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의 평화에 초대될 것입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서강휘 임마누엘 신부 대담
‘우리는 민족의 평화에 초대될 것입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서강휘 임마누엘 신부 대담
  • 박흥열
  • 승인 2020.07.07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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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한번의 깨달음으로 진리를 알았다고 우쭐대는 사람들이 있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 그들이 진리를 한번 마주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붙잡은 진리는 참다운 진리가 아니다. 그렇게 붙잡을 수 있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명나라때 왕양명이라는 사람은 그런 진리를 ‘광경’이라고 불렀다. 헛된 그림자, 혹은 찰나에 사라지는 풍경일 뿐이라는 의미다. 참다운 진리를 안 사람은 하나의 광경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스스로 자부하지 않는다.
스스로 ‘나는 깨달은 자요’라고 교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깨달았다고 여긴 것은 다시 한순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 (2019.1.13. 강론 내용 중 일부)

 

지난 6월 중순, 양도면 진강산 아래 자리잡은 인천가톨릭대학교를 찾았다. 인천가톨릭대학교는 1996년에 개교하여 내년이면 25주년이다. 강화캠퍼스에는 신학대학이 있으며, 80여명의 학생과 20여명의 사제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본지는 강화군의 불교, 기독교에 이어 천주교 성직자인 서강휘 신부에게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서강휘 신부는 1999년 사제 서품을 받고, 2014년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양명학)으로 학위를 받은 뒤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을 맡고 있다.

 

인천 가톨릭대학교가 진강산 아래 자리잡은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정작 강화군민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강화에 처음 학교를 열었을 때, 초대 총장신부님은 강화에서 환경운동하시는 분들과 연대하여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골프장 반대, 석모도 LNG 화력발전소 반대운동 등 강화 지역사회와 꽤 많이 소통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톨릭대학교는 대학이면서도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입니다. 신부와 신학생들이 방학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곳에 거주하면서 기도하고 공부하는 곳이라 강화군민에게는 조금 낯설게 보일 수 있겠지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비오는 바티칸 광장에서 홀로 기도하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 매우 감동적이었죠. 코로나 19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생태적 관점에서는 환경문제를 지적하기도 하죠. 생산 활동이 멈추자 오염이 줄었다든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코로나19라는 질병 못지않게 격리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격리한다지만 상징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된 하나의 현상, 즉 부정적인 것들은 선을 긋고 구분하는 것의 연장이라고 보거든요.

교황님은 질병도 문제이지만, 질병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배제를 걱정하셨고, 저도 격리가 사회적 차별이나 배타성으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언제나 공동선을 추구하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감싸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요즘 기원전과 기원후를 의미하는 비씨(BC:Before Christ )와 에이디(AD:Anno Domini)비포 코로나’(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에프터 디지즈’(After Disease: 질병 이후)로 바꿔불러야 한다고 하지않습니까? 즉 코로나19가 분기점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현상적으로 보면 교회도 과거의 교회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신자들은 주일미사 빠지는 것이 양심성찰의 큰 주제였는데, 지금은 빠져도 되는 상황이 되고, 많이 이완되었구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긍정적인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신학교내에서만 보면 신학생들이 환절기 때면 감기에 걸리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습니다. 그동안 방역, 위생이 얼마나 불철저했는지의 반증이죠. 또 바깥 출입을 자제하면서 기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동료신부님들도 술자리가 줄고, 외출을 하지않음으로서 대신 건강과 영성을 얻었다라고 해요.

