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라는 이름 다시 찾기를 - 남북관계는 노래를 바꾸고 이름을 만든다
‘평화’라는 이름 다시 찾기를 - 남북관계는 노래를 바꾸고 이름을 만든다
  • 최보길
  • 승인 2012.10.2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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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길의 발로 새긴 강화역사 이야기 ⑤]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강화 평화 전망대)
통일전망대와 평화전망대
 
우리나라에는 북녘과 경계를 맞닿은 곳에 분단의 현실을 느낄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개방한 전망대가 많다. 하지만 ‘평화’라는 이름을 붙인 전망대 보다는 ‘통일’이라는 이름을 붙인 전망대가 더 많다. ‘통일’이라는 이름이 형식이라면, ‘평화’라는 이름은 내용일 것이다. 통일전망대 일색이던 전망대 명칭에 ‘평화’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니 더 새롭다. 지금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강화와 철원에 전망대가 있다. 
 
인공의 경계선인 철책으로 무성한 철원과 자연의 하나인 강이 더 큰 경계선이 되는 강화 평화전망대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철원의 평화전망대가 분단의 현실을 느끼게 하는 곳이라면 강화의 평화전망대는 분단세대인 우리에게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분단 전, 혹은 분단을 극복한 후의 이웃 같은 북녘 땅을 상상하기에 더 유리한 풍경이다. 다른 곳의 전망대처럼 강화 평화전망대도 철책이 앞을 가로지르기는 하지만 그다지 시야를 크게 막지는 않아서 북녘 땅을 차분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도무지 인공의 철책이 어울리지 않는 평화전망대에서 평화를 바라보는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강 하나로 확연히 구분되는 삶과 철책으로 구분되는 각각의 삶은 서로 다를 것이다. 강을 경계로 만나는 두 지역은 서로 닮은 점도 다른 점도 함께 있을 터인데, 철책으로 갈라진 두 지역은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아 보인다. 
 
오랜 세월동안 남과 북이 서로를 어떻게 보았는가에 따라서 두 지역은 가까운 이웃의 모습보다는 국가의 정책에 흡수된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철책이 계속해서 경계를 짓고 있는 상황에서 세월이 흘러 세대가 바뀌고 또 바뀌어간다면 어쩌면 저 강은 지금도 답답함을 주고 있는 ‘경계’의 의미를 넘어 오갈수 없는 ‘장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평화전망대에서 북녘을 바라보며 우리는 평화의 첫길이 서로의 화해를 바탕으로한 인공적인 철조망을 걷어내는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공존할 수 없는 이름 제적(制敵)과 평화(平和)
 
강화평화전망대가 생기기 전 강화에서는 전망대가 있는 제적봉이나 혹은 봉천산 위로 올라 북녘 땅을 조망하곤 했다. 지금도 평화전망대로 가는 이정표에는 제적봉(制赤峰)이라는 수식이 따라 붙고 있다.  평화전망대가 자리잡은 제적봉의 지명은 한자로 제적봉(制赤峰)이다. 직역하면 ‘붉음을 제압하는 봉우리’가 될 터인데 그 ‘붉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게 생각해봐야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제적봉(制敵峰)이라 하지 않은 것이다. 적이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은유적 표현을 쓴 것이다. ‘제적’을 딛고 우뚝 선 ‘평화전망대’이기에 ‘평화’라는 그 이름이 더 의미롭게 여겨진다. 
 
최근에는 남북관계가 예전보다 악화되면서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했다. 평화전망대와 제적봉이 함께 쓰여진 이정표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평화의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제적’과 ‘평화’가 공존할 수 있는 단어인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다. 정부의 대북정책 그리고 남북관계의 상황에 따라 전망대의 이름이 바뀌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도 제적봉 위에 우뚝 선 평화전망대이니 평화의 눈이 ‘제적(制赤)’의 눈을 가려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강화평화전망대에 울리는 “그리운 금강산”
 
전망대로 들어가기 전 망향단에는 “그리운 금강산”이 흐르고, 노랫가락이 맴돌아 머무는 곳에서 “그리운 금강산”의 가사가 새겨진 노래비를 만난다.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보면 금강산이 보이지도 않고, 지리적으로도 동쪽 금강산의 정반대 방향인 서쪽 끝 강화도에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이곳에 노래비가 있는 까닭은 작사가와 작곡가가 강화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리운 금강산의 노랫가락보다는 작사자, 작곡자의 연고지를 강조한 것이다. 
 
“누구의 주제런가”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우리에게 북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금강산에 대한 예찬을 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지금 우리가 부르는 가사는 원래의 가사가 아니다. 이 노래는 1961년에 작사, 작곡되었으나 우리에게 익숙한 가사는 1972년에 변경된 가사다. 이 노래가 처음 만들어질 때의 가사에는 ‘예대로인가’가 ‘짓밟힌 자리’였고, ‘슬픔 풀릴때까지’가 ‘원한 풀릴 때 까지’였고, ‘못가본지 몇몇 해’가 ‘더럽힌지 몇몇해’였다. 
 
1961년 처음 만들어질 때의 가사에는 북한에 대한 원망이 더 깊어 보인다. 적대적 대립관계를 반영한 이 노래 가사의 변화는 1972년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원칙을 합의하였던 7.4 남북공동성명과 관련이 깊다. 같은 해 남북공동성명의 후속조치로 같은 해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렸을 때 대표단과 함께 간 예술단이 평양에서의 공연 때 이 노래를 부르기로 했으나, 원래의 가사로 부르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아래 일부 수정하여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평화를 전망한다는 것
 
평화전망대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평화를 보는 곳인데 그다지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평화전망대를 가기위해서 거쳐야하는 민통선 검문과 평화전망대 주변에 전시된 장갑차 등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에 대해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오직 평화로운 한강하구의 시원한 흐름만이 우리에게 자연 그대로의 평화, 우리가 꿈꾸어오는 평화임을 보여준다. 평화를 전망한다는 것이 단순히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일 것이다’라는 의미로서 다가오길 간절하게 바란다.
 
   

 

   
 

[이 기사는 인천교사신문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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