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길 18코스가 주는 숙제
나들길 18코스가 주는 숙제
  • 인터넷 강화뉴스
  • 승인 2019.04.1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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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섬 주민 권경천
- 강화섬 주민 권경천
- 강화섬 주민 권경천

집 뒤 오솔길을 빠져 나가면 나들길 18코스와 이어진다. 군 유격장도 있지만 그쯤에서 방향을 틀면 저수지가 보이는 논길과 마주한다.

성큼성큼 걷기도 하고, 컹컹 거리는 개를 만나면 안심시키느라 슬슬 걷기도 한다. 저수지를 돌아 나가다 보니 집터를 대규모로 닦는지 포클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무심코 빨리 걷다가 멀리 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인다. 좀 멀어서 유심히 쳐다보았다. 할머니 두 분이 길 가에서 만나 해바라기를 하며 얘기를 하시는 듯하다.

같이 사는 동네 분들인지 집이 답답해서 날이 좋아 나와 계신 것인지 다정하게 보인다. 세상사 쓸쓸하다고 해도 저렇게 가까이 앉아 있는 모습에 모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수로를 지나 길을 건너면 고종사적비로 가는 표지가 서 있다. 이제는 제법 길이 또렷하게 나서 구불구불하지만 찾아 간다. 길옆의 느티나무가 당산나무처럼 우뚝하다. 여기저기 철새들이 논에서 날아올랐다. 흐릿한 하늘이다.

혼자 걷는 호젓함이 그런대로 괜찮다. 길 가다 보면, 자기가 온 곳은 밝히지 않으면서 꼭 어디서 오슈?’하고 묻는다. 정체를 묻는 듯한 궁금증 속에는 불편함이 숨어있음을 느낀다.

우리 것이 아닌데 하는 그런 시선. 철책이 주는 불안감. 그런 것을 뒤로 하고 가면 마주하는 고려고종사적비.

고려고종사적비
고려고종사적비

강화 천도 때 고종은, 최우는 어떤 마음으로 저 승천부를 떠나 이 승천포에 닿아 질퍽거리는 길을 헤치며 왔을까? 남겨 놓은 것, 앞으로 마주할 것, 이런 것들이 착잡하고 매섭게 얽히고 있었을 것이다.

개경을 주장하는 정당성과 개경을 떠나는 당위성 사이에서 뿌리칠 수밖에 없는 것들. 권력을 지키려는 자와 또 다른 권력을 세우려는 자들의 갈등이 배를 타고 온 것이다. 그런 무리 사이에서 백성들은 허덕이며 배를 맞이한 것이리라.

유승단이란 인물이 있었다. 재추회의를 하며 최이 앞에서 한 말이 또렷하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도리에 맞는 일이니, 예로써 섬기고, 믿음으로써 사귄다면 저들인들 또한 무슨 명분으로 우리를 괴롭히겠습니까? 도성과 종묘사직을 내팽개치고 섬에 숨은 채 구차하게 세월을 보내면서, 변방의 백성과 장정들을 적의 손에 죽게 만들고 노약자들을 노예로 잡혀가게 하는 것은 국가를 위한 원대한 계책이 아닙니다.”

유승단의 의견대로였다면, 강화군민들이 힘을 합쳐 세운 고려고종사적비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천도 그 해에 죽었다. 이규보는 그와 동년 과거급제자였다.

천도가 옳은 방향이었는지, 역사적 평가는 시대의 몫이니까, 천도하는 그들이 넘었다는 진고개를 넘어 다니면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강화를 둘러싼 철책을 포함한 휴전선, 그 장벽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물어야 하는 것처럼.

잠정적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긴 하지만 긴장과 경쟁을 최고조로 키워가는 것이기도 하다. 정작 그 속에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항시 불안하다.

외교의 질서가 바뀌고 설득의 지표가 바뀌었다. 예와 믿음이 통하지 않는 실리의 현장에서 우리를 지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가져야할 슬기와 결단이 무엇인지 역시 고민거리다.

갈 때보다 돌아올 때의 길이 더 길어 보이는 이유다. 집으로, 현장으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이다. 강화에서 고성까지 4.27 DMZ 평화손잡기를 하면서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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