 

이와 같은 변화들이 아마 곳곳에서 있겠죠. 외국여행도 줄어들테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도 좀 더 신중해지겠죠. 이런 행동의 변화들이 우리 사회를 많이 변화시킬텐데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시민의식이라 생각합니다. 저번 촛불혁명때도 그렇고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서도 우리 스스로 새롭게 자각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진적인 국민 의식, 국가체제와 제도 등을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변할 지는 모르지만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올해는 한국전쟁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교회에서는 평화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평화를 만들려고 전쟁을 한다지만 저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모든 전쟁의 배후에는 누군가의 욕심이 자리잡고 있고, 이 욕심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 것을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 자기 계산에 의해 전쟁이라는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고 바라봅니다.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남을 해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낮은 자부터 상위의 계급까지 평등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등이란 같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소외되지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회가 그리 되기를 바라는 것이 교회의 희망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평화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몫입니다.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강대국의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지속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북한이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지 않았습니까?

여러 가지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과 남한에 보내는 메시지, 또는 우리 사회의 과격한 극우집단이 탈북자들과 연합하여 남북합의사항을 지키지 못하게 한 일도 빌미를 주었습니다. 속상한 일입니다.

그래도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한 9.19 군사합의는 지켜져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군사합의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군축까지 염두에 두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지켜진다면 한반도의 긴장이 상당히 완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남과 북 민족의 힘만으로 문제를 풀어가기에는 역부족이고, 국제정세를 살펴야 한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굉장히 암울했습니다. 진상규명도 제대로 안되고,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계획하고 예측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는 아니지만 하느님의 뜻은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진 염원과 희망,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탈출할 때의 염원이 하느님에 투사되고 실현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남북 문제나 코로나는 하나의 기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신앙은 결국 희망이거든요. 근거없는 망상이 아니라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일궈낼 수 있는 것에 대한 희망. 앞으로 그럴 거라고 믿는 것이죠.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살다보면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앞에서 골머리를 싸매는데, 생각하지못한 의외의 변수들이 생겨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일들을 직접 겪었지 않습니까?

 

그러고보면 평화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초대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분명히 우리 사회가 민족의 평화로 초대될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의 평화를 일구어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강화는 한국 양명학의 본산이라 신부님께서 양명학을 택하신 것이 더욱 특별하게 여겨집니다.

2003년에 성균관대에 편입하여 동양철학을 2년간 공부하고 북경으로 유학을 갔어요. 동양철학하면 중국철학, 인도철학, 일본이나 한국 철학도 있고, 유불도가 있는데, 생각해보니 그리스도교와 가장 유사하면서도 다른 것이 유학이었습니다.

유학에는 절대 초월자에 대한 신앙이 없으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리스도교와 가장 가깝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구체적인 실천의 강조, 절대 진리에 대한 순명 등이 그것이구요.

그래서 유학을 택했고 조선 말엽 이후 교조적으로 변한 주자학보다는 양명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왕양명이 살았던 명대는 유가 내부의 논쟁이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때로는 불교용어를 사용하여 논쟁을 펼치기도 하는 등, 유학의 발전사를 보면 유불도가 조화롭게 회통할 수 있는 꼭지점에 양명학이 있었습니다.

 

양명학의 사유체계는 현상학, 실존주의와 같은 서양의 사유체계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고, 현대 한국사회의 사상과도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양지를 갖고 있어 똑같이 고귀한 존재라는 것, 사민평등을 말하는 등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데도 적합한 사상입니다.

이곳 강화는 하곡 정제두 선생이 조선 양명학을 꽃피운 곳이고, 성지이다 보니 제가 강화에 머물게 된 것 또한 특별한 인연이 아닐까요. 아마 양명학은 강화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강화군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강화는 수도권에서 가깝고 아름답고 좋은 곳이죠.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양명학의 성지이기도 하고, 또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단군을 모시는 곳입니다. 매우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제가 부제 때 초대총장신부님께서 골프장, 발전소 반대운동 하는 걸 지켜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강화가 계속 이렇게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강화가 개발되어 물질적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을 바라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강화의 정체성이 제대로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강화는 앞으로 많은 기회를 갖게 될 텐데 그런 기회를 잘 살리려면 환경이나 문화재 등이 잘 보전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강화 지역사회의 일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겠죠. 관심갖고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야 지역사회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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