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환의 江華漫筆 7 - 온 우주의 생명이 깃든 씨알을 생각하며
홍성환의 江華漫筆 7 - 온 우주의 생명이 깃든 씨알을 생각하며
  • 인터넷 강화뉴스
  • 승인 2019.11.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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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한울을 모신 존재로 한울과 한 마음이 되어 살아야 하는 신령한 존재인데 이 한울의 마음을 저버리고 각자 자기 욕심을 따라 자기만 위해 살려고 함으로써(各者爲心) 생명의 원기를 잃어 마음과 몸이 병들어 자기 생명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천지만물에 해를 끼치는 악질에 걸린 괴물이 되었다. 이러한 악질에서 치유를 받으려면 자기 속에 본래 깃들어 있는 한울의 마음, 천지의 지극한 기운과 하나로 통하고 천지만물을 꿰뚫어 우주로 뻗치는 일통(一通)의 한 마음, 한 기운의 대생명을 자각하고 우주만물에 가득차고 내 안에도 충만한 元氣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을 守心正氣라 한다.

 

사람만 한울님을 모신 존재가 아니라 우주만물이 다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사람 하나 새 한 마리 나무 한그루를 한울님 대하듯 공경하는 것이 한울님을 섬기는 길이다. 대지는 어머니며 대지가 내는 곡식은 어머니의 젖이다. 그러므로 곡식 한 알을 아는 것이 천지의 도를 아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대지를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해월 선사는 어린아이가 나막신을 신고 뛰어가는 소리를 듣고 대지의 아픔을 느꼈다. 만물일체를 주장한 왕양명 선생은 심지어 깨진 기와조각을 보고도 가슴 아파했다. 이렇게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면 어찌 자기와 이웃의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자연 생명의 아픔을 보고도 고통을 느낄 줄 알면 어찌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해칠 수 있으며 사람 생명이 겪는 고통을 보고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맹자는 측은지심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했다.

 

현대인의 병은 물질에 대한 이기적 집착으로 인해 생명의 신성성을 상실하고 이웃과 자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데서 온다. 우리 민족의 종교인 동학의 심오한 생명사상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개인적 사회적 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치유의 길을 발견한다.

 

근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류영모, 함석헌 선생은 씨알사상을 창시했다. 씨알이라는 말은 류영모 선생이 <대학(大學)>에 나오는 親民이라는 말을 씨알 어뵘(민중인 씨알들을 어버이 모시듯 함)으로 번역한 것을 함석헌 선생이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내면서 사용하고 거기에 사상을 부여하면서 나온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민은 영원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생명의 알맹이, 씨알이라는 것이다.

 

류영모는 씨알이 씨알답게 풍성한 생명을 누리려면 몸이 건강하고(몸성히), 마음이 편하고(맘 놓여), 얼이 밝아야(뜻 태워) 한다고 했다. 그러자면 욕망을 추구하는 몸나를 이겨 얼나(영적인 나)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마음은 우주의 중심이며, 욕망으로 부푼 나를 내가 없는 듯 한 점으로 줄여야 예수, 부처, 공자님이 도달한 얼나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다.

 

함석헌은 씨알()이 역사의 주체라며 사람이 사랍답게 살지 못하도록 차별하고 착취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저항하고 변혁하려고 했다. 생명은 누구나 차별없이 생명을 누리도록 태어난 하느님의 평등한 자녀이다. 예수님도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했다. 함석헌은 땀 흘려 일하는 농부를 보고 거룩한 하느님이 지상에 내려와 흙을 밟고 서있는 모습이라 했다.

 

씨알이란 말은 생명에 대한 아름다운 우리말 상징이다. 씨알은 작지만 그 속에 온 우주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 씨알 하나가 우주이며 그 속에 온 생명이 들어 있다. 자신과 남의 생명, 그리고 자연 생명을 이렇게 존귀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이 사람다움의 근본이다. 씨알은 땅 속에 묻혀야 싹이 난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려면 자기를 죽이고 땅 속에 묻혀야 한다. 자기를 앞세우고 자기만 위하려는 사람은 자기도 망치고 남도 망친다.

씨알은 자기를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해 그런 것이다. 생명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성숙할수록 누군가에게 기쁨과 사랑을 준다는 것이다.

씨알은 홀로 살지 않고 더불어 산다.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많은 생명들과 더불어 사는지를 보면 그저 감탄할 뿐이다. 자연은 저절로 그러한데 오직 인간만이 이기적이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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