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섬 재발견, 마을이야기] 양도면 도장리, 첫번째 이야기
[강화섬 재발견, 마을이야기] 양도면 도장리, 첫번째 이야기
  • 김시완 기자
  • 승인 2020.10.28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풍이 지난 후 한층 따가워진 햇볕을 뒤로 받으며 도장리로 향했다. 앞으로 마니산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고 뒤로는 진강산이 나지막이 마을을 안고 있었다. 그 가운데 펼쳐진 넓은 평야를 끼고 도장 1리와 2리로 나뉘어 있다.

도장리라는 이름은 진강 목장이 있을 때, 목장 머리에 있는 마을 장두동과 그 아랫마을 장하동을 합하여 도장리라고 붙여졌다. 도장 2리 어두니 마을은 물고기의 머리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어두니 양달쪽에 있는 마을을 양달말이라고 한다.

도장 1리에는 대흥마을, 장아래 마을, 하록마을이 있다. 하나의 리에서 세 개로 나눠진 동네가 잘 없다는 부녀 회장님 말에 따르면 세 개 마을의 성향도 조금씩 다르며 각기 개성들이 넘치는 곳이라고 한다. 큰나무 카페 있는 쪽이 대흥마을. 도감 뿌리 농원이 있는 곳이 장아래 마을 그리고 도장리의 끝자락이 하록 마을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옛 이름들이지만 곱돌뫼(양달말 동남쪽에 있는 산), 궤논들(돼기들 서쪽에 있는 들), 농바위(진강산 동남쪽에 있는 바위) 등과 같은 도장리의 옛 이름들을 더듬으며 우리말 이름만큼이나 정겨운 도장리의 아름다운 풍광과 지리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대흥마을 풍경. 왼쪽 발간 지붕이 작은책방 '국자와 주걱'

순박한 마을에는 순박한 사람들의 별이 뜬다

도장리 중에서도 제일 큰 부락이라 할 수 있는 대흥마을을 찾았다. 고광순 이장, 장분남 부녀회장, 유현규씨를 함께 만났다.

먼저 고광순 이장이 40대 중반의 젊은 분이라 놀랐다. 이장과 유현규씨는 도장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부녀 회장은 화가이며 현재 산마을 고등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기자 이장님도 농업이 주이신지요? 젊은 분이 농촌에 남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도장1리 이장 고광순님

고광순 이장(이하 이장) 저는 농사도 조금 짓고, 개인 사업도 조그맣게 하고 있어요. 도장리가 고향이죠. 대학 때 외에는 마을을 떠나 본 적이 없어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에요. 땅도 있고, 집도 있어 기본적인 것이 다 해결되잖아요. 굳이 도시에 나가서 살 이유가 없죠. 여기가 좋지요.

유현규(이하 유) 여기가 강화에서 3대 명당 중에 하나에요. 대부분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그래서인지 욕심 없이 순박하죠.

기자 부녀회장님은 원래 강화 토박이분이 아닌 줄로 알아요.

장분남 부녀회장(이하 부녀회장) 제가 강화에 산 지 30년 됐어요. 강화 여기저기 다 살아봤는데 양도면이 제일 좋더라구요. 도장리는 세 부락으로 나뉘어 있는데 부락마다 부녀회장이 따로 있어요. 그 분들은 마을 회관도 관리하고 각각의 마을에서 활동하는데 저는 주로 읍과 관련된 일을 해요. 딱히 부녀회장이 되려고 한 건 아닌데 그저 봉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하고 있죠. (웃음)

도장1리 부녀회장 장분남님
도장1리 부녀회장 장분남님

세대간, 외지인, 토착민 간의 어울림

도장리 역시 70대에서 80대분들이 대부분이며 50~60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노령인구가 많다. 수도권 인접 지역이라 외지인들의 유입이 많다고는 하나 그 또한 노후의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한 목적이 많다고 한다. 이로 인해 농촌 노령화 현상이 더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외지인 유입이 많아지면서 마을 내 공동체적 협력이 절실하게 필요해 보였다.

이장 실제 외지인들이 들어온다고 농촌 경제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 분들이 농사를 직접 짓는 것도 아니고, 또 외지에서 오신 분들 끼로 어울리다 보니 토박이 분들과 조금은 단절된 느낌이 많지요.

양도면 친환경작목반 유현규님

외지인 유입은 어쩔 수 없는 현상 같아요. 여기 분들이 땅을 팔고 나가는 경우도 많고, 어두니 마을은 이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외지인인데 도장 2리는 그래도 30% 정도로 적은 편에 속하죠.

부녀회장 문제는 외지인이 지역민과 동화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부분이 조금 아쉬워요. 마을 길 풀 깎기 같은 경우는 마을 주민들은 당연히 하는 것으로 어르신들까지 나와서 동참하는데 외지인들은 함께 다니는 길인데도 나오지 않아요.

이장 외지인 유입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조금은 그들이 농촌에 들어와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마을 일에 관심을 가지고 협력한다면 마을이 좀 더 좋아지겠죠. 농촌 인심이 좋다는 것이 들어오면 식구처럼 맞아줄 수 있고, 서로 도우면서 사는 게 미덕인 거잖아요.

얼마 전부터 가나인들이 두 명이 주변에 살아요. 서커스단에서 공연하다가 코로나로 비행기 길이 막히면서 이곳에 머물게 됐지요. 얼마나 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처음 왔을 때는 어르신들이 놀라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주저주저했죠. 근데 둘이서 마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친해지려고 하니까 지금은 그 둘이 지나가면 어르신들이 불러서 커피도 주고 밥도 챙겨주고 그러거든요. 한국어를 못해서 이야기는 못 하지만 마을에 사니까 함께 살피고 도우는 거지요. 그게 시골 인심이라고 생각해요.

