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보듬어 주는 양지 바른 동네
천 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보듬어 주는 양지 바른 동네
  • 김세라
  • 승인 2018.03.16 2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 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보듬어 주는 양지 바른 동네
올해로 500년 된 불은면 고능리 구씨 집성촌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도시화 비율은 85.4%(2010년 기준)로써 OECD 회원국 평균인 47.1%에 비해 월등히 높다. 압축 성장으로 인한 도시화 과정에서 아파트 위주의 단절된 주거 환경은 각종 이웃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복지 선진국에서 주목하는 ‘따뜻한 공동체’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강화의 농촌마을이 새롭게 조명되는 가운데, 강화 입향 500주년을 준비하고 있는 능성 구씨 강화 종중의 집성촌이 눈길을 끈다.

▲ 고능리 주민들

나주지역의 토착성씨인 능성 구씨의 11세조는 기묘사화에 연루 되어 1519년에 강화도 불은면 일대에 자리를 잡는다. 연산군 시절부터 각종 사화에 시달림을 당했던 능성 구씨 강화 종중 입향 시조는 후손들에게 ‘절대 벼슬길에 나가지 마라’는 유지를 남겼다. 이에 능성 구씨들은 중앙 정계 진출 보다는 개인 수양을 위한 학업에 정진하거나, 문과 대신 무과에 응시를 하여 나라에 위급한 일이 닥칠 때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무관들이 배출 된다. 잘 알려진 인물은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구원일 장군이다. 인조 실록에 의인으로 기록된 구원일 장군은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이 나자 강화좌부천총으로서 부하들을 이끌고 갑곶나루로 나간다. 구원일 장군은 싸울 의사가 없는 강화 유수에 항의하기 위해 바다에 빠져 자살을 하고, 1642년에 강화 사람들이 세운 사당에 김상용 등의 순절인과 함께 제향 되었다.

▲ 구예서 옹
불은면에는 구씨 집성촌이 여럿 된다. 그 중 고능리는 구씨와 한씨가 어울려 살고 있다. ‘고능리’ 명칭에서 예상되듯이, 예로부터 이 마을은 ‘능골’이라고 불렸다. 역사학계에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태조 왕건과 그의 아버지 능이 있었던 자리라고 믿는다. 강화사에 의하면,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태조 왕건과 그의 아버지 능을 강화로 이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이장지는 선원면 일원이지만, 첫 번째 장소는 정확하지가 않다. 고능리에는 홍살문이 서있었던 ‘대문재’와, 왕실 원찰로 추정되는 ‘자은사터’ 등 왕릉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있다. 또한 마을의 수호신 천년 넘은 은행나무가 자은사터 마당을 지키고 있다. 능성 구씨 강화 입향 500주년 기념 문집을 준비 중인 전 불은농협조합장 구예서 옹에 따르면, 고능리는 풍수지리상으로 고려 왕릉 자리의 특징을 전부 갖춘 배산임수 지형이다. 아늑한 산자락과 선녀가 와서 목욕하고 갔다는 선녀개울이 흐르는 고능리는 충분한 일조량과 기름진 옥토를 자랑하는 양지 바른 마을이다.

8촌 이내의 가까운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능리의 어르신들은 오늘도 마을회관로 향한다. 고능리 사람들은 매일 마을회관에 모여서 점심을 나눠 먹는다. 매달 둘째주 토요일은 ‘이발의 날’. 몇 해 전 고능리로 이사 온 정대길씨는 본디 파주에서 이발소를 운영했다. 은퇴 후 살 곳을 찾다가 고능리를 선택한 정대길씨는 염려와 달리 이주민들을 환대해준 고능리 어르신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마을 회관에 무료 이발소를 연다. 할아버지들이 멋쟁이로 거듭나는 동안, 부엌에서 할머니들은 점심 준비가 한창이다.
▲ 점심 준비하시는 할머니
“양도면에서 시집왔어요. 시집 와서는 가마니만 짰죠. 동네 어르신들이 잘 다독여 주어서 시집살이가 고단하지 않았죠. 우리 마을은 텃세가 없어요. 몇 집 있는 한씨, 외지에서 온 사람들 다 잘 지내요. 오늘도 이사 온지 한 달 된 옆집 사람에게 고추장 만드는걸 알려줬어요. 비법이랄 것은 없고. 전기밥솥에 엿을 고아서 단술 만들고, 엿기름, 소금, 고추 가루만 넣어요. 우리 집은 원래 장을 묵혀 먹거든요. 메주가루 넣고 묵히면 까맣게 되니까, 빛깔 나빠질까봐 안 넣죠.”
단오날이면 1000살 넘은 아름드리 은행나무 가지에 그네를 매고, 그늘 아래에서 동네잔치를 열었던 ‘따뜻한 농촌공동체’. 500년 시간을 품고 있는 고능리에서 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본다.

글: 김세라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 이발봉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