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관광객에게도 흥미로운 강화
외국 관광객에게도 흥미로운 강화
  • 이광구
  • 승인 2014.09.1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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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관제묘?’

어느날 관광안내도를 보다 눈에 띈 이름이다. 하나가 아니다. 남관제묘도 있다. 당시 살던 강화읍 집에서 멀지 않아 북관제묘를 찾아가 보았다. 關帝廟, 말하자면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다. 그때의 내 느낌은 요즘 애들 말로 ‘이건 뭐죠?’ 그 자체다.
사전을 찾아보니 도교 관련해서 중국에서 널리 만들어진 사당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강화까지 관우사당이 있는 걸까?
 
‘연무당 옛터?’
강화서문과 그 주변 성벽이 많이 정비됐다. 국화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도 깔끔하게 정리됐고, 개울가도 버스종점과 작은 공원으로 단장됐다. 그런데 거기 공원 가운데 큼직한 비석이 있고 ‘연무당 옛터’라고 적혀 있다. 鍊武堂, 무예를 연마하는 곳, 말하자면 군부대인 셈이다. 역사시간에 배운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비석 말고는 아무 설명도 없다. 치욕적인 곳이라 이렇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게’놔두는 것일까? 당시 일본인들이 찍은 강화 모습을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다.
 
‘초지진’
지금은 초지대교가 만들어져 접근하기가 쉽지만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역사 책에서 많이 배운 곳, 그러나 실제 가보니 아주 작은 성이다. 이곳이 아픈 역사의 현장이 아니라면, 아담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초지진과 비슷한 것들이 강화에는 많다. 5진, 7보, 53돈대라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돈은 대대, 보는 중대, 돈대는 소대라고 보면 된다. 사전을 찾아보니 실제 근무했던 병사 수가 꽤 많고 배도 몇 척 있었다고 한다.
‘이 작은 곳에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있었나?’
진이 보보다 더 큰 단위인데, 초지진은 광성보보다 작다. 나는 초지진 뒤, 초지리 언덕들까지 초지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앞 너른 들판의 상당부분은 당시 갯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 보는 게 재밌다. 그리고 이런 걸 잘 다듬어 놓으면 참 재밌는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 관광객들의 흥미도 끌 것이다. 역사 이야기가 살아 있는 강화, 앞으로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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