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대담: 강화 3.1운동 100년, 통일로 새 100년, 윤여군 목사
릴레이 대담: 강화 3.1운동 100년, 통일로 새 100년, 윤여군 목사
  • 김세라
  • 승인 2019.01.31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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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대담: 강화 3.1운동 100, 통일로 새 100

윤여군 목사의 첫 번째 대담

 

2019년은 3.1독립만세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다. 1919318. 서울의 만세소식을 접한 강화 사람들은 강화읍장날에 2만 여명(일본경찰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함)이 모여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일으킨다. 이는 지방단위로는 경상남도 진주와 더불어 가장 큰 규모의 항쟁이었다. 강화뉴스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인 3.1운동의 의의를 되짚어보고,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3.1운동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 가를 이야기 해보는 특별연재를 기획하였다. ‘강화 3.1운동 100, 통일로 새 100주제로 마련한 이번 연속대담의 첫 번째 주자는 강화언론문화협동조합(강화뉴스) 1대 이사장인 남산교회 윤여군 목사다.

 

 

강화뉴스(이하 강화) 2019년에 3.1운동 100년을 기억하고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윤여군목사(이하 윤목사) 역사적 사건을 제대로 평가 하려면 여러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참여자들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사건에 임했는지를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당사자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냈을 때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겠죠.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고조선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 우리 민족사에 3.1운동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모든 일 중 가장 중요하고 큰 사건입니다. 최근에는 3.1운동을 혁명으로 이름 붙이려는 움직임도 있어요. 혁명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의거운동으로 한정하기에는 3.1운동에 담긴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

 

강화 3.1운동은 혁명이라고 명명하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윤목사 근대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개인이 등장한 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봉건제도를 부정하고 공화국을 열어낸 3.1운동은 동학혁명 못지않게 위대하지요.

하지만 3.1운동의 민족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혁명이란 이름을 붙이기에 머뭇거려 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완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이 아니라, 아예 완성에 이르지도 못했기 때문이지요.

 

강화 3.1혁명은 왜 완성에 이르지 못했을까요?

윤목사 해방 이후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사회는 3.1운동의 정신을 꺼낼 수도 없는 질식 상태에 놓였죠. 분단과 이념 대립으로 왜곡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강화도입니다. 강화는 반만년 동안 한반도의 중심이었죠. 예로부터 한강의 입구였던 강화를 차지하는 정치세력이 한반도를 지배 하였으니까요. 그러나 남과 북으로 나뉘면서 강화는 변방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강화 사람의 시대정신도 퇴보하게 되었어요. 3.18만세운동을 일으켰던 강화사람들의 기개를 떠올려보면, 현재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강화 좀 더 자세하게 설명 해주세요.

윤목사 예를 들면, 현재 강화사람들은 바닷가의 철조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접경지역은 다 이렇다고 여기지만, 철조망이 생긴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에요. 이렇듯 우리는 생활과 생각을 제어하는 시스템에 익숙해져 버린 게 아닐까요?

 

강화 이런 처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적응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윤목사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3.1운동이라는 근대적 혁명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3.1운동은 범 민족적이고 숭고한 혁명으로 발발하였으나, 우리 스스로 더 발전하고 심화시키지 못했죠. 왜 그랬을까요? 민주주의의 기본은 모두가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요, 자기중심적인 미성숙한 태도가 나만 옳다는 그릇된 모습으로 발현 되었던 것 같아요.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하는 대신 타인을 소외시키려다가 결국 다함께 소외 되어버렸죠. 우리 내부의 부족함이 식민지라는 외부적 조건과 결합하여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요.

 

강화 비극적인 현대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목사 이제라도 옳고 그름을 전제하지 않는 대화를 나눠야 하겠죠.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갈등은 불편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각자의 이야기가 부딪힐 때 우리의 삶의 자리도 역동적으로 변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3.18만세운동을 일으켰던 강화 사람들의 지혜를 배워야합니다. 3.18만세운동에 2만 명이나 되는 강화사람들이 참가했던 것은, 사회적 대화의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성별, 나이, 이념적 성향, 정치적 패권, 소유와 관련된 사회적 관계가 대화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내 의견만 주장하기 위해 주문처럼 계속 외치는 것은 참된 대화가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작년부터 벌어지고 있는 남과 북의 만남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강화 그밖에도 강화 3.18만세운동의 성과는 무엇이 있을까요?

윤목사 다들 아시다 시피, 강화는 3.18만세운동을 통해 역량 있는 혁명 지도자들을 배출했지요. 그 대표적 인물로 이동휘 선생이 있습니다. 함경남도 단천 출신인 이동휘 선생은 강화의 바울이라고 불릴 만큼 강화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요, 이후 상해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셨고,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셨죠. 강화 3.18만세운동이 길러낸 또 하나의 인물은 조봉암 선생입니다. 그 밖에도 많은 강화출신들이 인천의 사회운동을 이끌어갔지요. 민족사의 어려운 모순적 상황을 뚫고 일어나려 했던 움직임 한복판에 3.18 만세운동이 있었다는 것은 강화사람들에게 대단히 큰 정신적 유산입니다.

 

강화 강화 3.18만세운동을 어떻게 기념하면 좋을 까요?

윤목사 역사를 배운 다는 것은 과거 사실에 대한 지식만을 습득하거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우리가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교훈을 찾는 것이죠. 강화사람들은 식민지라는 모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던 3.18만세운동의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매우 자주적으로 분단을 극복하려고 노력 하는 것도 그 중 하나겠죠. 먼저, 다양한 방향에서 우리민족의 형편이 어떤지 진단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분단에 의해 부자연스럽게 통제 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널리 알려야 하고요. 이와 관련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것도 3.1운동을 기념하는 좋은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이런 이야기가 오갈 때 강화주민들이 강화 3.1운동 100, 통일로 새 100이라는 슬로건에 공감할 것 같습니다.

 

강화 마지막으로 강화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목사 민주주의는 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미 물리적 폭력을 수반한 대화, 즉 전쟁을 경험한 민족이에요. 두 번 다시 같은 불행을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꼭 맞는 대화법을 익힐 때까지 연구하고 연습해야 할 것입니다.

모쪼록 3.1운동 100주년 기념에 좀 더 많은 강화사람들이 동참하여 혁명정신을 계승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제약들이 있지만, 많은 이들의 지혜와 용기를 모은다면 잘 해 내리라 믿습니다.

 

대담일: 2019125

대담장소: 카페 들

: 김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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