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릉(碩陵)의 주인공, 비운의 왕 희종(熙宗)
석릉(碩陵)의 주인공, 비운의 왕 희종(熙宗)
  • 인터넷 강화뉴스 편집부
  • 승인 2018.06.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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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정이슬(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에는 고려 왕릉들 중 하나인 석릉(碩陵)이 있다. 이 왕릉의 주인공은 고려 제 21대 임금 희종(熙宗, 재위기간 1204~1211)이다. 1181년 태어나 1204년 왕위에 오른 20대 초반의 젊은 왕이었으나, 그가 왕의 자리에 있던 기간은 8년에 불과했다.

▲ 석릉
즉위 당시 희종이 처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당시 실권자는 최충헌(崔忠獻, 1149~1219)이었다. 무인정권기에 즉위한 그는 무신들의 눈치를 봐야했고, 특히 최충헌을 거스르기는 더욱 어려웠다. 희종은 무신들의 불만을 풀어주고자 법회(法會)를 열거나, 최충헌에게 선물을 주는 방법 등으로 무신들을 달래야 했다. 젊은 나이, 그리고 한 나라의 국왕이라는 입장에서 무신들의 비위를 맞추며 왕좌를 지키는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지 않았을까. 1211년 겨울, 희종은 최충헌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평소처럼 희종의 부름을 받아 궁에 온 최충헌은 자객들에게 살해 당할 위기에 처한다. 희종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고, 그때서야 희종의 함정임을 눈치 챈 최충헌은 궁 내에 숨어있어야 했다. 그러나 하늘은 희종을 외면하고 최충헌을 도왔다. 자객들은 숨어있던 최충헌을 찾지 못했고 위기를 벗어난 최충헌은 사병을 동원해 희종을 폐위, 강종(康宗, 재위기간 1211~1213)을 옹립한다. 폐위된 희종은 강화도 · 교동도를 전전하면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123757세의 나이로 강화도에서 세상을 떠난 반면, 최충헌의 권력은 더 강해져 훗날 460년을 이어갈 최씨 무신정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희종이 잠든 석릉을 포함한 강화도의 고려 왕릉들은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안타깝게도 강화도의 왕릉들은 고려의 멸망 이후 제대로 관리 받지 못했고, 오랜 시간이 흐르며 왕릉 안에 있던 부장품(副葬品: 껴묻거리), 왕릉을 장식했던 장식물들이 도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어딘가 초라해 보이는 왕릉의 풍경은 최우 등 최씨 무인정권 실권자들의 압력에 시달리며 몽골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했던 고려 왕들의 험난했던 삶을 떠올리게 한다.(본 글은 인천역사통신 제17호에 실린 글로 인천역사문화센터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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