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전 4.19 때, 강화군 학생들 1,000여명이 참여했다.
58년 전 4.19 때, 강화군 학생들 1,000여명이 참여했다.
  • 윤여군 기자
  • 승인 2018.05.0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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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4.19동지회(회장:나성식 강화체육사 대표)가 결성되어 30여명 회원들이 매달 정기모임을 하고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4.19민주혁명은 1960년 자유당의 이승만 정권이 장기12년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전국100만 학도가 ‘3.15부정선거 규탄독재정권 물러가라는 시위를 전개해서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린 민주혁명이넜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은 물러나고 민주당의 내각책임제 정권이 들어섰다.
▲ 강화군 4.19동지회원들 국립4.19민주묘역 참배
 
강화의 4.19는 도시지역보다는 늦은 426일 일어났다. 당시 강화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읍내 학교를 돌며 학생들을 규합했고, 강화중학교. 강화고등학교. 강화여상. 강화여중학교 등 4개학교 1.000여명이 이에 호응해서 경찰서, 강화군청, 강화수협 4거리, 남문, 합일학교, 조양방직, 여상을 돌며 '3.15부정선거 다시하라' '이승만 독재정권 물러가라' '이돈해교육감 물러가라'등을 외치며 강화3.1만세장터(. 중앙시장A. B)에 모여서 구호와 만세3창을 부르고 해산했다.
 
이 때 강화고등학교의 교사들(남궁택, 이영성선생)도 학생들의 의거에 적극 호응했다고 한다. 당시 시위를 주동했던 한상운씨는 “419에 강화고등학교 규율부 학생들이 4.19 소식을 듣고 강화에서도 시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학생들이 모두 함께 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데모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니 선생님들이 야단은커녕 모두들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학생들은 개선장군이 된 양 기분이 우쭐했다.”고 회상했다.
 
강화 4.19를 소개하는 김필문(전 도화기공 교장), 안청수(초대 군의원)강화읍 4개 학교 1,500명 학생 중에 1,000명이 참가해 일제 하 3.1운동 이후 최대의 사건이었다. 시민들은 학생들의 구호에 박수와 환호를 하고 냉수를 떠다주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당시를 기억하며 당시에 선배들이 나서서 따라갔을 뿐이라며 껄껄 웃었다.
강화 4.19를 말하는 동지회 회원들 좌로부터 김필문, 한상운, 안창수
 
강화 4.19동지회는 58년 전 4.19 시위를 했던 강화군 내·외의 인사들이 모여서 2012년에 결성되었고 강화체육사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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