로 채택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잠시 일었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가 중국 대륙으로 영토를 확장한 것을 상징하는 것인 반면,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전혀 맥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둘을 조합한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다.

광개토대왕비를 본뜬 팔만대장경 상징탑
광개토대왕비를 본뜬 팔만대장경 상징탑

뿐만 아니라 더욱 심각한 것은 상징탑에 새겨진 내용이다. 아래는 기념물에 새겨진 글귀이다.

국난극복 팔만대장경

옛날 현종 2(1011)에 거란주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고려를 침입하자 국왕은 남쪽으로 피난했는데 거란군은 오히려 송악성에 주둔한 뒤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현종은 신하들과 함께 더할 수 없는 큰 서원을 하여 대장경을 판각하여 완성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거란 군사는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 동국이상국집 권251 대장경 대강각판군신기고문

상징탑의 글귀는 강화에서 만든 재조대장경(再造大藏經/팔만대장경)이 아니라 몽골 침략이 있기 200년 전 거란군의 고려 침공 당시 만든 초조대장경(初造大藏經)내용이다.

고려는 두 차례에 걸쳐 대장경을 만든다. 초조대장경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거란군의 침략을 극복하자는 뜻에서 고려 현종 2(1011)부터 선종 4(1087)까지 제작하였다. 이 초조장은 흥왕사를 거쳐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던 중 1232년 몽골이 불태워버렸다.

한편 고려는 1232년 강화로 수도를 옮기고 대몽 항전을 준비한다. 당시 실권자이던 최우 무신정권은 백성들을 다독이고, 부처의 힘을 빌어 국난을 극복하려는 차원에서 불타버린 대장경을 다시 제작한다. 이것이 재조대장경(再造大藏經), 즉 지금 현존하는 팔만대장경인 것이다.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3(1236)부터 38(1251)까지 16년간에 걸쳐 만들었다. 제작된 대장경은 강화도성(江華都城) 서문외(西門外) 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에 봉안되었다가, 강화 선원사를 거쳐 조선 태조때 서울 지천사를 거쳐 합천 해인사로 옮겨 지금까지 보관되고 있다.

몽골의 침략을 극복하려고 팔만대장경을 강화에서 만들었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다. 그런데 정작 팔만대장경 상징탑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고, 강화와 상관없는 불타버린 초조대장경 내용이 대신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강화의 향토사학자 H씨는 웬만한 전문가라면 이 정도는 금방 짚어낼 수 있는 문제인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전문가의 감수나 자문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팔만대장경 상징탑 하단 명판
팔만대장경 상징탑 하단 명판

문제가 되는 것은 이뿐 아니다. 상징탑 하단에 위치한 명판에 새겨진 내용이다.

고려는 거란의 침략에 맞서 지속적인 항쟁을 이어나가며, 국난 극복의 의지를 모아 팔만대장경을 판각하여 완성하였습니다. 이 상징탑은 팔만대장경의 의미와 고구려의 정통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어둠 속에서 빛을 잃지 않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명판의 내용에 따르면 상징탑을 제작한 업체는 강화의 팔만대장경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장경을 만든 시기가 200년이나 차이가 나고, 거란과 몽골의 차이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고구려 정통성 운운하는 것은 더욱 기가 막힌다.

명판 좌측 상단에 조그맣게 붙은 지도도 마찬가지이다. 개풍에 승천부라고 표시하고, 몽골사신을 접대했던 곳으로만 표기하고 있어서 도대체 고려천도공원이 옛날부터 승천포로 불리워졌던 포구라는 것을 알 길이 없다.

8백여년 전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로 수도를 옮길 때 고려 고종이 첫발을 디딘 곳이라는 표시가 우선해야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다.

상징탑과 명판을 만든 업체가 어디인지, 같은 업체인지 아니면 따로 따로 발주가 된 것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 강화의 역사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군 역시 제작 이전에 이러한 중대한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것은 강화 역사문화자산에 대한 무관심의 반증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향토사학자 H씨는 상징탑과 명판의 내용을 빨리 고쳐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고 두고 부끄러운 강화를 상징하는 꼴이 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도 잘못된 사실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상징탑의 내용은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이번 기회에 찬란한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연구와 홍보를 담당할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지역주민들 역시 저런 철제구조로 상징탑을 만들려면 만만치 않은 예산이 소요되었을 텐데, 내용에 대해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면 뭐하러 만들었는가?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말한다.

본지는 향후 팔만대장경 상징탑이 어떻게 개선될지 계속 지켜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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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2020-12-30 08:23:18
강화는 아직도 20세기 전반에 허덕이고 있구나. 대체 왜??

바람 2020-12-29 11:21:10
강화군이 하는 짓이 거의 개그 수준이군. 부끄럽다. ^^; 강화의 자랑 유적 복원에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020-12-27 19:19:38
군청 공보관의 "오해가 없길 바란다" 는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알겠지만 그냥 모르는척 지나가 달라는 말처럼 들리네요. 이거 모르는척 지나가면 군수님이나 공무원들(문화관광과, 박물관 학예사)이나 강화군민들이 관광객들께 두고두고 욕먹을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강화의 후세들에게도 창피스런 일이고요. 초등생들도 아는 몽골과 고려 강화도읍기의 역사를 이렇게 눙쳐서야 안되는 일이죠. 하루 빨리 제대로 고쳐주세요. 행여 '강화뉴스' 가 강화군에 안좋은 일만 찾아서 보도한다고 비난하지는 말구요. 나는 군정 비판 기사는 단 한 줄도 없는 강화의 다른 신문들이 슬픕니다.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해야죠.
'강화뉴스'의 발전을 바랍니다.

바람 2020-12-26 18:48:59
공보관님! 상징탑 명판을 보세요. 거란의 침략에 맞서 팔만대장경을 만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네 창피한 일이고요.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는지 소상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키가140이면 생각도 짧을까 2020-12-26 10:19:38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내용 알려주셔서 강화군민으로서 감사드립니다
빠른 개선이 필요해 보이네요
학부형 입장으로서 자녀들에게도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수 있도록 개인적으로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강화뉴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