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철책 위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박진화
민통선 철책 위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박진화
  • 홍성환
  • 승인 2013.06.0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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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화, 그의 그림은 강화 대산리 민통선 안 분단의 철책 위에 앉아 살점 찢기며 피흘리며 그린 그림이다. 실제로 최근에 視野라는 그의 전시회에서 그는 철책 위에 앉아 있는 자신의 자화상을 보여주었다. 가슴이 찢기지 않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울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은 찢겨도 그의 정신과 꿈은 철책 위로 남북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기러기처럼 자유롭다. 그의 그림에서는 어둠과 빛이 함께 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얼굴 없는 민중들이 일어나 스스로 밝히는 발광체 처럼 빛을 발한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시대의 자화상이며 그가 온몸으로 지고 있는 십자가다. 누구도 지고 싶지 않은 십자가를 그는 구원의 등불인양 매고 다닌다.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그는 기독교인들이 지기 싫어 조각으로 만들어 숭배하고 찬양하는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다닌다. 내가 보기에 그는 걸어다니는 십자가다. 그를 보면 내가 진정 원하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것이 떠올라 부끄럽다.  

내가 기독교를 처음 알았던 고등학생 시절, 나는 예수가 내 죄로 인해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대신 지셨다는 말을 듣고 고맙다는 생각 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자기 짐은 마땅히 자기가 지는 것이 인생의 기본일텐데 어찌 독립적인 인격체가 남에게 내 짐을 지라 하며, 그것도 목숨을 걸라는 짐을 지울 수 있는가? 조금이라도 사람 구실을 하려면 자기 짐은 물론이고 남의 짐도 져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런 생각을 실천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라서 나의 평생은 항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 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러웠다. 박진화를 만나면 나는 그런 나의 부끄러움이 드러나 그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내 눈엔 그가 시퍼런 칼을 들고 있어 금시라도 내 목을 벨 것 처럼 보이는데 그는 나에게 순한 어린양 처럼 착하다. 

강화에 이사와 박진화를 알게 된 것은 색맹이라 그림 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나에게는 기적 같은 행운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북한이 코 앞에 보이는 강화도 대산리에 있는 연미정이라는 곳에 모여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평화의 씨앗들이라는 모임에서 였다. 처음 그를 봤을 때 나는 그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햇빛에 그을린 시커먼 얼굴에 허름한 옷,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멋쟁이 화가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목소리도 걸걸해서 평소에 말할 때도 막걸리 한잔 한 사람 같았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눈빛이 칼날처럼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전라도 장흥 촌놈이 그림에 매료되어 그림 배우러 쌀을 등에 짊어지고 무작정 서울로 왔다는 말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림은 재주나 기술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아프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살려는 화가의 몸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는 운명 같은 생각을 하고서부터 그의 삶과 그림은 한마디로 狂氣 아니고는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눈빛은 그러한 그의 神氣의 발산이었다.  

서른 갓 넘어 민통선 안 강화 대산리로 들어와 이십년 넘게 그곳에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그의 그림을 한마디로 말해 주는 것이다. 산 생명의 허리가 반으로 잘려 피흘리고 있는 현장 보다 더 진실한 것이 어디 있으며 그것을 외면하고 무슨 진실을 그릴 수 있는가?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원색적인 절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되면 돋아나는 여린 새싹 같은 생명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민중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고 그의 생명에 대한 자존심이기도 했다. 절대로 꺾일 수 없는 자존심, 그것을 몸으로 그린 것이 그의 그림이다. 

붓은 그의 몸 전체가 이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이 허해 몸에서 氣가 빠져 나가면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자, 그는 몸에 기를 회복하기 위해 백일 동안이나 계속해서, 그것도 한밤 중에, 氣 덩어리인 강화도 마니산을 올랐다 한다. 그는 자기 그림은 땅이 주는 것이라 믿었다. 자기가 땅에 물들고 땅이 자기에게 물들어 자기와 땅이 하나가 될 때 그림이 나온다고 믿었다. 흙에서 발이 떨어지면 氣는 죽고 그림도 죽는다. 이것이 그의 소박한 민중의식이다. 그러나 흙이 하늘의 기운을 받지 못하면 생명노릇을 할 수 없다.

