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대담 세번째: 이응식 강화군 광복회장! 강화3.1운동 100년, 통일로 새 100년
릴레이대담 세번째: 이응식 강화군 광복회장! 강화3.1운동 100년, 통일로 새 100년
  • 김세라
  • 승인 2019.04.02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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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대담 세번째: 강화3.1운동 100, 통일로 새 100

이응식 강화군 광복회장

 

 

누가 감히 여기서 용서에 대해 말하겠는가?

우리들 중에서 가장 용감했지만 사람들에 의해 영혼이 타락되어 비겁자로 전락한 자들, 가슴속에 영원히 타인에 대한 증오와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을 간직한 채 절망 속에서 죽어간 자들 때문에 가혹하게 단죄하는 것 역시 성스러운 정의이다.

 

  • 카뮈, 경멸의 시대(콩바 지, 1944.8.30.) 중에서 -

 

방치된 상처는 결국 주변의 살 전체를 썩게 합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도 마찬가지지요. 2차 세계대전 중 4년 간 나치 점령 하에 있었던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나치 부역자에게는 자살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기조로 철저히 진행되었습니다. 반면, 36년 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우리는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꾸렸지만 반역자 처단은커녕 친일경찰의 습격을 받고 강제 해산 당하고 말았죠. 정의를 바로세우지 못한 과거의 망령이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3.1운동 100주년의 의의를 논의하는 이때, 야당 원내대표가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망언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이에, 강화뉴스가 이응식 강화군 광복회장님께 역사바로세우기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강화뉴스(이하 강화) 광복회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응식 광복회장
이응식 광복회장

 

이응식 강화군 광복회장(이하 광복회장) 일제에 항거하여 조국 광복에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입니다. 제가 평생 존경했던 아버지는 애국지사 이희화(李熙和) 옹이십니다. 살아계셨으면 올해 97세입니다. 십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여전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강화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광복회장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 되어 만주로 끌려가셨다가 탈출을 감행하셨죠. 일본군의 감시가 얼마나 철저하고 잔인했는지, 다들 탈출은 꿈도 못 꿨다고 합니다. 탈영병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체포한 후 사지를 절단하여 본보기로 전시 했다고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1944113, 동료 4명과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로 백일 간 도망치셨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난의 행군이었답니다. 쪽잠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하면, 일본군의 군견 짖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고 해요.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죠. 한 창 잘 먹을 나이니 배는 또 얼마나 고팠겠습니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옥수수 밭, 수수 밭이 있어서 그걸로 연명했다고 합니다. 힘겹게 중경에 도착 한 아버지는 광복군에 합류하십니다. 독수리작전을 아세요? 원래 194598일에 광복군은 국내로 진입하여 일본군을 격파할 계획이었거든요. 아버지도 독수리작전에 참여 하셨는데요,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항복하게 되면서 무산되고 말았죠. 광복군들은 조국 해방을 기뻐하면서도 왜놈들을 우리 힘으로 몰아내지 못한 점을 애석해 했답니다.

 

강화 광복군이셨던 아버님을 떠올리면, 잘못된 역사가 바로 세워지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우실 것 같습니다.

 

광복회장 1946년에 동지들과 귀국한 아버지는 자연스레 철기 이범석 장군으로 중심으로 한 조선민족청년회(족청) 활동을 하시게 되었는데요, 이승만대통령과 그를 추종하던 세력들의 탄압 때문에 광복군이었다는 사실은 내내 입을 열지 못하셨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독립운동을 했던 건 사실이지만, 해방 후에는 본인의 정치적 야망을 우선으로 했잖아요. 김구선생은 광복군과 함께였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지지기반이 약했어요. 그러다 보니 김구선생과 광복군은 눈에 가시였겠죠. 이승만대통령은 권력에 눈이 멀어 김구선생을 제거하고 부정선거를 치루고, 안 좋게 끝나지 않았습니까. 무엇보다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일제 부역자를 처단하지 않은 점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친일청산 운운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강화 강화군 광복회장으로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어떠신가요?

광복회장 3.1독립선언서를 읽어보셨습니까? 저는 강화군 광복회 회장이다 보니 공식적인 행사에서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략 열 번 쯤 읽은 것 같은데요, 그 때마다 의미가 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이 첫 문장부터 전율을 느끼는데요, 1919년이면 왕조시대가 막을 내린지 고작 9년 밖에 지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조선왕조가 아니라 조선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천명 한단 말입니다. 이미 이때 민주주의를 선언 할 만큼 선조들의 의식수준이 높았다는 뜻이죠. 또한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도 담겨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3.1독립선언서는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3.1독립선언서의 정신은 유효합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3.1독립선언서에 담긴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강화 3.1독립선언서의 정신은 오늘까지도 이어진다는 회장님의 말씀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강화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광복회장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일신의 안락을 버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의인들의 투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장개석 정권이 김구 선생에게 항일무장투장을 위한 지원을 약속하고 실천한 배경에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습니다. 장개석은 중국의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 용사 한 명이 해냈다.”며 감탄했다고 하지요.

강화군민들도 이토록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가진 민족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김세라

사진: 나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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