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섬 재발견, 마을이야기] 양도면 도장리, 두 번째 이야기
[강화섬 재발견, 마을이야기] 양도면 도장리, 두 번째 이야기
  • 김시완 기자
  • 승인 2020.10.28 14: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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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리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 중의 하나가 도감뿌리농원이다. 도감뿌리농원을 운영하는 안재원 대표는 어린이들이 농업·농촌에 대해서 배우고 전통놀이, 전통 농사법, 전통 생활용품 등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지키고 가르치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0년 농촌진흥청 시행 농촌교육농장의 사업자로 지정되어 다양한 농촌생태체험을 주요 주제로 운영하고 있다. 매년 3,000명 이상의 체험객들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지정하는 대한민국 스타 팜(Star Farm)’으로 선정되어 친환경 재배의 성과도 인정받았다.

안재원 대표

팔만대장경판을 만들 나무를 다듬는 마을

안재원 대표는 순흥 안씨로 도장리 토박이이다. 순흥 안씨는 약 400년 전에 무관으로 강화에 정착하여 안씨 집성촌을 이뤘으며 현재는 13대째로 이어지고 있다.

도감은 불교의 여러 행정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강화 선원면에 팔만대장경 조판을 총괄하는 대장도감이 있었고, 도장리는 팔만대장경의 원목을 관리하던 분사 정도의 도감이 있던 자리의 뿌리라 해서 '도감뿌리 농원'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안재원 대표는 이곳 도장리 주변이 원래 바다였습니다.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위한 나무를 소금물에 삶아 약 1년 정도를 말리는 과정인 목염을 하고 저장하여 보관, 이동하던 통로인 벗개의 흔적이 있었죠. 1980년대 농지정리로 완전히 메워져 지금은 벗개의 흔적이 사라지고 없지만, 팔만대장경을 만들 당시에 이 원목을 운반하기 위한 수로로 이용하기 위해 어른 키 높이만큼 구덩이를 파고 흙을 양옆으로 쌓아 벗개라는 수로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했다.

팔만대장경 경판을 인쇄하는 국가적 대 사업을 이루었던 자부심과 더불어 몽골과의 전쟁을 두고 강화까지 밀려왔던 지배층의 무기력함을 보며 나무 하나까지 다듬고 만들어 갔을 민중들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면 팔만대장경 경판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진 부처의 마음이 곧 민중들의 마음이 아니었을지 싶었다.

도감뿌리농원 전경

자연 놀이터에서 사람됨을 배우다

안재원 어르신은 도감뿌리농원의 제일 큰 즐거움을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자연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 말한다.

요즘 아이들은 맨날 컴퓨터나 휴대폰을 붙들고 놀잖아요? 그러니까 혼자 노는 거예요.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공유하고 합을 맞추는 것을 몰라요. 그렇게 놀 수 있는 환경이 못 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자연 공간 자체가 놀이터였잖아요? 산이며 들이며 논에서 놀면서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고, 머리를 맞대면서 지혜를 짜내고 그게 어른이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배우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자연 속에서의 놀이가 결국은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길이잖아요. 그걸 아이들이 느끼고 기억하게 해 주고 싶은 거지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자율성을 키우는 일, 아이들이 놀 때는 아이들만의 방식이 있으므로 절대 어른의 관점으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웃는 모습이, 마치 어릴 적 엄마에게 혼나면 도망가서 숨던 할아버지 등짝처럼 따스했다.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 이어나갈 뜻있는 사람이 필요

안재원 어르신은 혼자서 도감뿌리농장을 운영하는 상황이라 조금은 버겁다고 한다. 체험농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시골살이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 이 일을 이어가 준다면 ……. 그러나 아쉬움도 잠시, 현재 안재원 어르신은 빛이 없이도 농작물을 수확하는 작법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인공적인 빛 80%, 자연 빛 20% 정도 사용해서 감자며 채소를 키워보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랄 수 있는 농작법을 고민 중이다. 또 아파트형 농작물 재배도 가능하도록 구상 중이다. 끝없이 친환경농사 작법과 작물 재배를 고민하는 모습이 70이 넘은 연세가 무색하도록 힘이 있어 보였다.

돈 바라고 하면 못하죠. 처음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어떻게 이런 농장을 만들어 볼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제 이곳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장이 되었어요. 하지만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줄고 노령화도 엄청 빠르게 진행되잖아요. 나 어릴 때는 120호가 살았는데 약 62호 정도 살고 있지요. 이제 이 마을에서 아이들 노는 걸 보기가 힘들어요.”

