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환의 江華漫筆 8 - 만족하며 살기
홍성환의 江華漫筆 8 - 만족하며 살기
  • 인터넷 강화뉴스
  • 승인 2020.01.14 18:3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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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을 모르는 것 보다 더 큰 재앙은 없고

 얻으려는 육심 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노자 도덕경 46)

 

  만족이 불만보다 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만족할 이유가 수도 없이 많은 이가 스스로 불만과 불행에 빠져 살기도 하고 거꾸로 비참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으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이들이 있다. 특별한 도사가 아니면 언제 어떤 경우라도 만족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불만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현실순응적인 사람에게는 발전도 없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이듯 불만은 노력과 발전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러나 욕망이 과해 그것을 추구하려고 자신의 심신을 지나치게 피곤하게 하고 남들 마저 피곤하게 한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현대인들은 예전에 비해 월등한 물질적 풍요 속에 살면서도 욕망 과잉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행복이 욕망의 성취에 비례한다면 욕망이 큰 사람은 웬만한 성취로는 행복할 수 없다. 게다가 남들과 비교하기을 좋아하는 이들은 자기보다 잘나가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 행복하기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은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욕망을 내려 놓거나 적게 가지라고 말한다. 욕망이 적거나 아에 없으면 불만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욕망을 내려 놓는다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나이들어 보니 내가 젊을 때 바라던 것들이 마치 어릴 때 좋아하던 장난감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나에게 어린이 장난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젊어서 그렇게 원하던 것들,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무슨 값비싼 물건을 사는 것 같은 일들이 지금은 다 시시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누가 나에게 별장이나 큰 건물이나 회사를 거져 준다고 해도 나는 사양할 것이다. 그런 골칫덩어리를 가지고 여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 당신이 받은 복을 세어보십시오라는 찬송가가 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축복 아닌 것이 없다. 일상의 영성에서 내가 줄곧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잠자고 깨는 것, 먹고 마시는 것, 숨 쉬고 걷는 것, 무엇 보다 사랑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거져 주어져 있는 엄청난 축복이다. 다른 아무 축복이 없다 해도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이런 가난의 영성을 터득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그런 사람은 죽을 때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수고가 다 끝나고 드디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낙천적이기 때문에 무슨 수행을 하지 않고도 만족을 잘한다. 이런 성품을 타고난 것에 대해 나는 특별히 감사한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살아 아무 성취를 한 것이 없어 부끄럽기도 하고 아무거나 좋다고 하면서 자기가 없는 것처럼 해해거리며 살아 실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하느님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줄테니 소원을 말해보라 해도 나는 특별히 바랄 것이 없다. 가끔 어리석은 짓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해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싶기도 하지만 사람이 본래 그렇고 죄를 짓고 용서를 빌고 사는 것도 도덕적으로 단조롭게 사는 것 보다 풍요로운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기도조차 하지 않는다.

 

   장자에는 절름발이, 앉은뱅이, 곱추, 언청이등 불구자들이 자주 도사로 등장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쉽게 도를 터득하고 행복하게 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아무도 베어가려고 하지 않아 천년을 살아 온갖 새들의 거처가 되었다는 고목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장자는 길고 짧은 것의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크게 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가르친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의 기준도 다 상대적인 것이며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한다.

 

   인생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은 바울은 내가 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부유에 처할 줄도 알고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위에서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보통사람인 나 같은 사람은 감히 그런 고백을 하지 못한다. 감기만 걸려도 쩔쩔매고 돈이 다 떨어지면 불안해 하는 자신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짓는다. 도사는 무슨 개뿔.

 

   그래도 나는 나이들면서 점점 미소가 늘어나는 자신을 보며 흐뭇해 한다. 이런 얘기하면 재수 없겠지만 실제로 나는 남 보다 너무 큰 축복을 받았다. 다리가 아파 오래 걷지 못하는 것도 빨빨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먼지만 일으키는 것을 방지해주니 축복이라면 큰 축복이다. 돈도 많지 않아 타락하고 싶어도 타락하기조차 어려우니 그것도 큰 축복이다.

 

   만족할 줄 알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내가 늘 말하듯 아름다움은 우리 눈에 있고 행복은 우리 마음에 있다. 원효 대사는 중국으로 유학을 가는 길에 목이 말라 밤중에 물을 마셨는데 깨어보니 그것이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목이 마르면 해골에 담긴 물도 꿀맛이다.

 

   나는 물론 이와 같은 극단적인 유심론자는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마음 하나만으로는 되지 않고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충족되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극단적인 환경에 내몰려서는 안된다. 생존권은 나라와 사회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극단적인 빈부격차도 해소되는 것이 마땅하다. 국가와 정치의 존재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내려놓을 것도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욕망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지나친 말이다. 욕망을 줄이거나 내려놓으라는 말은 이미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려는 이들에게 하는 책망이다. 적당히 가지고 있는 보통사람들은 욕망을 내려놓기 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던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은혜가 족하다고 했다. 어디 하나 아프지 않거나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부족하지만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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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경 2020-01-16 11:48:00
좋은말씀 소개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강화뉴스 항상 건승하세요

장노숙 2020-01-16 11:46:2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강화뉴스 항상 건승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