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숲, 그림책이 있는 책방
바람과 숲, 그림책이 있는 책방
  • 신안나(책방 바람숲지기)
  • 승인 2020.10.04 2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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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작은 책방

2020년도 벌써 9개월이나 지났는데, 지난 9개월 중 4개월은 코로나로 문을 닫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리적인 위축감과 무기력증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당장에 새로운 방안을 찾고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도서관과 한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책방이기에 사립도서관이기는 하지만 도서관이 지닌 공공성과 도서관의 특성 또한 고려해야 했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하게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 운영하기로 했다. 사전 예약제로, 소수의 인원만,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하고, 발열 체크와 손 소독 후 이용하는 것으로 정했다. 책방지기의 주 업무가 청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간을 정해 환기와 소독, 청소하면서 위생관리에 온 정성을 쏟아부었다.

다행스럽게도 바람숲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책방은 문을 열고 한 손에 체온계를 들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책을 많이 팔지는 못했었지만, 이 시기를 보내면서 책을 많이 팔고 싶다는 마음은 내려놓게 되었다. 무엇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우선으로 하게 된다. 여전히 모임과 행사는 진행하고 있지 않지만, 문을 열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이 다행스러운 날들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약제 이전에는 도서관, 책방·북카페를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예약제 시행 이후에는 도서관 이용 예약을 한 사람만 책방·북카페를 이용할 수 있게 된 점이다. 그런데도 책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미리 주문 후 받아 갈 수 있고, 바람숲의 야외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바람숲 야외공간

바람과 숲, 그림책이 건네는 위로

바람숲에서 할 수 있는 멋진 일 중 하나는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야외 데크 위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과 해먹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그림책이 함께 한다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다.

그림책은 짧고 읽기 쉽지만, 그 안에는 삶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용기 같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마음, 자연의 아름다움 등 중요한 가치들이 담겨 있다. 0세부터 100세까지 나이를 초월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며 상상하고 느끼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스스로 답을 찾으며 성장해 가고, 어른들은 그림책에서 위안을 얻고 때로는 감동을 하며 그 안에서 휴식을 찾는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해 책을 손에 들 여유가 없거나,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바람숲에서 그림책 한 권을 들고 바람도 느끼고 하늘도 한번 보기를 권하고 싶다.

바람숲 야외공간

책방지기의 첫 그림책

내가 어쩌다 책방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1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환경단체의 활동가로 남이섬에 파견 나가 있을 때인데, 우리 사무실 바로 옆 건물에서 몇 달 동안 공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하고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좀 생뚱맞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림책으로 가득 찬 공간이 참 매력적이었고 쾌적한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럽게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처음 만난 그림책이 또다시 숲속으로(매리 홀 예츠 지음. 한림출판사)였다. 숲속에서 동물들의 장기자랑이 시작되고, 동물들은 저마다 자기의 장기를 보여 준다.

드디어 꼬마 아이의 차례가 되어 장기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려다가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때굴때굴 웃고 만다. 아이의 웃는 모습에 나이 많은 코끼리가 이렇게 말한다. 이건 정말 굉장한데!, 당신이 제일 잘했어요. 누구도 당신처럼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이 그림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짧고 단순한 글과 그림으로 어쩜 이리도 깊은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것인지 너무나 놀라웠다. 복잡한 생각들이 단순해졌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다는 위로와 함께 이상한 용기도 생겼다.

이 그림책을 시작으로 그림책도서관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고, 지금의 책방 운영까지 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으로 나의 길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책의 힘을 믿는다. 누군가 멋진 책을 만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고, 생각과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책방을 운영하면서 때로는 삶이 힘들기도 하고 의미를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떠올린다. 숲속 바닥에 누워서 배를 움켜잡고 깔깔깔 웃고 있는 책 속 아이를. 그리고 나도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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