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60주년 강화와 대구의 단상
4.19혁명 60주년 강화와 대구의 단상
  • 한상운(강화향토사학자)
  • 승인 2020.04.20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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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향토사학자
강화향토사학자

직물. 섬유업의 산지
강화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소창, 인조. 직물업이 발전하여 전국에 명성을 날리던 고장이다. 50~60년대 초반까지 5일마다 서는 강화 인조장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SK그룹의 모체인 수원의 선경직물이 강화심도직물(경북 선산출신 김재소 사장)에서 허청을 받아갈 정도였다.

종업원들 또한 5.000여명에 달했다. 60년대 초반, 천주교 신부님의 지도로 노조 활동을 시작하여 18세의 어린소녀가 쓴 근로자들의 권익을 주장한 혈서가 로마 교황청에 보고되어 교황님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를 중심으로 섬유업을 발전시킬 때 직물업계의 경험이 풍부한 강화의 근로자들은 대단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자유당 12년과 공화·유신 독재 18, 대구와 강화는 야당도시
자유당 정권 때 서상일, 제헌 이갑성(민족대표 33), 조재천, 신도환 의원과 공화당, 유신독재 때 한병채, 김정두, 신진욱, 조일환, 조규창 의원 등은 대구출신 야당의원이었다.

제헌~4선인 윤재근 의원과 3선의 오홍석 의원은 강화의 야당의원이었다. 강화와 대구는 당시 야당 진보의 명성을 날리던 지역이다.

 

4.19 민중혁명의 도화선 대구의 2.8운동, 강화에서도 1,000여명 데모
60년 전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28, 자유당 타도의 횃불을 치켜들어 전국에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고 3.15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되어 급기야 4.19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당시 강화에서도 강화고등학교 6학급, 강화중학교 12학급, 강화여상과 여중 9학급 1,000여명의 학생들이 강화 읍내를 돌며, 3.15부정선거와 부패 공직자의 타도를 외쳤다.

 

군사정권 이후 강화는 보수의 아성인 경상북도 강화군으로 회자
강화는 수도권의 55개 기초단체 중 유일하게 보수 정객들이 13대 국회부터 21대까지 936년을 연속 독차지하고 있다. 군수도 3대부터 7대까지 520년을 보수가 독차지하여 강화군을 경상북도 강화군이라는 우스갯소리 까지 회자되고 있다.

수도권에서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 오던 강화 사람들은 지난 지자제 선거 이후 강화쪼다들이라는 비아냥거림의 놀림을 당해 창피했다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부산 다음 제 2대 거대 도시 대구, 진보의 도시 인천에 밀려 전국 3위로 전락
대구와 강화는 진보진영의 정객들이 득세할 때는 인구와 경제력이 튼튼했다. 대구는 부산 다음으로 전국 2위의 도시였고, 강화는 5.16후에 단행한 화폐개혁 때 현찰이 전국에서 2번째로 많이 나온 지역으로 잘사는 고장이었다.

하지만, 보수정객들이 지역을 장악한 후부터 두 지역은 인구와 경제력이 서서히 쇠퇴해 가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특히 강화군이 배출한 시의원. 군수. 국회의원이 인천광역시에서 외톨이 보수의 씨받이가 될지, 진보들에 왕따가 될지 심히 걱정과 기대가 교차된다.

<외부 기고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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