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교동성곽과 해병대원들
허물어진 교동성곽과 해병대원들
  • 이광구 기자
  • 승인 2014.07.17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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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교동대교 시공업체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는, 그 만큼 건설이 쉽지 않았다는 교동대교가 이제 완성됐다. 개통된 직후 가족과 함께 차를 몰고 교동대교를 찾았다. 좁은 2차선이라 그런지 긴 대교가 훨씬 더 늘씬해 보였다.

 그런데 다리 앞에서 검문하는 해병대 원들이 탑승자 모두 신분들을 맡기고 가란다. ‘음, 이건 아닌데.’ 다행히 차가 별로 없어 기다리거나 차가 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쌩 달려 단숨에 교동에 들어가, 제법 너른 고구리저수지를 지나 탁트인 들판을 가로질러 북쪽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인사리까지 달렸다. ‘이렇게 금방 올 섬인 걸....’

 차를 돌려 얼마전까지 교동을 드나드는 통로였던 월선포로 갔다. 그 중간에 향교와 성의 남문을 들렀다. 보통 1개 군에 향교가 하나씩인데, 강화읍과 이곳 교동에 향교가 있다. 그건 이곳 교동이 강화읍과 별개로 지역의 중심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남문은 겨우 성문만 남고 옆 성곽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 옆에서 만난 어르신이 역사 책에서나 나올 법한 말씀을 하신다.

  “3도 수군통제소가 여기 있었다니까....”

  ‘3도?’

 내가 잠시 3도가 충청, 전라, 경상 3도 를 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어르신은 내 속을 들여다 본 듯이 말을 이었다.

“충청, 경기, 황해 3도 수군절도사일세.” “아, 그렇군요.”

그래서인지, 교동사람들이 강화읍 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하고 자긍심이 강하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은 적이 있다. 말하자면 강화읍과 교동은 대등한 관계라는 뜻일 것이다. 그랬던 교동은 해방 이후 70년 동안 뱃길도 거의 끊긴 외로운 섬, 말 그대로 민간인통제구역 신세였다. 이제 교동이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차량 통행도 많지 않은 48번 국도를 4 차선으로 확장하고, 석모도보다 더 빨리 교동대교를 놓는 이유를 어떤 이는 김포매립지 다음 부지로 교동을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해주 쪽으로 다리를 놓아 남북교류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교동 주민들, 아니 강화주민 모두에게 참 중요한 분기점이 아닐 수 없다. 남북을 잇는 평화와 산업의 거점이 될 것인지, 수도 권 생활쓰레기 매립지가 될 것인지....

  2주 후에 서울회사 사람들과 다시 교동을 찾았다. 그 사이 통행방법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신분증을 맡기지 않고 각자의 전화번호만 적도록 했다. 그 사이 통행량은 더 늘었다. 별립산 아래 이강삼거리 검문소에는 전보다 대기하는 차 행렬이 훨씬 길어졌다. 검문소 해병대원들도 바빠졌다. 다리가 개통되 기전보다 훨씬 더 많은 군인들이 나와서 검문을 했다. 기다리는 사이 지원나 온, 예전 도장리 동네 청년인 형우도 만났다. 허, 참.... 온달이도 그렇고 형우도 그렇고, 이 젊은 청년들이 이런 남북대치로부터 언제나 자유로워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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