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환의 江華漫筆 12 - 내 나이 칠십에
홍성환의 江華漫筆 12 - 내 나이 칠십에
  • 홍성환
  • 승인 2020.05.0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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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환 선생은 서울 종로학원에서 20여 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고, 씨알 함석헌 선생으로부터 큰 배움을 얻었으며 지금도 씨알재단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에 강화로 이주하여, 2014년에 온라인 카페 강화도이웃사촌을 개설, 초대촌장으로 활동했다 (편집자 주)

 

아직도 철부지 같은데 어느새 칠십이다. 얼마전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는데 오십 좀 되보이는 상대편 운전자가 무슨 할아버지가 운전을 이렇게 과격하게 하세요?’ 그런다.

나만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지 남들은 나를 늙은 할아버지 취급한다. 시골에 살던 어릴적 기억에 육십쯤 된 할아버지를 보면 정말 늙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칠십이 된 나는 내가 늙었다는 생각을 거의 못하고 사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칠십쯤 살았으면 인생에 대해 자신에 대해 알만도 한데 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내가 누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아직도 아는 것이 없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비틀거리고 산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더 한심하고 부끄럽다.

어떤 이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노래하는데 내 인생 창고에는 차마 밝히기도 부끄러운 어리석음이 가득하다. 그저 사람들에게 신세만 지고 더러 상처만 주면서 아무 한 것도 이룬 것 없이 세월만 흘려 보냈다.

 

어떤 이가 나더러 무언가 있는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말을 했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은 맞는 말인데 무슨 존재나 되는 것처럼 자신을 위장하며 살았나 하는 반성이 컸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며 살았다면 나는 정말 잘못 살았다. 남들의 그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눈치채면 벌레라도 본 것처럼 싫어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라니 참 어이가 없다.

 

그래도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위안이 되는 것은 잡놈처럼 살았어도 그 진흙탕 속에서 연꽃처럼 피었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다는 것이다.

스물 세 살에 선생이 되어 학생들이 좋아 신들린 사람처럼 산 것, 기독교에 미쳐 목숨이라도 버릴 듯 헌신한 것(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었으나 다시는 그런 순수한 헌신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행복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진리나 정의를 위해 살려고 불타오르던 청춘,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내세울 것도 없는 억울한 옥살이, 그 이후 십여년의 실직, 마음껏 타락할 수 있었던 학원 강사 시절, 함석헌,류영모의 씨알 모임, 강화 귀촌 후의 심도학사에서의 경전 공부, 접대부로 살려고 한 강화도 이웃사촌의 실험...

 

돌이켜보면 실패도, 타락도 다 내 인생을 풍부하게 해준 것들이라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감사할 뿐이다. 방황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활력소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고 아니 죽을 때까지도 계속 방황할 것이다. 나는 정해진 길로만 가는 것이 지루하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길 위에 서 있는 인간 '호모루덴스'다.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낯선 세계로 떠나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 이것이 철부지 인생의 헛된 꿈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보다 훨신 더 젊은 날에 죽었다. 모차르트 35, 베토벤 57, 두보 57, 이태백 61. 더 살아야할 사람들은 일찍 죽고 나 같이 하잘 것 없는 인간은 살려두어 칠십이나 살게 했으니 남은 인생은 다 덤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무슨 결심을 하는 것을 싫어해 남은 인생도 되는대로 살 것이다. 그냥 하루를 잘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라면 목표다. 아니 잘 살려고도 않고 잘 즐기며 살고 싶다. 무슨 일이든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

 

평생 종교를 공부하고 거기 빠진 인간으로서 늘 마음을 새롭게 하려는 것이 내가 드리는 유일한 기도다.

마음은 결코 늙거나 낡아질 수 없다. 이것이 내가 믿는 영생이다.

마음의 눈을 뜨고 사랑에 민감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이들수록 자연과 어린아이와 여자가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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