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불굴의 독립혁명가(죽산 조봉암)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불굴의 독립혁명가(죽산 조봉암)
  • 김세라 기자
  • 승인 2019.07.24 18: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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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거 60주년을 맞은 죽산 조봉암 선생의 유가족 인터뷰

20111. 대한민국 대법원은 죽산 조봉암 선생의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등의 혐의에 관하여 무죄를 선고합니다. 조봉암 선생의 사형선고는 이승만 독재정권의 정치탄압이자 사법살인이었다는 것이 52년 만에 밝혀졌지만, 아직까지 조봉암 선생에 대한 완전한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념의 경계를 넘어 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조봉암 선생의 서거 60주년입니다. 조봉암 선생의 사형집행이 이뤄졌던 731일을 앞두고 장녀 조호정 여사의 손녀사위인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유수현 이사를 강화뉴스가 만났습니다.

(사)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유수현 이사
(사)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유수현 이사

강화뉴스(이하 강화) 죽산 조봉암 선생을 잘 모르는 요즘 사람들을 위해 조봉암 선생에 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유수현 이사(이하 유이사) 불굴의 독립혁명가이자 해방이후 대한민국 국회의원, 초대 농림부장관을 역임한 조봉암 선생은 1899년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가진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11년 강화초등학교 졸업 후 농업보습학교를 진학하지만 극심한 가난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강화군청 사환으로 복무하게 되지요. 조봉암 선생은 강화읍교회(현 강화중앙교회) 청년단의 중심이 되어 1919318일 강화만세시위에 참가하는데요, 강화읍교회 청년단 동지들인 구연준, 김한영, 김영희, 주창일, 조구원, 고제몽, 오영섭 등과 3차 만세시위를 준비합니다. '예수교도 8인조'로 불린 이 비밀결사대는 일경에 의해 전원 검거되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조봉암 선생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독립투사의 길을 가게 됩니다.

19217월 일본으로 건너간 조봉암 선생은 엿장수를 하며 세이소쿠 영어 학교와 주오대학을 수학하며 박열, 김약수, 원종린과 아나키스트 모임 흑도회를 조직합니다. 사마노가와댐 공사장에서 일어난 조선인노동자 집단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투 등 활동을 진행하다가 아나키스트의 관념적 유희에 실망을 하여 사회주의 항일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지요.

1922년 소련에서 열린 베르흐네우딘스크 대회에서 한국인 공산주의자 대표로 참석한 조봉암 선생은 12월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 다음 해 폐결핵으로 중퇴하고 비밀리에 귀국합니다.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과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한 조봉암 선생은 이후 상하이 코민테른 간부로서 독립운동에 힘쓰는데요, 수감생활과 석방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게 되지요. 1939년에 가석방되고 보니 가족들은 다 흩어지고, 딸 조호정은 인천의 먼 친척에게 보내져 의탁 중이었답니다. 조봉암 선생이 상해를 근거로 활동 하다 보니 국내에서는 도움을 받을 지인이 많지 않았나 봅니다. 인천에서 정미소 하는 사람들이 조봉암 선생을 도와주었는데요, 이 분들 중에 사회주의계열이 많았나 봐요. 호구지책으로 조합장이 되었는데, 기관장으로서 방위성금을 낸 것이 문제가 되어 독립유공자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봉암 선생이 정말 친일을 했다면 19451월에 불량선인(일제가 자신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인을 이르던 말)으로 지목되어 예비검속이 되었겠습니까. 죽산 연구자라면 누구나 한 목소리로, 조봉암 선생의 친일흔적은 찾을 수 없다고 단언 합니다.

조봉암 선생 장녀 조호정 여사(사진: 죽산조봉암기념사업회 제공)

강화 조봉암 선생의 서훈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유이사 1945815. 헌병대 감방에서 광복을 맞이한 조봉암 선생은 석방 되자마자 건국준비위원회 인천지부를 조직하는데요, 폭력혁명을 제창하는 볼셰비즘에 실망하고 친애하는 박헌영 동무에게란 서신을 띄우게 됩니다. 이 서신은 주한미군 CIC방첩대에 의해 윤색되어 언론에 공개 되었는데, 그 결과 조봉암은 조선공산당과 결별하게 되지요.

조봉암 선생은 극좌와 극우 모두를 배척하고, 최초의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으로 당선됩니다. 1948년 초대 농림부장관에 취임한 조봉암 선생은 농지개혁법을 입안하고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합니다.

