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운영자의 '작은 소망'
작은 책방 운영자의 '작은 소망'
  • 안병일(시점 책방지기)
  • 승인 2020.11.01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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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편집자가 붙인 것입니다

학창시절 단골 약속 장소는 서점 앞이었습니다. 미리 가서 신간을 살펴볼 수 있으니 좋고 만에 하나 지인이 늦어도 너그러이 기다려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인터넷 서점이 생기고 책 값이 정가의 80~90%까지 할인하는 출혈 경쟁 속에 책방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만남의 광장 같은 서점이 문을 닫을 때 마음이 참 아렸습니다.

그렇게 줄도산하던 오프라인 책방의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2015년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독립출판물만 다루는 곳, 음악 등 특정 분야의 책만 소개하는 곳 등, 작지만 특색 있는 책방들이 늘던 시기를요. 그런 곳들을 독립서점이라 부른다는 걸 알게 됐고 틈날 때마다 여행하듯 다니곤 했죠. 서울을 중심으로 조금씩 늘어나던 독립서점은 점차 전국으로 확대됐어요. 언젠가부터 어느 지역을 여행할 때 그곳에 작은 책방이 있는지부터 찾아볼 정도로 늘었죠. 그렇게 제주, 광주, 원주, 세종 등등 전국 각지의 보물 같은 책방을 발견하고 찾아가보는 게 가장 큰 취미가 됐습니다.

책방 시점 개업식날

독립서점을 소개하는 플랫폼인 퍼니플랜의 자료에 따르면(20202분기 독립서점 현황조사) 2015101곳에 불과했던 독립서점(동네책방)은 올해 5월 기준 650곳으로 불과 5년새 6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그 사이 문을 닫은 곳을 제외해도 551곳이 운영 중이라고 하니 눈에 띄는 증가세인 건 분명합니다. 그 사이 책을 좋아하고 책방 여행하는 걸 좋아하던 저도 책방을 열었으니 과연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봅니다.

글을 쓰는 작가도 그 글을 편집해 책을 내는 출판사도, 그들이 낸 책을 판매하는 책방도 모두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죠. 오죽하면 최근 동네책방에 대해 책을 쓴 한미화 작가(동네책방 생존탐구, 혜화1117)는 책방 운영하는 걸 돈 없는 정우성이랑 산다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왜 돈벌이 안 되는 책방을 여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요?

사실 제가 책방을 열기로 결심한 후부터 끊임없이 되묻고, 확인하고 성찰했던 지점입니다. “왜 책방을 하고 싶은가? 돈 벌기 어려운 일인데 왜 굳이 이 일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평소 다니던 책방 지기에게 염치없이 물어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책방에 앉아 손님이 얼마나 오는지, 어떤 책들을 파는지 염탐하기도 했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면 책방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요.

저자와의 대화 

그 결과 제가 내린 결론은 세 가지였습니다. 우선 세상엔 돈과 상관 없이 하고 싶은 해야 직성이 풀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방 지기들은 책을 좋아하고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100권을 팔아 얼마의 수익을 남기는 것보다 좋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소개할 때행복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행복한 일이 매일 펼쳐지는데 돈 좀 못 번다고 그 즐거움을 마다할리 없는 사람들인 겁니다. 실제 책방 일을 하고 보니 하루에 스무 권 서른 권 책을 판 날보다(물론 아주 드물지만 이것도 좋지요), 좋은 책 한 권을 제대로 소개하고 그 책을 읽은 분이 잘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책방하길 잘 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 결론은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저처럼 여행할 때 꼭 그 지역의 책방을 찾는 사람들, 새로운 책방이 생길 때마다 일부러 고생을 마다하고 찾는 사람들,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은 믿고 보는 사람들, 좋아하는 책을 곁에 쌓아두고 밤샐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곁엔 참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책방을 찾으면 책방지기는 절로 행복해지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먹고 살 순 있어야, 아니 적어도 손해를 봐선 안 되니까요. 바로 이 부분에서 도서정가제가 등장합니다. 도서 정가제는 온라인이건 오프라인 책방이건 출판사 정한 책값대로 받는 제도를 말합니다. 물론 지금의 정가제는 10% 할인, 5% 간접 할인(적립 등), 무료 배송, 굿즈 제공 등 다양한 예외 조항이 있긴 하지만 말이죠.

세 번째 결론은 건강한 도서정가제가 있다면 책방을 해도 괜찮겠다였습니다. 도서정가제는 단순히 저처럼 책방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먹고 살게 해주는 제도로만 볼 수 없습니다. 제도 자체의 목적도 아니죠. 사실 독자나 책방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양질의 책입니다. 책이 일반 제품처럼 가격 논리로만 가게 되면 좋은 책을 만들 궁리보단 어떻게든 싸게 뽑아’ ‘많이팔아치울 궁리만 하게 될 공산이 큽니다. 실제 우리가 2000년대 마주했던 암울했던 상황이기도 하구요.

어디서든 책방

저는 오랜 기간 생활협동조합에서 근무해 최저가가 아닌 적정가의 의미를 잘 압니다. 특정 농산물 값이 시장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싸다면 약을 많이 쳤거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입산이거나 한 것처럼 말이죠. 결국 싼 값에 당장은 작은 이득을 취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손해인 것을요. 제대로 키워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가치를 알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생태계도 유지될 수 있는 법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죠. 책은 싼 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각의 의미와 가치가 중요하죠. 그런 수고로움에 대해 제대로 값을 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그런 풍토가 갖춰진다면 책방 일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 그 기쁨을 손님과 나눌 수 있는 즐거움,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봄직한 일인 셈이죠. 실제 많은 책방 지기들이 도서 정가제 이야기를 합니다. 덕분에 작은 동네 어귀에도 책방이 늘고 있고 그 책방마다 크고 작은 모임, 강좌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펼쳐지고 있구요.

도서정가제를 두고 최근 말이 많습니다. 책도 하나의 상품인데, 왜 책만 할인하지 않느냐는 주장은 일견 일리 있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어떤 책을 원하는 걸까요? 값싼 책일까요? 아니면 좋은 책일까요? 부족함 투성이지만, 책방을 하고 있는 저는 앞으로도 손님들께 좋은 책을 찾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런 책방이 저뿐 아니라 동네마다 골목마다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결국 그 과실은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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