부녀회장 누구든 마을에서 밥 먹고 살면 식구가 되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 외지인들도 지역민들도 서로 소통하고 마을 일을 내 일같이 여기면 좋을 텐데요.

 

우직한 사람이 마을을 지킨다

유현규 씨는 현재 양도 친환경 작목반에서 20년 넘게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 또한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한다.

친환경이 자연에도 좋고 사람에게도 좋으니 그 믿음으로 친환경 농업을 시작했지요. 친환경 작목반을 김정택 목사님이랑 시작할 때도 인원이 6명 좀 넘었어요. 한때는 10명 넘게 늘어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을 떠나는 분들도 계시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는 분도 생기면서 현재는 남아있는 사람이 몇 안 돼요.

친환경 농법은 매년 친환경 인증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양도 친환경 작목회가 19년부터는 개별인증을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매회 친환경 인증을 받는 과정이 너무 까다롭고 복잡해요. 처음 친환경 시작할 때만 해도 나름의 장점이 있었는데 요즘은 투자 대비 가격에서도 소득이 크게 나지 않으니까 결국은 농사짓는 걸 포기하고 떠나거나 일반 작물로 돌아서는 경우도 많아요. 물론 현재로서는 친환경 농업이 더 늘어날 것 같지는 않고 좀 답답한 현실이죠.

그럼에도 유현규 씨는 고집스럽게 농사를 짓고 있다. 그 이유를 물었다.

농사짓는 것이 그저 좋아요. 딱히 끌리는 일도 없거니와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서 자유롭고 언제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잖아요. 친환경은 제가 특별히 의미를 가지고 한다기 보다 처음처럼 자연도 사람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니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부녀회장 현규 씨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칭찬할 만한 사람이지요. 어떻게 보면 현규씨 같이 뚝심 있는 사람이 농촌을 지키고 있어서 농사짓겠다고 하는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되는 거잖아요.

쇠기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가 생각났다. 우직한 자의 어리석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어쩌면 현규 씨 같은 우직한 농사꾼이 농촌을 지키고 자연과 사람을 살리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사라져 가는 마을 공동체 문화를 위하여

도장리 청년 모임(대부분이 70대 이하부터 40대 중·후반이다)은 마을 문화들을 이끌어 가는 주축이다. 젊은 농꾼들은 저녁 모임을 통해 마을에서 생기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하면 농촌살이를 좀 더 풍요로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처음에는 스무 명 정도로 시작했던 풍물패는 마을을 떠나는 청년들이 생기면서 현재는 열두 명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틈날 때마다 연습하여 보름 행사, 첩사제, 체육대회 등 마을 행사에서 공연했었는데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면서 활동을 못 하는 상황이다.

특히 부녀 회장님은 마을 풍물패에서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루며 가무를 즐기시는 놀이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여전히 농번기마다 두레를 통해 상부상조하며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마을의 문화를 온몸으로 즐기며 이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의 인심이 부러워지는 대목이었다.

 

개발과 발전의 사이에서

이장 저는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우리 동네를 좋아해요. 그런데 석모대교가 개통되면서 이쪽으로 둘러 가는 차들이 많다 보니 차도 너무 많이 다니고 시끄러워졌죠. 게다가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니 사고 위험도 많아졌고요. 그래서 군청에 삼거리 회전교차로 만들어 달라고 진정서 올렸는데 매번 검토해 보겠다는 대답만 오고 실행이 안 되고 있어요.

부녀회장 개발은 이미 엄청나게 진행됐죠. 어두니 마을 개발로 물고기 머리 부분은 다 해체됐어요. 대흥마을 역시 개발이 진행 중이고요. 농촌 고유의 생태와 마을의 특징이 사라지는 것 같아 정말 아쉬워요.

이미 개발이 시작되고 있는데 그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문제들을 군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아요. 마을 산 밑에 있는 비포장도로도 차들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 파헤쳐져 문제가 심각한데 개발 정책만 있고 이를 보완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문제를 해결한 정책이 갖춰지지 않은 것 같아요.

 

도장리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지키는 길

부녀회장 제가 강화에서 30년을 살았거든요. 근데 도장리 사람들이 정말 순하고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각자의 다양한 색깔이 살아있는 도장리가 좋아요. 별다른 욕심 없이 순하게 살아가고 그런 순한 사람들이 좋아서 이곳에 터를 잡은 거지요.

저는 지금까지 강화의 풍경을 주로 담았지요. 그런데 요즘은 강화의 풍경에서 농사짓는 사람들도 그리고 함께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어요. 농촌의 문화가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그림으로 그리면 그것도 멋진 일일 거예요. 기계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농촌 풍경들이 이제는 거의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짚 태우기, 함께 어울려 새참 먹는 풍경 등 이제는 볼 수 없는 놀이나 문화를 그리고 싶어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요. 언제든 찾아가면 밥상 내오고 술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곳이 흔하지 않죠. 이런 농촌 공동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고맙죠.

부녀회장 우린 현규씨네서 밥 먹는 게 목표예요. 어머니 음식 솜씨가 최고예요. 농사일도 어머니 밥 먹으려고 돕기도 하죠.

이장 도장리 사람으로서 큰 변화 없이 풍요롭고 사고 없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동네였으면 좋겠어요. 시골의 전원 모습을 잃지 않고 옛날의 힘들었던 농경문화지만 그럼에도 함께 나누었던 공동체성이 있었잖아요. 편리해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는 것 같아 늘 아쉽지요.

인터뷰를 마치니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별이 산자락 위로 가득하다. 도종환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우직하고 순박한 사람들의 모임,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마을에 별이 참 많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