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곤약'이라고 한다
이름은 '곤약'이라고 한다
  • 문연상
  • 승인 2020.08.14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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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연상 큰나무 캠프힐 대표는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양도면에서 카페, 천연뱔효빵, 농사, 양봉일을 주로 하고 있고, 마을 안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문연상 큰나무캠프힐 대표
문연상 큰나무캠프힐 대표

이름은 곤약이라 한다. 나이는 석 달이 조금 넘었다. 누런빛을 띠고 있고 덩치가 좀 있는 편이다. 주로 자기 공간 안에 머물러 있고, 조금은 밖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금세 숨거나 집으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구석진 자리, 구멍 난 공간, 판자 속 같은 곳을 찾지만 평온할 때는 다른 놈들과 같이 돌아다니면서 모이를 열심히 먹기도 한다. 잘 보면 양쪽 발이 꺾여 안으로 굽어있다. 그러니깐 걸을 때 발바닥이 아닌 발목으로 걷는다. 약간 뒤뚱거리긴 하지만 처음에 비해 제법 잘 걷는다.

물론 다른 놈들에 비해 한참 뒤쳐져있다. 곤약이는 이곳 닭장 안에 있는 마흔 다섯 마리 닭 중에 하나다.

곤약
곤약

올해 330일 날, 부화기에 종란 29개를 넣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계란의 위, 아래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습도와 온도를 잘 맞추어주면 기계가 알아서 품어주었다가 스물 하루가 지나 깨어 나오는 신기한 일이었다. 자연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신해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든 생명은 어디서나 피어나고 있는게 분명했다.

거의 정확하게 날짜에 맞추어 알이 쪼개지면서 보드라운 것들이 태어났다. 세상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을 거다. 저 가녀린 것들이, 저렇게나 약한 것들이 껍질을 깨고서 나오다니. 우리도 그랬을 거다. 누구나 다 저렇게, 무언가의 껍질을 힘껏 쪼개어내면서 나온거 아닌가.

그런데 한 마리가 이상했다. 좀체 나오지 못하는 거다. 아마 마지막 즈음 습도조절이 안되면서 껍질이 몸통에 달라 붙은듯 싶었다. 게딱지처럼 꽉 붙어가지고는 머리 쪽 빼고는 옴짝 달싹도 못하고 있었다. 부화기를 몇 번 오가며 보다가는 성질 급하게 문을 열고 껍질을 잡아 뜯었다. 껍질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저곳 한참을 벗겨내니 그제서야 몸통이 드러났다.

나다만 속살, 축축한 깃털에 파편이 여기저기 묻은 채였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걸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가 알아서 나오도록 더 기다렸어야 하는 건데. 쓸데없는 성급함이 오히려 피해만 준건 아닌지. 그날 이후로 곤약이는 살아남은 대신에 저렇게 발바닥이 위로 굽은 채로 살아간다.

부화기에서 나온 놈들은 대부분 청계였다. 다리가 푸르스름하고 털은 검든지 아니면 흰색이었다. 벌써 장닭 흉내를 내는 것도 있고 서로들 모가지를 세우고 싸움질까지 해대곤 한다. 곤약이는 아마 태생이 잘 못 굴러온 알이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하나만 다를 수가 없다. 전혀 다른 품종의 것이 장애까지 있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살수는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나름 잘 버티고 있다.

그동안 작은 우리에 넣고서 보호를 했다. 자기보다 어린 것들하고 지내도록 하면서 먹고 마실 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었다. 보온등에 박스집도 마련해 주고. 그 불편한 다리로 살아갈 세상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장애가 장애 되지 않도록 보호해주었다.

산양과 닭들
산양과 닭들

얼마 전부터 닭장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그동안 안전하게 보호받기만 했던 경계를 걷어내는 중이다. 그 문 밖에는 한 달 먼저 돈 주고 사온 산란계가 서른 마리나 있다. 몸집도 크고 사나워 조금만 거슬려도 엄청 쪼아댄다. 마당에는 산양도 두 마리가 있다. 잘못하면 발굽에 밟힌다. 그 너머에는 고양이들 천지다. 험난하기 그지없는 세상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섞이도록 해야 하지 않나. 더불어 살도록 해야 하는 거지. 그렇게 맘먹고 문을 열어주었다. 조심스럽게 나들이를 하게 된 곤약이. 얼마 안 되어 이 닭에게 벌어진 일을 똑똑히 보았다.

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약자의 위치에 놓였을 때 일어나는 일들, 경계를 젖히는 시도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곤약이의 눈으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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