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와 일본제국주의와의 만남- 독도문제 앞에 선 강화도와 나가사키 시민의 역할 -
강화도와 일본제국주의와의 만남- 독도문제 앞에 선 강화도와 나가사키 시민의 역할 -
  • 최보길
  • 승인 2012.08.31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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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길의 발로 새긴 강화역사 이야기 ④] 초지진
독도는 왜 한국인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가
 
최근 독도와 관련해서 한일관계가 긴장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의 많은 섬중에서 유독 독도가 한․일관계의 뜨거운 화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영유권과 그로 인한 경제적 가치 등을 내세우며 독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진작 독도가 한국인들에게 그토록 강렬한 감정을 자극하는데에는 독도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상징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독도관련 특별 담화의 내용을 빌리자면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우리 땅입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된 역사의 땅입니다.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편입하고 점령했던 땅입니다. <중략>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점령상태를 계속하면서 국권을 박탈하고 식민지 지배권을 확보하였습니다.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학살, 40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투옥, 강제징용, 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그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유독 독도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역사성’과 연관되어 특별해해진다.
 
[초지진] 일본제국주의와 강화도의 첫 만남. 운요호 사건!
 
독도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영토침탈의 첫 출발지이다. 그렇다면 영토침탈 이전에 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와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강화도의 초지진에서 있었던 운요호 사건이다. 
 
한반도와 일본의 전통적인 교류의 통로는 대마도와 부산(동래)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개항은 강화도 연무당에서 체결된 강화도 조약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원인은 초지진에서 있었던 운요호 사건과 관련이 깊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가까운 부산 등의 영남지방이 아닌 서해 중부에 있는 강화도에서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 왜일까? 그것은 삼남지방에서 걷은 세금(곡식)을 이용하여 한양으로 옮기는 수로교통의 중요한 길목에 강화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어난 전투는 그 규모에 관계없이 한양에서 느끼는 위기감이 컸다. 영해를 침범한 ‘외세’라는 것에 대한 위기감과 함께 조선왕실에 필요한 세곡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함께 작용했다. 우리 역사에서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외세와의 전쟁이 강화도 동쪽을 흐르는 '염하‘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곡을 실은 배들의 풍요로움이 강화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 되었지만 이로인해 ’처절한 전쟁터‘에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강화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마음 아픈 역사라 할 수 있겠다.
 
일본에서는 ‘운요호 사건’이 ‘강화도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우익 역사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양국 역사교과서의 운요호사건에 대한 서술상의 차이는 ‘우발성’과 ‘계획성’에 있다. 일본은 운요호의 강화도 접근이 우발적인 사고로 보고 조선 수비군의 공격에 대한 자위적 성격이 강하다고 서술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역사교과서에는 운요호의 ‘계획적’인 강화도 접근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 ‘계획성’의 근거로 운요호에는 항해관련 행정을 맡고 있는 전문적인 경리장교가 배치되어 있었고, 일본 외교문서에 운요호의 조선에 대한 대응책이 수록되어있다는 점, 더 나아가 외국의 영해를 사전 통보없이 침범하고 영해안에서 함포사격등의 교전을 감행하였다는 부분에서도 우호 선린의 관계를 위한 것 보다는 계획적인 침략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발성’과 ‘계획성’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운요호 사건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나라의 역사교과서에 버젓이 서술된 ‘계획성’과 ‘우발성’의 차이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 사실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Remember Nagasaki! Remember Ganghwa!"
 
강화도 초지진에 나타난 운요호는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의 첨병이었다. 그런 운요호가 나가사키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운요호를 통해 강화도와 인연을 맺은 나가사키는 이곳에 떨어진 1945년의 원자폭탄으로도 우리에게 기억된다. 이런 이유로 나가사키는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과 관련된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지역이 되었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에 대하여 한국사람들은 반일감정에 기초하여 무감각하거나 원폭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곳에서 원폭투하로 희생된 사람들 중 1/10은 조선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원폭 피해자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는 상관없는 대부분의 민중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두고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인과응보’로만 여기기에는 마음이 착찹해진다. 물론 나가사키는 나가사키를 출발하여 강화에 도착한 운요호가 결국 조선침략의 시발점이 되어 수많은 조선의 민중들이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독도문제로 한일관계가 양국의 시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얼어붙고 있다. 일본과 한국서 각각 외세의 유입통로가 되었던 강화와 나가사키 두 도시의 시민들이 독도가 가진 역사적 상징성 앞에서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 기사는 인천교사신문에도 함께 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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