그는 군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광주에서 민중들을 죽이고 독재가 계속되던 암울한 시절에는 그림을 통해 민중의 울음 소리라도 들려주고 싶었다. 그 울음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죄로 감옥에 가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민중미술협회가 창립되었고 지금 그는 이 협회의 회장이다. 그의 첫전시회(1989)는 代哭者였다. 말 그대로 그는 그림을 통해 세상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직업 울음꾼 노릇을 했다. 자기가 세상과 똑같이 아프지 않고 어떻게 감히 자신을 울음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나도 전두환 시기에 감옥에 갔지만 박진화 처럼 철저하지 못했고 그저 억울하게 당했다고만 느꼈었다. 천지가 울음소리로 가득한데 어찌 소위 아름다운 그림만을 그리고 있을 수 있는가? 그 시절 세상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아름다운 그림만 그려서, 세상도 사람도 역사도 없는 추상화만 그려서 대가도 되고 부자도 된 화가들은 다 무엇인가? 내가 감옥에 갖혀 있을 때 깨달았다는 성철 스님은 ‘둥근 해가 떠올라 온천지에 광명이 넘친다’는 석탄일 법어를 발표하셨다. 나는 그 때 그가 고승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장례식장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늙은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불교를 배우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울기만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절박한 시대에는 울음 그 자체가 의미 있을지 몰라도 형식상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시대에는 울음을 삭여 넘어서서 생명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박진화는 이것을 잘 삭아 독성이 없어지고 맛갈이 나는 젓갈의 미학이라고 했다. 이제 그는 땅과 하늘을 자신 속에 함께 아우르고 갈등과 영성을 생명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다. ‘어둠은 빛을 일으키는 싹’이라는 자각을 한 것이다. 이제 그의 그림은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온다. 開花 전시회가 그것이다. 어둠의 땅에서 철책선 위에서 사람 꽃이 피는 세상 말이다. 세상은 아직 캄캄한데 배 속에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슬픔을 이겨낸 경건함이다.

박진화는 최근에 두 개의 전시회를 동시에 열었다. 하나는 렘브란트의 성서미술을 재해석해서 연필로 그린 드로잉-만남(강화 대산리 박진화 미술관)이라는 전시회고 다른 하나는 視野(파주 출판단지 미메시스 뮤지움)라는 전시회다. 나는 이 두 전시회를 보고 주저없이 그를 이 시대의 최고의 화가로 인정했다. 비록 내가 아는 다른 화가는 거의 없지만.

드로잉 전시 작품 120점은 박진화와 할 일 없는 내가 이틀에 걸쳐 걸었다. 그림을 걸면서 나는 운 좋게도 이틀에 걸쳐 그의 미술강의를 듣고 개별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 폴틸히의 저서들을 소개해 줬는데 그는 단숨에 몇권을 읽고 이해가 간다고 해 놀랐다. 특히 폴틸리히의 境界人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아무튼 기독교 중독자인 나는 그가 그린 聖畵들을 보며 성서의 이야기들을 떠올렸는데 막상 박진화는 예수를 포함에 그 그림의 등장인물들 모두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중들이라 했다. 예수도 신이 아니고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청년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도 아닌 그가(어쩌면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쉽게 그럴 수 있었겠지만) 자기와 예수를 쉽게 동일시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탕자가 돼지 우리에 있는 그림을 일부로 여러장 그렸다는데 거기 서있는 탕자가 바로 자기라는 것이다. 기독교 중독자인 나는 관념뿐이었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천사가 병자를 위로하는 그림이 있는데 병자로는 자기를 천사로는 아내를 그렸다. 그림은 자기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세상과 자기가 그리는 것이란다. 나는 여직껏 이런 위대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술마시면 가끔 죄를 지어야 몸이 살아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사람의 본능이 그 깊이까지 들어가야 본성의 기운이 솟아나는가 보다. 어정쩡한 도덕주의자인 나는 죄가 뭔지 영성이 뭔지 그 깊이를 모르고 말로만 떠드는데 그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는 굳어 있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생명은 가두어두고 화석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실성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형태가 사라지는 추상성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현실과 이상, 발밑과 눈을 같이 담으려 한다. 다시말해서 그는 본 것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기억해서 뜻으로 그린다. 그를 아니 그의 그림이 조금 보인다. 그림이란 그리움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그저 낭만적인 그리움이 아니라 아프고 아픈 그리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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