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칠 선생 등 5명 독립유공자 포상
박영칠 선생 등 5명 독립유공자 포상
  • 박제훈 기자
  • 승인 2018.03.30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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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포상 위해 강화군 발 벗고 나서

 강화군, 전체 독립유공자 포상 중 10%, 3·1운동관련 50%

포상신청자 중 나머지 14명 심의보류, 올해 8월 재심의 예정
내년 3·1운동 100주년, 독립유공자 자료발굴을 위해 보다 더 노력해야
 
정부는 올해 3·1절을 맞아 인천 강화 출신 박영칠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50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였다. 이번에 포상된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9(애국장 11, 애족장 18), 건국포장 8, 대통령표창 13명 총 50명이다.
 
강화에서는 총 5명이 포상되었는데 건국훈장 애국장에 박영칠(1896~1920/길상면 길직리), 건국훈장 애족장 권태철(1897~미상/선원면 연리), 건국포장 김용순(1897~미상/부내면 남산리), 대통령표창에 최공섭(1902~미상/군동면 읍내리)과 조재옥(1901~미상/길상면 선두리) 선생이다.
 
특히 건국훈장 애국장에 포상추서된 박영칠 선생은 1919318일 강화군 부내면 관청리 시장에서 5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강화경찰서 공격과 일본 순사 응징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3개월을 받고 수감 중 1개월 여 만에 옥고 여독으로 사망 순국하였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0.5.6)에서 만세시위 당시 활동 내용을 확인하고 부친인 박춘근(朴春根) 선생의 제적부를 통해 1920910일 본적지에서 순국한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옥고여독으로 순국한 선생의 사례는 일제가 식민통치기관이나 그 종사자를 공격하는 경우 얼마나 잔혹하게 대응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 박영칠 선생의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0. 5. 6). 1919년 경기 강화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강화경찰서에 쇄도해 순사를 응징한 사실로 체포되어 징역 3월을 받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번에 강화에서 독립유공 미등록자 19명을 포상 신청하였는데 강화3·1운동 구속피해자가 15, 예수교도 8인조 사건 참여자가 4명이다. 19명 중 5명만 포상되고 나머지 14명은 심의보류 되어 올해 8월에 재심의 예정이다.
 
강화에서 5명이 포상된 것은 전체 포상자 중 10%에 달하는 것이며 특히 3·1운동과 관련하여포상자 중 50%에 달한다. 강화에서 이와 같은 실적을 낸 것은 여러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며 특히 강화군에서 노력을 많이 하였다. 보통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은 자손 등 개인이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강화도는 군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여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쉬움도 크다. 이번에 심의보류된 14명은 관련 증빙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였다고 한다. 당시 업무담당자였던 이상석 사무관(현 석모도휴양림관리사업소 소장)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발굴 작업이 너무 늦어 관련 자료를 찾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자료가 부족하여 선정되지 못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이번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노력했던 한 인사는 내년이면 3·1운동 100년이 되는 해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에 대한 예우는커녕 관련 자료조차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였다. 부끄러운 일이며 앞으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자료 발굴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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