농림부 장관시설 죽산(사진: 이원규 교수 제공)
농림부 장관시설 죽산(사진: 이원규 교수 제공)

강화 조봉암 선생은 대지주 계층 중심인 한민당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국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죠.
유이사 해방 직후 대한민국은 빈농의 나라, 지주의 나라였습니다. 식민지 지주제 하에서 소작농은 수확량의 60%를 지주에게 지대로 바쳐야 했어요.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에서 조봉함 선생이 소농위주의 농지개혁을 실시 한 것입니다. 땅이 생긴 자작농들은 신이 나서 일을 했고, 농업생산성의 상승으로 축적된 잉여재산은 자식교육으로 이어졌어요. 그 시대 분들 중에서, 내 자식 학교는 죽산 선생이 보냈다고 말씀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한국전쟁 때 기록을 보면, 한 미군 장교가 엄동설한에 제대로 의복도 갖추지 못한 한국군에게 왜 이렇게 열심히 보초를 서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한국군은 지켜야 할 땅이 있다고 대답을 했답니다. 조봉암 선생의 토지개혁은 대한민국의 유례없는 경제성장의 기원이 되었다는 증거이지요.

강화 이승만 정권은 대한민국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긴 조봉암 선생을 왜 음해했을까요?
유이사 1956, 조봉암 선생은 책임정치 수립, 수탈 없는 경제 실현, 평화통일 성취등을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데요,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2등으로 낙선하게 됩니다.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의 존재가 장기 집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 평화통일론은 북진 통일이라는 국시의 위반이며, 간첩과 접선했다는 조작된 혐의로 체포합니다. 이승만의 측근이었던 장택상과 윤치영의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19592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선고, 730일 재심 청구가 기각 되고, 731일 오전 11, 사형이 집행 됩니다.

강화 조봉암 선생의 일생은 굴곡 깊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유이사 사형 집행 후 동료 분들이 시신을 모시러 갔는데, 빨리 장사를 지내라고 압력을 가했나 봐요. 모시고 온 다음날 망우리 묘지를 갔는데, 자리가 하나 딱 남아 있었대요. 누군가 준비했다가 못쓰게 된 묘지였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그 곳에 안장을 하게 되었죠. 장례식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이승만 정권은 문상객들을 강제 해산을 시켰답니다.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 선생의 처형에 대해 철저하게 언론 통제를 했고, 언론들은 침묵하게 됩니다. 유족들은 묘지 앞에 백비(白碑)를 세웠습니다. 대게 비석에는 살아온 내력이나 공적을 새기기 마련이지만, 분하고 원통하여 할 말을 잃었기 때문에 비문 제작을 거부 한 것입니다.

조봉암 선생 백비
조봉암 선생 백비

강화 조봉암 선생께서 간첩의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후 남아 계신 가족들의 고초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유이사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입니다. 조봉암 선생의 가족 뿐 아니라 간첩 가족으로 낙인 모든 분들은 일상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습니다. 그 신산스런 삶이란 말로 다할 수 없죠. 80년대에 비로소 연좌제는 폐지되지만 그분들의 상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화 조봉암 선생은 대한민국 진보정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인데, 정작 출신지인 강화에서는 제대로 된 기념사업이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네요.
유이사 강화의 큰 인물인 만큼, 지자체와 시민사회에 손을 잡고 움직여 줬으면 하는 것이 유가족의 바람이죠. 이런 훌륭한 분이 아직까지 이념논쟁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슬픈 현실입니다. 다행히 올해는 서거 60주년을 앞두고 인천시에서 도움을 주셔서 다양한 추모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4월에는 조봉암 선생 관련 심포지엄이 개최되었고, 묘역 정비도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올 11월 말이면 조봉암 선생의 어록과 연설문을 정리한 책이 발간되는데요, 1945년 이후 국회연설을 비롯하여 조봉암 선생의 모든 자료가 담길 예정입니다.

강화 마지막으로 강화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이사 돌아오는 731일에는 망우리 묘지에서 60주기 추모제가 진행됩니다. 강화에서 많이 참석하셔서 평등과 평화의 나라를 꿈꿨던 조봉암 선생의 뜻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조봉암 선생 서거60주년 추도식 참가 안내>

* 일시: 2019731() 오전 11
* 장소: 망우리 묘지공원 내 죽산 조봉암 선생 묘역
* 출발장소: 830분 강화읍 수협사거리
* 관련문의: 강화뉴스 032-93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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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2019-08-14 10:09:28
조봉암은 간첩 빨갱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