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3.18만세운동 주역 황도문의 손자 황경진님
강화 3.18만세운동 주역 황도문의 손자 황경진님
  • 글: 김세라, 사진: 나윤아
  • 승인 2019.03.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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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대담 두번째: 강화3.1운동 100년, 통일로 새 100년

강화는 예로부터 외세의 침탈에 맞서 싸웠던 고장이요! 오늘 강화군민이 다 함께 대한독립을 외침으로서 우리 민족이 죽지않고 의연히 살아있음을 세계만방에 알립시다!”

1919318일 오후 2, ‘결사대장이라고 쓴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백마를 탄 30대 남성이 강화읍 장터에 나타났다. 지방단위로서는 가장 큰 규모(일본경찰이 본국에 올린 보고서에 의하면 2만 명)였던 역사적인 강화 3.18 만세운동의 선두에 선 이 남성은 대한제국 진위대 출신인 유봉진 선생.

선생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당시 강화진위대장 이동휘 선생의 지휘아래 일본군과 싸웠던 애국지사였다. 그 후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가슴에 품고 온수리에서 길직교회 권사로 활동 중이던 유봉진 선생이 만세운동의 선두에 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황도문 선생

12일 전인 191936. 선두리 선두교회 출신 연희전문 2학년 황도문 학생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31일 만세운동과 35일 서울역 학생연합시위에 참가했던 그의 품에는 ‘3.1독립선언서와 독립만세운동을 촉구하는 지하신문인 국민회보등 불온문서가 숨겨져 있었다.

본디 황도문 학생이 나고 자란 선두리는 정미의병의 자취가 남아있는 동네. 마을에는 정미의병부대가 일본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후, 일본군 30여명의 다리를 잘라 방죽에 던져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런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황도문은 남달리 영특하고 의기가 있는 소년이었다. 황도문이 다녔던 선두교회 신자들은 소년들을 넓을 세상으로 보내기로 하고 배제학당 진학을 추천한다. 고향사람들의 기대와 격려를 받으며 유학길에 오른 황도문은 배제학당 졸업 후 연희전문에 입학하게 되었고, 재학 중에 3.1만세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황도문은 강화에 도착하자마자 온수리의 유봉진 선생을 찾아간다.

“3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강화사람들은 삼별초 때부터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워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만세운동을 해야 합니다.”

황도문의 뜨거운 열기는 유봉진 선생에게 전해졌고, 유봉진 선생은 조국 독립을 위해 인생을 던지기로 결의한다. 유봉진 선생은 아내 조인애 여사에게 3.1만세운동에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하고, 조인애 여사 역시 만세운동에 동참하겠다며 남편의 선택을 지지한다.

이어, 유봉진 선생의 길직교회와 황도문의 선두교회를 중심으로 길상결사대가 조직된다. 예배를 핑계로 길직교회에 모인 길상결사대들은 강화 장날인 318일을 만세운동 D-Day로 정한다.

황도문이 가져온 불온문서(?)는 교회 등사판을 이용하여 인쇄되었고, 여신도들과 가족들이 보따리장수로 변장하여 유인물을 각 마을의 교회로 전달한다. 또한 유봉진선생은 강화 전역의 교회와 학교를 은밀하게 돌면서 군민들에게 만세운동 동참을 독려했다.

만세운동의 신호탄은 뜻밖의 장소와 날짜에 터졌다. ‘초딩들이 먼저 나선 것이다.

312. 강화읍의 중심가에 위치한 강화공립보통학교(지금의 강화초등학교) 상급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칠판에 태극기를 그린 후 대한독립만세를 목 놓아 외친다. 깜짝 놀란 교사들은 혹시나 일경에 의해 학생들이 다칠까봐 해산을 권유하지만, 여기서 멈출 초딩들이 아니었다.

다음날인 13일은 강화읍 장날. 정오가 되자 강화공립보통학교여학생 80여명이 대한독립만세을 우렁차게 소리쳤다. 여학생들의 외침은 학교 인근에서 열렸던 강화장터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만일의 소요를 대비하여 긴장하고 있던 순사들이 출동하여 학생들을 체포하였고, 이 사건은 조선총독부에까지 보고되었다.

