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만세 운동 그 이후 …(2)
3.1 만세 운동 그 이후 …(2)
  • 구본선 기자
  • 승인 2014.06.03 15: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또한 만세 시위는 일본의 조선지배 방식을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의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의 전환은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피와 땀으로 얻은 귀한 결과였다. 비록 군 병력은 2개 사단에서 4개 사단으로, 경찰 병력도 14,000명에서 20,000명으로 대폭 증강된 허울 뿐 인 문화정치라고는 하지만, 조선인들을 대변할 신문(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되었고, 조선인들의 고등교육(서울대학교 설립)과 의료혜택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것은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단지 사족을 붙인다면 신문보도에는 일본의 검열이 당연히 따라 붙었고, 그나마 1940년에 들어서면서 두 신문사는 폐간 당하고 말았다. 서울대의 경우도, 초기에는 경성제국대학으로 시작했는데, 설립목적은 일본 황국신민화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만세 시위는 해외에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동력이 되었다. 더 이상 국내에서 독립투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상해 임시정부(상해 외에 임시 정부가 수립된 곳이 더 있기는 하다)가 조직되었고, 만주에는 많은 무장 독립단체들이 결성되었다. 이들 독립군중 홍범도와 김좌진이 이끄는 독립군부대는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잇달아 격파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수백만 명이 참여했던 독립만세 시위가 끝났다고 해서 그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조봉암은 유봉진이 주도했던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는 훗날 이 때를 회고하면서 “3.1운동이 터지고 내가 잡혀서 감옥으로 갈 때까지는 국가와 민족이 어떻다는데 대해서는 아무 생각 도 없었다. 단순히 일본놈들이 우리 조선을 천대하고 멸시하는데 대한 불만과 불평이 있었던 청년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가서부터 비로소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알았다. ... 3.1운동은 나로 하여금 한 개의 한국 사람이 되게 하였다.”고 고백하였다. 강화 3.1만세 시위가 조봉암이란 평범한 청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것이다.

   강화 3.1만세의 주역이었고, 조봉암에게 인깊은 인상을 남겼던 유봉진의 삶도 변함없이 흘러갔다. 조봉암은 유봉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강화에서의 만세운동에서) 유 선생의 지도방침은 철저한 평화적 시위였기 때문에 수천 명이 태형을 당했을 뿐, 감옥살이를 한 사람은 비교적 많지 않았다. 유 선생은 마리산 꼭대기에 숨어서 만세운동을 지휘했고, 왜놈에게 체포되었어도 ‘독립운동자 유봉진’이라고 종이에 크게 써서 가슴에 붙여주지 아니하면 말 한마디 대꾸도 안했다.”

   유봉진의 자필 이력서(아들 유제중 씨가 소장)에 의하면 유봉진은 ‘대한 독립대학교에 입학해 1년 9개월을 복역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는 3.1만 세 시위로 인해서 옥살이 한 것을 의미한다. 출옥 후에는 부천군 북도면 시도(현재는 인천시 옹진군 북도면) 에서 사립 신창학교 설립자겸 교장으로 근무했고, 4년 후엔 강화군 하도면(현재는 화도면) 내리에 사립 노산학원을 설립하는 등 교육 사업에 헌신하였다.

   3.1 운동 이후 많은 변절자들이 등장했다. 날로 강성해 지는 일본의 국력에 한계를 느낀 사람, 일본의 회유 와 협박 그리고 고문으로 어쩔 수없이 사상 전향을 한 사람, 일신상의 편 안함과 출세를 위해서 민족을 등진 사람들이 잡초처럼 무성했던 시절, 유봉진, 조봉암을 비롯한 강화도 출신 민족주의자들은 부근리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고인돌처럼 고독한 삶을 견디며 살았다.

    일제 35년 동안 흐린 날과 비오는 날, 바람 불고 폭풍이 몰아치는 날도 많았지만 부근리 고인돌처럼 이 땅에 두 다리를 깊이 박아 넣고, 널찍한 등 판 위엔 독립에 대한 염원을 올려 놓고 살았던 강화도 사람들이 있었다. 현재 강화도 3.1운동 기념비는 강화읍 용흥궁 주차장, 초대교회, 선두교회에 있고 선두중앙교회로 가면 유희철 기념관(일명 산후성전)이 남아 있다. 그리고 1907년 의병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더미리 순국터 비, 강화중앙교회 김동수 권사 순국비가 있다.

  •  구본선 기자
  • 감리교 목사로 교동교회에서
  • 목회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