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환의 江華漫筆4 - 남에게 해끼치지 않고 자기 한몸 건사하며 살기 쉽지 않다.
홍성환의 江華漫筆4 - 남에게 해끼치지 않고 자기 한몸 건사하며 살기 쉽지 않다.
  • 인터넷 강화뉴스
  • 승인 2019.08.2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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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 - 양주의 사상을 떠올리며 드는 단상

 

 

 

 

장자나 열자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중국인들의 해학이나 과장된 뻥이 느껴져 읽으면서 연신 미소를 짓게 한다. 특히 터럭 하나를 뽑아 온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하더러도 하지 않겠다고 한 양주의 말은 자기의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예와 도덕을 강조하며 아무 즐거움도 없이 엄격하고 금욕적으로 산 유교 신봉자들이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묵자의 후예들을 여지없이 조소한다. 자기 몸 하나 잘 보존하고 즐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는데 그들은 남을 위해 산다며 위선과 허위에 사로잡혀 인생의 참맛을 모르고 사는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백년도 못사는 인생, 의식없는 어린 시절과 늙어서 병든 노년을 빼면 얼마 남지도 않는데 그나마 거의 반은 잠으로 보내고 남은 시간도 힘든 노동이나 근심 걱정으로 보내는 것이 인생의 실상이라면 사람은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의니 도덕이니 명예니 하는 자기를 얽메는 것들에 속박당해 살지 말고 남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자기를 위해 욕망과 감정이 원하는 대로 자기 뜻대로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 양주의 결론이다.

그는 아주 노골적으로 말한다. ‘좋은 집과 아름다운 옷과 맛있는 음식과 예쁜 여자가 있는데 어찌하여 다른 것을 추구하는가? 그것은 만족을 모르는 것이며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자연변화의 원리인 음양을 좀먹는 벌레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소위 배웠다는 자들이 명분과 도덕을 선점해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를 강조하며 명예도 차지하고 권력도 차지하고 심지어 부까지 누리며 그들을 먹고 살게하는 노동자 농민등 평민들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무지한 자들로 여겨 자기들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하인이나 노예처럼 취급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그들이 업신 여기는 평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성자들이 아닐까?. 온천하를 구하는 일에도 자기 터럭하나 뽑으려 하지 않는 이가 어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위해 자기 몸을 손상시키려 하겠는가? 자기 몸 하나 잘 보존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면 천하는 저절로 잘 굴러 갈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 몸도 자기 것이 아닌데 하물며 자기가 가진 물건들이 어찌 자기 것이겠는가? 우리 인생도 세상 것들도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 죽음마져도 자연의 순리인 것이다. 죽으면 다 끝인데 왜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가?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즐기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양주의 극단적인 爲己주의는 소위 점잖은 이들이 드러내 놓고 주장하기에는 민망스럽지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이는 드물 것이다.

나는 젊어서는 기독교에 심취해 나라나 이웃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고 싶었고 소위 자기 행복이나 챙기는 자들을 경멸했다. 그러나 산날 보다 살날이 훨씬 적은 노년이 되니 모든 다른 관심을 다 끊고 즐기며 살자는 양주처럼 뻔뻔할 수는 없으나(사실 속으로는 그러고 싶다) 무엇이든 억지로 하지 말고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살라는 노자의 말이 좋다. 소나기도 하루 종일 내릴 수는 없고 발뒤꿈치를 들고는 오래 달릴 수 없다며 무슨 일이든 억지로 인위적으로 하지 말고 자연에 따라 본성에 따라 살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어느듯 내 몸에 베었다.

억지로 하는 일이 없지만 하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 이것이 바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하늘에 떠서 만물을 살리는 태양이 하는 일이고 숲속의 나무 한그루가 하고 있는 일이다. 숲속을 어슬렁거리기를 천국 유람온듯 좋아하는 나는 말없이 새들의 놀이터가 되어주고 햇살에 반짝이며 바람에 춤을 추는 나무들의 환희를 보며 인생의 교훈을 배운다. 노자, 장자, 열자는 다 그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평민도사들이었다. 땀 흘려 일하는 농부 보다 하늘에 더 까까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살아보니 남에게 작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해를 끼치지 않고 살기가 그렇게 어렵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한몸 잘 건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런 소박하게 사는 착한 사람 하나 만나면 눈물날 정도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의 실상은 어떠한가? 언젠가 아니 곧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있고 자신과 남을 한없이 괴롭히며 욕망의 열차를 타고 죽음으로 달려가는 이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멈추셔요. 거기서 내려오셔요. 생명의 환희가 넘치는 자연의 숲으로 오셔요. 그리고 새들처럼 노래하고 꽃처럼 웃으며 함께 춤을 춥시다. 당신이 원하는 것들이 지금 없다해도 당신의 인생은 즐기기에 충분히 넉넉하답니다. 하늘이 생명을 주셨는데 어찌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노자의 말대로 만족을 모르는 것처럼 큰 재앙은 없습니다’.

 

(편집자 )

양주(楊朱)는 중국 전국 시대 초기의 사상가로 개인주의 사상인 위아설(자애설)을 주장한 이다. 양주(楊朱)는 하나의 생명이야말로 가장 귀중하다고 생각하는데, 생명의 주체는 '()'. ''를 소중하게 하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양주의 위아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이기도 하였으므로 묵자가 말하는 '겸애'의 생각과 상이해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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