매체를 통해 접하던 농촌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그리고 직업으로서 농부가 되기를 바라는 청년들이 사라져 감으로써 농업을 업으로 하는 분들이 느끼는 심각성이 더욱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이런 농장들이 활성화되고 아이들의 놀이 소리가 시골 마을에 왁자하게 들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막연하게 기대해 보며 다음 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작은책방 '국자와 주걱'

도장리는 강화에서 귀촌 1번지라고 할 만큼 다양한 귀농, 귀촌인들이 많다. 이들은 지역민들과 어우러져 생태농업, 책방, 카페 등 다양한 형태로 도장리를 대표하고 있다.

내가 사는 집이 책방이 되고, 책방이 문화가 되고

이중 시골 구석진 마을에 농가를 그대로 책방으로 운영하는 국자와 주걱도 있다. ‘국자와 주걱이라는 이름은 많이 퍼주는 곳이 되라는 의미로 강화에 사는 함민복 시인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국자와 주걱 김현숙 대표는 그냥 시골이 좋았고, 시골에서 살고 싶어서 왔는데 마침 이 집이 나서 무조건 들어왔다고 했다.

국자와주걱 김현숙 대표

작은 책방에 관심이 있어서 일본의 작은 책방과 관련된 책도 읽고 했어요. 원래는 북유럽을 다녀온 지인이 그곳의 동네 책방이 너무 좋아서 강화에서 작은 책방을 열고 싶어 했었죠. 근데 잘 안돼서 충청도에서 작은 책방을 냈는데 정말 좋다고 저한테 강하게 권유했지요. 저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냥 책방을 시작한 거예요.”

기자가 처음 국자와 주걱을 왔을 때가 개업 후 첫 북 콘서트가 열리던 날이었다. 강화의 원로 시인의 시 낭송과 젊은 시인들의 시 낭송회, 인디 가수의 공연 등이 다채롭게 진행되면서 꽤 인상적이었다.

해마다 뜻있는 작가들과 지역 예술인들이 이곳에서 북 콘서트도 하고 공연도 하는 작은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나라 각지에서 이곳에 오기 위해 강화를 찾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했다.

큰나무캠프힐 전경

발달 장애인들의 마을큰나무 캠프힐

도장리는 다니면 다닐수록 좋은 동네란 생각이 강해졌다.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생각을 실천하며 모여 사는 동네라 느껴졌다. 양도에서 많이 알려진 곳 중 하나가 큰나무캠프 힐이다.

큰나무캠프힐은 문연상, 손인실 부부가 독일의 교육사상가 루돌프 슈타이너의 발도로프 교육철학을 토대로 운영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마을이다. 보통 장애인 시설이 폐쇄형 공간이라면 큰나무캠프힐은 나무 울타리와 생활공간이 마치 한 동의 마을처럼 이루어져 있다.

큰나무 캠프 힐은 2017년도에 문을 열었다. 마을 분들에게 농사짓는 법도 배우고 이야기하고 차 대접도 하면서 친숙함을 쌓은 기간이 이제는 사람들이 모여 책 모임도 하고 음악 감상도 하고 영화모임도 하는 공유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문연상 대표는 마을과 학교가 어울려 졸업생 아이들이 마을에 남을 수 있는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마을에서 지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청년도 필요하고, 문화도 필요하다. 그래서 큰나무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왼쪽 문연상 대표, 오른쪽 김시완 기자

여러 곳을 물색하다가 도장리를 선택한 이유는 저희를 이해하고 잘 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 도장리에 살고 있었고 다양한 방면의 활동을 통해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에요.”

큰나무 캠프 힐은 6시 카페가 문을 닫은 후에는 다양한 모임에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누구라도 언제든지 와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자리이길 바라며 지금의 카페 바로 옆에 새로 지은 건축물에는 멋진 음악 감상 공간이 있다.

도장리 취재를 마치며 마을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연다는 것,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날 것까지 자연스레 보여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모습이 도장리에는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정말 이상한 마을이다. 어쩌면 도장리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다들 도장리의 넉넉하고 푸근한 풍광을 닮아서일까? 마을을 알아 간다는 것이 새삼 행복한 일임을 도장리에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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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2020-10-30 08:26:30
사람사는 냄새 가득한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