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나들길 ‘해가 지는 마을 길’을 걸으며 해 지는 풍경에서 강화학을 바라보다
강화 나들길 ‘해가 지는 마을 길’을 걸으며 해 지는 풍경에서 강화학을 바라보다
  • 최보길
  • 승인 2012.07.16 14: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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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길의 발로 새긴 강화역사 이야기 ③] 정제두 묘역과 강화학
강화에 사는 역사교사의 노후대책
 
이십대 끝자락에서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부를 때 내 고민은 ‘사람’, ‘세상’이었는데, 나이 마흔에 접어들고서는 늦게 장가가서 얻은 어린 아들과 ‘삶의 미래’에 관심이 쏠린다. 마흔이 되어서도 기저귀를 손에서 놓지 못하면서도 가끔 손가락을 세어가며 남은 ‘삶’을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벌어놓은 것 별로 없고 다행스럽게도 ‘부유함’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크지 않으니 아이들 키워놓고 소박하고 재미있는 여생을 보낼 수 있기를 꿈꾼다.  
 
강화도에도 소박한 여행, 자신의 발에 하루를 맡기는 도보여행 코스가 생겼다. 누구나 나들이 나온 기분으로 일상을 벗어나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길이라 하여 이름 붙인 ‘나들길’. 우리에게 익숙한 제주도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이 자연이 만들어 놓은 풍경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면 강화의 나들길은 오히려 인간의 삶을 빼고는 좀처럼 특별함을 느끼기 어렵다. 강화의 길은 자연의 길이 아니라 사람의 길이다. 눈보다는 귀와 마음을 열어놓고 걸어야 그 참맛을 알 수 있는 길이다. 
 
강화에 사는 역사교사이니 가끔 강화를 찾는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는 강화여행’을 함께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가끔씩 강화도 나들길 좋은 길목에 막걸리와 파전만 파는 허름한 막걸리집 하나 차려놓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맛있는 ‘역사 이야기’와 길동무를 덤으로 주는 그런 노후대책을 꿈꾸기도 한다.
 
해가지는 마을길 곧 양명학길 그리고 ‘친민(親民)’과 ‘신민(新民)’
 
정제두 묘에서 시작해서 강화 외포리까지 시골 마을과 강화의 해안을 거쳐가는 길에 나들길이 만들어졌다. 강화의 서쪽 해안을 따라 걷는 길에서  “해가지는 마을 길”은 해질녘 고즈넉함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둥근 태양을 만났을 때 한없이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정제두 선생 묘로부터 시작해서 걷는 중간에 만나는 영재 이건창 선생의 묘소까지를 걷다보면 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역사 용어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양명학”이다. “
해가 지는 마을길”은 초기 양명학(조선)에서부터 후기 양명학(대한제국)까지의 역사가 담긴 길이다. 눈으로는 황홀한 석양을 만나고 귀로는 ‘양명학’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길이 바로 ‘해가지는 마을 길’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앎에 대하여 주희(성리학)는 불완전한 것으로, 왕수인(양명학)은 완전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렇기에 주희는 불완전한 것을 완전함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교육을 필요로 여겼고, 왕양명은 거짓된 앎을 걷어내기 위한 성찰을 중요시 여겼다. 
 
이와 같은 차이는 ‘민(民)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에 관한 ‘친민’과 ‘신민’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주희는 본래의 ‘친민’을 ‘신민’으로 달리 해석했다. 때문에 민중은 교화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유학에 익숙한 사대부의 역할로 생각했다. 당연히 이 역할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사대부의 정치·경제적 특권을 긍정했다. 반면 왕양명은 말 그대로의 ‘친민’에 집중했다. 백성은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수양하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좋은 앎’ 곧 ‘양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먼저 깨달은 사람 곧 사대부가 수양을 통해 ‘양지’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백성과 친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덕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부터 다시 가다듬고, 친민(親民)하기 위해서…
 
이러한 강화학파의 고민은 오늘날 시민을 교화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함께 덕을 이루는 동반자로 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에서도 살펴볼만 하다. 신분제가 엄격했던 봉건 사회에서 하층민이 자신의 주체성을 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이를 반증하듯 영웅이나 지도자의 역할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처럼 대중교육을 통해 얻는 정보와 투표를 통해 만드는 정치참여의 과정을 통해 영웅과 지도자보다는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는 개인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이상 더 이상 사람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양명학을 수용한 강화학파의 생각이 지금 더 친숙하게 여겨진다. 최근 우리사회의 상황을 보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심난하다. 지난 총선의 결과와 다가올 대선을 앞두고 희망을 확인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역시 사람이 열쇄다.  
 
우리 안에서의 ‘신민과 친민’을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나’부터 다시 가다듬고, 친민하기 위해서.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찰과 실천의 기운이 모여 살아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꿈이 가능성을 이유로 그 가치가 폄하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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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산인 2012-08-28 22:19:45
신민과 친민! 주자학과 양명학을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글, 정말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