이쯤 되니 더 이상 어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린학생들의 항거에 깊은 감명을 받은 강화사람들은 318일 장날 대대적으로 모이게 된다.

향교 앞에서 연설을 마친 유봉진 선생은 시위대와 함께 군청으로 진격한다. 어느덧 모인 인파는 1만 명. 유봉진 선생은 군중들이 흥분하여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도록 지도하며 끝까지 평화시위를 이끌었다. 시위대의 요구에 의해 만세운동 과정에서 체포된 모든 이들이 석방되고, 3.18 의거는 밤 11시경 무탈하게 마무리 된다.

다음날 새벽, 일본은 인천수비대와 용산 일본군을 급파하여 강화 전역에 살벌한 검거작전을 펼친다. 유봉진 선생의 부인 조인애 여사는 부녀자들을 인솔하고 시위에 앞장서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 유봉진 선생은 고려산에 잠복했다가 장봉도를 거쳐 마니산에 숨지만 일본 경찰이 부모를 핍박하자 자수를 결심하게 된다.

황도문은 일본경찰의 체포망을 피해 강화탈출에 성공, 강원도 산골에서 3년간 숨어 지내다 1922년부터는 덕적도의 합일학교 교사로 봉직하며 구국교육운동을 전개한다.

덕적도 합일학교 재직 당시, 할아버지께서 학생들을 데리고 마리산으로 수학여행을 가셨나 봐요. 제자였던 어르신께 들은 일화입니다. 어느 봄날, 할아버지께서 학생들과 참성단에 올랐답니다. 할아버지는 단군할아버지와 고조선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셨다지요. 그 광경을 누군가 고발했다면 당장 끌려갈 상황이었죠. 이 모습에 감동을 받은 학생들도 함께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답니다.”

손자 황경진씨에 따르면 할아버지인 황도문 선생은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그러했듯이 가족들을 제대로 돌보는 가장은 아니었다고 한다. 선두리는 원래 땅이 기름진 옥토여서 농사가 잘 되는 고장. 황경문씨가 자랄 때는 살림이 나쁘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형제분들은 곤궁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원래 큰일 하시는 분들이 가정을 살필 겨를이 없잖아요. 할아버지께서 임시정부 군자금 마련하려고 개성에서 홍삼을 구해 와서 배편으로 중국에 보내는 일을 하셨다는데요, 식구들은 누추한 집에 살았다고 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고향땅을 지켰던 황경진 씨는, 몇 년간 인천에서 급식관련 사업을 하다가 산마을고등학교에서 시설관리주무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사업이 잘 되었어요. 그러다가 IMF가 왔죠.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산마을고등학교 개교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사정이 딱해서 아내와 몇 년 만 도와주자고 했는데, 결국 정년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산마을고등학교의 성장을 보면 괜히 뿌듯해집니다.”

친일파 후손의 대물림 되는 부귀영화와 대비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신산한 삶은 굴곡 깊은 우리 현대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엄혹했던 식민지 시절, 일신의 안락대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무명의 민초들. 기록되지 않은 선조들의 거룩한 피땀눈물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에 관하여 아는 게 많지 않아요.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이었다고 동네 어르신들이 말씀 해주셔서 그렇구나 하는 정도에요. 할아버지께서는 길상면 초대면장이셨는데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게 끌려가셔서 비극을 겪으셨어요.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유복자를 낳으셨지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우셨는지, 할머니도, 아버지도, 할아버지에 대하여 거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2001, 김대중 대통령 재임 중에 건국포장 추서를 받았는데요, 이 역시 먼 친척이 추진한 것입니다. 이곳이 독립운동가 황도문 선생 생가라고 해서 어린 학생들이 자주 방문해요. 제가 아는 게 많지 않아 해줄 말이 없는 게 안타까워요.”

마지막으로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3.18 만세운동 100주년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훌륭한 할아버지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바빠서 자꾸 잊고 지내게 됩니다. 만세운동 100주년이라고 하는데, 제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래도 이렇게 잊지 않고 할아버지를 찾아주시니 감사하죠. 평생 조국 독립을 위해 싸웠던 할아버지의 의로운 삶이 강화사람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기억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황도문 선생의 손자 황경진 선생
황도문 선생의 손자 황경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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