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의 생태칼럼 ① 면역력 있는 돼지 찾아내려면
박병상의 생태칼럼 ① 면역력 있는 돼지 찾아내려면
  • 인터넷 강화뉴스
  • 승인 2019.10.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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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환경운동과 연구작업을 병행해온 생물학자 박병상 박사는 스스로를 생태근본주의자로 자처한다. 인하대, 성공회대, 가톨릭대 등에서 ‘환경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강의했고, 현재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시민운동, 강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환경, 생태문제의 해결을 위한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동물인문학》 《탐욕의 울타리》 《파우스트의 선택》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우리 동물 이야기》 《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 《녹색의 상상력》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등을 썼고, 다수의 공동 저서가 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brilsymbio, 이메일 brilsymbio@hanmail.net.
본지는 박병상 박사의 환경생태칼럼을 협약사인 인천IN과 공동으로 게재한다.

 

 

모처럼 제주도에 가면 저녁 자리가 민망해진다. 육식을 피하려는데 명품 돼지고기를 내놓는 호의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한 곡물로 키운 가축의 살코기를 외면하려 노력하지만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자리에 앉지만 눈치 살피며 고기를 피한다. 간혹 잘 익은 고기를 친절하게 담아주는 이가 있다. 그럴 때 겨우 맛보는 제주도 특산 돼지고기는 육지와 다른가? 잘 모른다, 하지만 다르다고 제주도 사람들은 동의한다. 품종이 다르니 맛에 차이가 있다는 거다.

육지에서 압도적으로 사육하는 허연 돼지는 지역과 관계없이 품종이 한결같다. 경제성이 높기 때문일 텐데, 그건 우리뿐 아니라 세계가 공통이다. 품종만 같은 게 아니다. 사료와 사육조건이 비슷하니 맛도 거의 같다. 가격이 올라 수입하는 유럽산 삼겹살이 우리나라 삼겹살과 맛이 다르다고 말하는 미식가는 드물다. 그러니 돼지에 치명적인 질병의 목록도 세계가 공통이다. 경제성을 위해 최대로 밀집시키는 공장식 사육환경도 같으니 이웃 국가에서 질병이 돌면 바싹 긴장해야 한다.

구제역이 돌면 확산을 막으려 당국은 반경 300미터에서 500미터 이내의 돼지를 살처분한다. 확산 속도가 빠르면 반경을 늘려 죽는 돼지의 수가 크게 늘어나는데, 그건 발굽이 있는 소와 양의 사정도 비슷하다. 구제역이 창궐해도 살처분을 미적거리거나 회피한다면? 피해 반경 이내의 돼지와 소는 결국 모두 감염돼 죽고 마는 걸까? 그 방면에 아는 바 없지만 수의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죽는 가축도 있지만 시름시름 앓다 회복하거나 잠시 증세를 보이다 이내 낫는 개체도 많다고 한다. 어쩌면 대부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감염으로 죽지 않는 개체가 많아도 반드시 살처분하는 이유는 확산 방지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감염된 축사의 가축, 피해반경 이내에서 사육한 가축은 어떤 도축업자도 받으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제역에 감염되었던 가축의 살코기라고 해도 먹는 이의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축산업자는 좋던 싫던 살처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개별 식당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구입해 식구나 이웃, 동료가 나누어 먹는 시절이 아니지 않는가. 같은 크기의 가축을 한꺼번에 도축해 포장한 뒤 대형 식품매장에 넘기는 요즘, 공장식 축산업자는 질병에 예민하게 대응해야 손해를 피할 뿐, 대안이 없다.

 

4만에 가까운 강화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게 만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치사율이 100%라고 한다. 먼저 감염된 중국은 근 1억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고 언론이 보도하는 가운데, 북한 평안북도의 돼지는 전멸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멸이라. 살처분이 늦어 모두 감염돼 죽었다는 걸까? 분명치 않은데, 방역이 철저한 우리는 피해지역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다만 강화를 비롯해 피해반경 이내에 포함돼 사육하던 돼지들은 죽을 수밖에 없고 사육업자는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행일까? 감염과 관계없이 죽어야 하는 돼지는 얼마나 억울할까?

 

양돈농가 살처분 모습
양돈농가 살처분 모습

 

영국 에든버러에 구제역이 돌았을 때 복제 양 돌리도 피해반경이 가까워지면서 살처분될 위기에 있었다. 살처분 광풍이 지나간 뒤, 그 지역에서 살아 있는 어린 양이 발견돼 과학자들이 환호한 적 있었다. 구제역을 이길 품종을 개발할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라는데, 이후 연구의 성공 여부는 알지 못한다. 연구 성패를 떠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실제로 감염된 돼지를 모두 죽일까? 일부라도 살아남은 개체가 여태 모든 국가에 없었을까? 모두 살처분하지 않았다면 찾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혹 평안북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내성 돼지가 발견되는 거 아닐까? 희망의 열쇠가 될 수 있는데.

바나나는 세계가 한 그루를 재배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유전적 다양성이 없는 품종이다. 창궐하는 질병에 매우 치명적이므로 자칫 멸종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해왔다. 곰팡이가 돌면 피해반경 이내의 바나나 밭을 모조리 불태우지만 바나나 씨앗은 극도로 안전하게 관리한다. 바나나 껍질 속에 유리파편처럼 박힌 씨앗은 따로 모아서 새로운 품종을 찾는데 이용한다고 한다. 1960년대 그로미셀 품종을 이은 캐번디시 품종을 그렇게 찾았고, 다시 새 품종을 찾으려 바나나 재배업자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더 퍼지기 전에 누구라도 이겨낼 품종을 찾아야 하지 않나?

육지와 연결된 다리 두 곳을 잘 차단하면 전파를 최선으로 억제할 수 있는 강화에서 모든 돼지의 살처분은 아쉽기 그지없다. 가축 감염 전문가는 공기로 전파되는 구제역과 달리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철저한 방역으로 전파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강화는 완전 살처분 대상지에서 제외해야 옳지 않았을까? 이미 살처분이 결정된 마당이므로 무척 아쉽다. 죽어가는 돼지에게 아쉽다는 표현은 온당치 않은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이기는 개체를 찾는 기회를 우리는 놓쳤다. 충분한 보상으로 사육하는 축산업자의 양해를 구해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치사율 100% 감염병? 그런 질병이 가당할까? 숙주를 100% 죽이는 바이러스라면 머지않아 숙주와 더불어 사라진다. 그런 질병은 생태계에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전 세계의 사육장에서 돼지가 같은 질병으로 모두 죽었다면 우리는 사육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장식 돼지 축산의 참혹한 현실을 보라. 위생적일 뿐 아니라 동물복지에 맞게 바꾼다면 그런 치사율은 있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배설물과 사료가 뒤엉켜 썩으며 악취가 진동하는 축사에 꾸역꾸역 밀어넣고 사육하는 관행을 고집하는 한 돼지 뿐 아니라 소와 닭도 살처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사람은 아니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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