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江都) 동락천(東洛川)
강도(江都) 동락천(東洛川)
  • 인터넷 강화뉴스 편집부
  • 승인 2018.06.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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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정학수(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

 송악산 남쪽에 자리한 고려 개경의 도심에는 배천(白川)과 앵계(鶯溪)와 오천(烏川) 등의 하천이 흘렀다. 황성 북쪽 광명사 쪽에서 궁성을 통과하여 내려오는 물줄기와 구산사·자하동 쪽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광화문 남쪽 흥국사 근처에서 만나 개경의 중심거리인 남대가(南大街)와 나란히 남쪽으로 흐르는 물길이 배천이고, 서쪽의 오공산과 남쪽의 용수산에서 발원하여 앵계라는 이름으로 동쪽으로 흐르다 개경 중심부인 십자가(十字街, 현재 남대문 있는 곳) 근처에서 배천과 만나 동쪽으로 흐르는 물길이 오천이었다.

▲ 개경 나성 안의 주요 하천과 간선도로(원도=숙명여자대학교 개경연구사업단)

오천은 앵계가 종이 시장과 말 시장, 돼지 시장 등 도심을 지나오면서 더러워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되며, 개경 동북쪽 부흥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선죽교를 지나 남쪽으로 흘러 온 물길과 합류하여 탁타교를 지나 나성 동남문인 보정문(장패문)의 수구로 빠져 나갔다. 개경의 저잣거리는 도심을 흐르는 하천과 병행한 길가나 천변, 공터에 조성되었다. 하천이 물을 공급할 뿐 아니라 오물을 배출하는 하수도 기능도 했기 때문이다.
 
강도(江都)에도 동락천(東洛川)이라는 도심을 흐르는 하천이 있었는데, 도성 서쪽 고려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도심을 관통하여 동쪽으로 흐르면서 갑곶강[염하]으로 빠져나갔. ‘동쪽 낙양의 내라는 동락천은 김창현의 연구에 따르면, 동국여지승람에 보이지만 삼도부를 지은 최자의 시문에 낙수(洛水)의 신도(新都)’ 표현이 있어 강도시절에도 불렸을 것으로 본다.
▲ 강화부성과 화산(=남산) 사이에 동락천이 표시된 강화전도 부분(1684,영남대박물관)
동락천 주변은 개경과 마찬가지로 상점과 관청, 민가가 즐비했을 것이다. 신라 왕경의 월정교처럼 지붕이 있는 누교(樓橋)도 개경에 있던 것과 같이 만들어 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물화와 사람이 모이는 곳이 저잣거리이다. 1980년대 초에 복개되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저잣거리가 있던 동락천은 강도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본 글은 인천역사통신 제17호에 실린 글로 인천역사문화센터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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