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째 강화소창을 짜고 있는 연순직물 김민재님
2대째 강화소창을 짜고 있는 연순직물 김민재님
  • 인터넷 강화뉴스
  • 승인 2018.11.27 16:0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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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강화소창과 만나다.

청춘, 강화소창과 만나다.

2대째 강화소창을 짜고 있는 연순직물 김민재님

 

1980년대까지 강화의 번영을 이끌었던 직물산업. 그 한가운데 이불안감, 기저귀, 생리대, 행주 등 우리네 일상과 함께했던 강화 소창이 있었습니다. 1990년 이후 무역자유화와 중국산 면소창의 대량수입으로 오늘날 10여 곳에서만 강화소창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최근 친환경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강화소창이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강화소창을 생산하기 위해 열정을 다하고 있는 반가운 청년을 만났습니다. 연순직물 김민재님(33)입니다.

 

강화뉴스(이하 강화) 연순직물 소개 부탁드립니다.

 

2대째 강화소창을 짜고 있는 연순직물 김민재님
2대째 강화소창을 짜고 있는 연순직물 김민재님

 

김민재(이하 김) 연순은 어머님 성함이에요. 부끄러우신 건지 자꾸 상호를 바꾸라고 성화인데, 저는 연순직물이라는 이름이 좋아요. 어머니, 외삼촌, 모두 10대부터 소창공장에서 일하셨대요. 하점출신 외할아버지께서 의정부에서 작은 소창공장을 운영하셨나 봐요. 친가도 옥림리에서 메리야스 직물공장을 하셨고요. 그때는 강화 젊은이들은 대부분 직물공장에서 일했다고 해요. 두 분이 만나서 공장 일을 하다가 93년도에 창업을 하신 거죠.

 

강화 부모님의 가업을 잇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소창 생각은 아예 생각이 없었어요. 20대 때는 서울에서 영업일을 했었는데요, 돈을 벌어도 모이지 않더라고요. 어릴 적에는 포부가 크잖아요. 다 잘 될 것 같고.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6년 전에 강화로 내려왔습니다. 뭘 해야 하나 고민 중에 저희 공장에서 근무 하셨던 어르신이 개인사정으로 그만 두게 되셨어요. 기계 두 대가 고장 났는데, 당장 야단이 난거죠. 본디 기계 만지는 걸 좋아 했거든요. 어릴 적부터 봤던 거라 그랬는지, 배운 적도 없었는데 이틀 만에 고쳤어요. 그 일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공장 일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대로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인천 주안에 있는 폴리텍 대학에 들어갔어요. 대학에서 쇠 가공을 배웠죠.

 

강화 열정이 대단하세요. 직접 기계부품을 만들 생각까지 하시다니

백년넘은 정경기
백년넘은 정경기

 

호구지책이죠. 일제 강점기에 도요타 직물기가 들어와서 강화에 직물산업이 번창 하였어요. 저희 공장에도 두 대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우석, 삼일에서 생산되었는데, 예전에는 기계마다 등록증이 있어서 정부에서 관리했대요. 인가를 받지 못하면 기계를 살 수도 없었죠. 어머니 말로는 귀한 기계라서 직원들이 하이타이로 닦았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더 이상 평직기계는 나오지 않아요. 공장 폐업 소문을 들으면 기계를 통째로 사와요. 부품도 구하기 어려운데요, 북 만드는 공장도 모두 문을 닫고 대구에 할아버지 한분 남았어요. 셔틀, 바디 같은 부품도 구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만들 수 있는 건 직접 해야 해요.

 

강화 우리의 전통 문화가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저는 소창에 전통이라는 단어가 안 붙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거창해요. 전통이면 베틀로 짜야죠. 이건 전통이 아니에요. 오래된 산업이지. 전통이어서 물려받은 게 아니에요. 부모님이 닦아둔 기반이 있었고, 시장 환경이 변해서 찾는 사람이 늘었잖아요.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하는 거 에요.

 

강화 최근에 소창 수요가 많이 늘고 있죠?

그동안 소창은 결혼식 함이나, 장례할 때 관을 묶는 끈 등 의례용으로 더 많이 소용 되었어요. 세월호 때도 저희 제품이 나갔어요. 그때는 마음이 안 좋아서 엄청 신경 썼어요. 티끌 하나라도 들어가면 다 빼버렸죠. 2018년에 강화도가 올해의 관광도시가 되고, 석모도 온천에서 소창수건을 쓰면서 갑자기 강화소창이 널리 알려졌어요. 지난여름에는 생생정보통에 소창행주가 나와서 난리가 났죠. 방송 직후에 전화기가 불이 났어요. 여름은 비수기어서 재고도 별로 없었거든요. 주문 수량 맞추려다 보니 여름 내내 쉬지도 못하고 손해 보며 물건 팔았어요. 그래도 스스로 다독였죠. 소비자들이 한번 써보면 또 찾겠지, 희망을 걸었습니다.

 

강화 매출이 크게 증가 했으니 살림살이가 넉넉해지셨을 것 같아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희 공장 기계가 20대에요. 19인치는 기계 한 대에 하루 두필 나오거든요. 다만 비수기 없이 1년 내내 공장을 가동하고, 일정을 조율 할 수 있어서 작업 시간이 줄었어요. 이제는 야근 안 해요. 어머니도 이제 좀 덜 힘들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 사람답게 살려고 일하는 거잖아요.

 

강화 앞으로 계획 부탁드립니다.

강화에 소창공장이 많이 안 남았잖아요. 강화소창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났는데, 공급이 못 따라 주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중국산, 파키스탄산이 강화소창 타이틀을 달고 나오고 있죠. 그래서 강화군에 강화소창 제조사 인증 요청했어요.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강화소창도 부흥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소창공장들이 뜻을 모으면 원사, 부품 공동구매나, 무형광 제조 노하우 공유 등 서로 도울게 많거든요. 더 좋은 제품을 착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면 소비자들은 틀림없이 찾아요. 가끔 저희 물건 본 고객들이 깜짝 놀라요. 다른 곳에서 산 소창이랑 비교가 안될 만큼 퀄리티 높다고. 별거 없어요. 좋은 원사로 촘촘하게 짜서 그렇거든요. 강화소창 브랜드는 만들어 졌잖아요. 제대로 만들어서 제값 받고 팔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세라
사진: 나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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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sehd 2018-11-30 10:04:55
사장님 생각이 훌륭해보입니다. 사람답게 살고...강화의 다른 소창공장부흥을 위한 생각도 좋고^^ 좋은 제품 잘 만들시면 사업도 잘될듯합니다. 공장에 구경가면 거기서도 소매할수 있음 좋겠네요

고정석 2018-11-29 01:51:44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내용중 전문용어들은 이해하기 쉽게
해주셨으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