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공 손돌의 한숨?
뱃사공 손돌의 한숨?
  • 손무일(불은면, 24세 대학생)
  • 승인 2020.04.02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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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광성보를 찾았다. 발 닿는 곳이 바로 역사유적인 강화도! 신미양요의 격전지 손돌목돈대를 바라보는 감회 또한 예사롭지 않다

김포와 강화를 가르는 물길, 염하를 바라볼 수 있는 용두돈대 입구의 안내문을 읽었다. 뱃사공 손돌에 관한 것이었다.

손돌목 - 손돌의 한숨, 손돌의 추위

강화도는 한강 입구에 있는 섬이다. 그러나 여느 섬과는 달리 육지와의 사이를 흐르는 물길(염하)이 빠르고, 또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해서 여간 숙련되지 않은 뱃사공은 이 물길을 함부로 건너지 못한다.

[   ] 후금(뒷날의 청)이 쳐들어왔다. 임금이 서둘러 강화도 피난길에 나섰을 때 손돌이 길안내를 맡았다. 그러나 강화도로 가는 뱃길은 험했다. 급한 물살과 그에 따라 뒤집힐 것 같은 배는 임금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손돌은 태연하게 노를 저어 점점 더 험한 물살의 가운데로 배를 몰아갔다.

임금은 속으로 이 뱃사공이 나를 죽이기 위해 배를 이곳으로 모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돌을 죽이라 명령했다. 손돌은 죽기 전에 말했다. “제가 띄우는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배를 몰고 가십시오. 그러면 안전하게 강화도에 도착할 것입니다.”

손돌은 죽었고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을 따라 가던 배는 강화도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임금이 강화도에 발을 내딛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물길은 더욱 험해졌다. 임금이 천천히 말했다.

으음, 내가 손돌을 의심하였구나. 나의 잘못이다. 여봐라, 손돌의 시신을 후하게 장사를 지내도록 하라.”

지금 강화도의 광성보에서 마주 보이는 김포의 덕포진(대곶면 신안리)에 손돌의 무덤이 있다. 사람들은 이 물길을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손돌이 죽은 음력 1020일에는 큰 바람이 분다고 한다. 이를 손돌의 한숨, 손돌 바람, 손돌 추위라 한다.

인천광역시

용두돈대 앞 안내판 일부 – 다섯 째 줄 앞부분이 가려져 있다.

강화도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 서울 모 대학 사학과에 재학 중인 친구가 안내문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 마디 한다.

“[  ] 후금(뒷날의 청)이 쳐들어왔다.는 부분이 이상하다. 후금이 언제, 즉 우리나라 어느 임금 때인지가 나와 있지 않는데..."

이런 저런 추측을 하던 우리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처음 안내판을 세울 때는 [   ]에 몇 글자가 쓰여 있던 것을 나중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곳을 덮어버린 것이라고. 오른쪽 영어 안내판 그 부분에도 일부분 덮여져 있다. 그럼, 그 글자는 무엇이고, 왜 덮어버렸을까,

며칠 후 사학 전공 친구로부터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약간 들뜬 목소리였다. 안내문 마지막 글 인천광역시에서 해답을 찾은 것이다.

, 인터넷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인천소개 인천역사 인천의 설화 (8) ‘손돌의 추위에 답이 있었다. ‘손돌의 추위원고를 바탕으로 안내문을 만든 것이었다.

원고에는, 안내판의 [   ], 즉 빠진 부분은 인조 5(1627)‘이라 적혀있다. 이를 넣어 문장을 만들어보면 인조 5(1627)  후금(뒷날의 청)이라는 나라가 이 땅을 침략해왔다.'‘가된다.

우리는 다시 모여 이 부분을 정리해 보았다. 처음 인천시청의 원고를 바탕으로 안내판이 만들어진 후에 이를 본 관광객들이  항의(?) 해온다. 조선 인조가 아니고 고려 고종이 아니냐고... 김포문화원에서는 고려 고종이라고 하는데..., 전화 횟수가 늘어나자 담당 공무원은 귀찮아서(?) 아예 그 부분을 덮어 버렸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었다. 인천시청 홈페이지의 자료 즉 원문, 아랫부분에 더 중요한 글들이 이어져 있다. 노산 이은상의 손돌 사공에 관한 시 한편이 있고, 그 뒤로 () 형태로

손돌 사공을 죽인 임금을 강도(江都)의 민담과 전설에서는 조선의 인조임금으로, 김포군지에서는 고려 고종으로, 그리고 여지도서에서는 고려 공민왕으로 말하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문제의 왕으로 고려의 고종과 공민왕, 조선 인조 등 세 임금을 소개하고 있다.

, 이 문장을 뺐을까? 사람 얼굴을 그리고 나서 눈 하나를 뺀 셈이다.

우리는 다시 모여 김포의 손돌 묘를 찾았다.

김포 덕포진에 있는 뱃사공 손돌의 묘 – 앞면의 舟師 孫乭公之墓, 뒷면에는 ~ 고려조 23대왕 고종(高宗)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염하 넘어 강화도가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곳이다. 주위의 안내문 등에 의하면 염하는 물길이 사나워 조선 태조와 태종 때 조운선 등 백 여척이 침몰한 기록이 있다.

원래 이곳에 사당도 있었고 제사도 지내왔으나 일제시대 때 일제의 강압적인 통제로 제사를 지내지 못하다 해방 후 1970년대에 와서야 제사가 다시 봉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1989년부터 김포문화원에서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20일에 진혼제를 지내오고 있다고 한다.

작년(2019)에도 김포시 주최, 김포문화원 주관으로 진행된 제786주기 손돌공 진혼제가 봉행되었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손돌의 죽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가 전설이든 사실이든. 그리고 강화도 손돌목 돈대 안내문 빈칸은 언제, 어떻게 제 모습을 찾을까도.

손돌 묘에서 바라본 강화도 용두돈대와 사나운 염하 물길 – 조선 태조 · 태종 대에 배 백 여척이 사나운 물길 때문에 이곳에서 침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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